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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책상이 있는 1호실 귀퉁이에 기타 비슷한 것이 껍데기가 씌워진 채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워낙 건성이라 그 물건이 어제 온건지 아니면 그 전부터 있었던 것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어 마당에 있던 남편을 보고 소리쳤다.

 

"여보, 끝 방에 세워진 저거 뭐야?"

"음… 클래식 기타야."

"뭐시기? 기타를 샀단 말이야?"

"한 번 배워보려고…"

"아주 가지가지 한다. 에휴~~조만간 내 귓구멍 나가게 생겼구먼…"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일요일 아침부터 사단이 났다. 아직 잠도 덜 깼는데 머리맡에서 내 뒤통수를 때리는 소리.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이거는 귀엽기라도 하지. 참 들어주기가 곤란한 소리가 울려오는데…

 

"띠잉~~ 띠딩~~띵~~"

 

후다닥 일어나 보니 저 위, 저 차림(잠옷임)으로 목하 독학중이시다.

 

"못 살아… 여보 그 죄 없는 기타줄 쥐어뜯지 말고 웬만하면 어디 가서 배워 와라."

 

한숨을 푹푹 쉬며 오만상을 찌푸리는데 그 말을 들은 남편이 박장대소를 한다. 에구, 자기도 알긴 아는구나. 기타줄 쥐어뜯는 줄은. 하긴 15년 전보다는 낫다. 어느날 불쑥 대금을 들고 와서는 "삑빽~~" 불어대는데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기타 줄은 쥐어뜯으면 그나마 울림이나 있지 대금은 장난이 아니었다. 힘껏 볼 부풀려 불어 대봤자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 나기 일쑤고, 간신히 나는 소리도 삑~~빽~~아주 고막을 찢는 것 같았다.

 

보다 못해 사정사정 했다. 대금을 불려면 아주 산으로 들어가라고 말이다. 왜 있잖은가. 소리꾼도 득음을 하려면 아예 깊은 산속 폭포 아래 앉아 창자 속까지 끄집어내듯 소리를 지르는 고행이 필수라고 말이다.

 

대금은 얼마 못가 때려치웠다. 생각보다 소리 내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옛날에 아버님이 피리 부는 선수셨다는데 자기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는가 보다고 한탄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더니 어느 날 통기타를 사들고 들어왔다.

 

여유가 있으면 클래식 기타를 사겠는데 우선 통기타로 연습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 통기타를 얼마나 쳤는지 기억은 없지만 하여튼 음악 쪽으로 쏠리는 관심 때문에 신혼 초부터 애를 먹은 건 나다(나는 관심이 없는 분야다. 특히 클래식 쪽은).

 

축의금으로 라디오 산 남편, 양심수 후원금으로 남편의 오디오 산 나

 

결혼 축의금으로 맨 먼저 FM 나오는 카세트라디오를 사들고 나타났을 때 이미 알아봤다. 그리고는 클래식 음악으로 새벽을 시작하더니 이후 클래식 테이프를 모아들이기 시작했다. 테이프가 모이면 테이프꽂이가 필요하고 음악 틈틈이 간식 챙기는 것처럼 화분 아니면 비닐봉지에 담긴 금붕어 새끼까지 끌고 들어오던 내 남편이다.

 

경제력하고는 도무지 안 맞아떨어지는 다양한 취미생활. 이 남자 믿고 어떻게 한평생을 살까 앞이 캄캄하던 때가 그때였다. 80년대, 재야활동을 하다 수감된 남편에게 유럽 쪽(독일, 네덜란드 후원자들이 보내줬던 카드가 생각난다) 양심수 후원단체에서 후원금을 보내 준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한 200불쯤 되었던 것 같다. 엽서 한 장을 꽉 채운 후원자들의 격려 편지. 1불, 2불 푼푼이 모은 귀한 후원금에 정성들여 쓴 편지. 감동적이었다. 파란 눈의 사람들이 어느 귀퉁이에 박혀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나라, 이름 없는 수형자까지 기억하며 챙기는 마음. 인류애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이 소중한 마음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그냥 생활비로 탕진하기는 너무나 아까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두고두고 행복할 수 있는 어떤 것, 그것을 남편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남편에게 그런 것은 바로 음악 같았다. 슬플 때나 힘겨울 때 유일하게 남편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음악. 감옥 안에서 깜짝 선물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남편이 얼마나 행복해 할까.

 

성능이 빵빵한 오디오를 제 값에 살 수는 없고. 전시장에 진열되었던 상품을 반값에 샀다.(물론 전문가 의견에 따라서) 케이스까지 완벽하게 갖추다 보니 좁은 방 3분의 1은 차지하던 오디오 세트. 우리 집 보물 1호다.

 

클래식 기타 선율을 유난히 좋아하는 남편. 어느 해인가는 스페인인지 어딘지 가족들로 구성된 클래식 연주자들의 공연 티켓을 구해 딸과 함께 감상을 했다고 몇 해 동안 자랑을 할 정도니까 클래식 기타 CD 수집은 말 할 것도 없다.

 

얼마 전 환갑을 쇤 할배가(그것도 머리까지 벗겨진…) 기타를 부여잡고 딩딩~~거리는 게 어이없기도 하지만 잡기에 빠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자. 하긴 인생 이모작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안 봐주면 어쩔끼고.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한겨레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클래식 기타, #노년의 취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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