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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송정마을 박인수사무장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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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도 총무부장이 산다. 마을사무장이라 불리는 마을일꾼이다. 때로 기획실장이나 마케팅팀장 노릇도 한다. 나아가 마을이 딛고 있는 지역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로 나서기까지 한다.

마을사무장은 이른바 '마을만들기'로 일컫는 농촌지역개발사업을 열심히 벌이는 마을 마다 새로 생긴 일자리다. 노인들 뿐인 '자생적 양로원' 농촌마을에 마을 일을 챙길 만한 젊은이가 없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정부(농수산식품부)에서 마을 밖에서나마 젊은 마을일꾼을 수혈받을 수 있도록 2006년부터 지원하기 시작했다. 마을사무장이라는 전담인력을 둠으로써 농촌체험마을 지원사업을 활성화시키려는 목적이다.

몇 개 마을을 한데 묶은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라는 권역단위 사업에서도 권역사무장을 따로 뽑아 쓰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선정하는 정보화마을에는 프로그램관리자, 산림청의 산촌생태마을에는 산촌매니저가 마을사무장처럼 일하고 있다.

마을사무장 제도는 전북 진안군에서 시작한 '마을간사' 제도가 발단이다. 그 전에도 진안 능길마을, 화천 토고미마을, 이천 부래미마을, 의성 교촌마을 등 앞서 가는 농촌체험마을들에서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마을사무장을 구해 쓴 적은 있다. 이제는 대개 도시에서 귀농한 30~40대 젊은 마을사무장들이 전국 수백 곳의 마을들을 일과 삶의 터전으로 삼고'마을 농사'를 짓고 있다.

마을사무장이 맡아 감당해야 하는 일은 그리 녹록치 않다. 마을사무장이 일하는 곳은 주로 농촌체험마을사업이 활성화된 마을들이다. 당연히 도농교류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게 기본 업무다. 마을 홍보, 농·특산물 판매, 방문객 예약관리 등을 위한 마을홈페이지와 온라인쇼핑몰 운영도 주요 일상이다.

주기적으로 마을신문이나 소식지를 발행하고, 농특산물 판촉을 위한 도농직거래 이벤트도 펼쳐야 한다. 투명하고 체계적인 체험마을 경영을 위해 회계와 문서 관리 능력도 갖추어야 하고, 때로 주민이나 손님들 앞에서 교육도 해야 한다. 한마디로 다재다능해야 한다. 가히 조선시대 지주와 소작농의 중간역할을 맡아 마을의 온갖 대소사와 잡일을 도맡아 했던'마름'에 견줄 만하다.

마을사무장은 '팔방미인' 공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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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간사 출신의 진안 무거마을 권대웅이장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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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무장은 시·군마다 공채로 뽑는다. 각 시·군에서는 농촌체험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마을들을 대상으로 마을사무장 지원사업 신청을 받는다. 농식품부의 녹색농촌체험마을, 농진청의 농촌전통테마마을 등 농촌체험관광사업의 활성화 기대효과가 높은 300여 곳의 마을에 마을사무장이 우선 배정된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의 권역사무장은 각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추진권역에서 지역역량강화사업 수행 일정에 따라 정해진다. 정보화마을 프로그램관리자, 산촌생태마을 매니저 또한 해당 시·군의 채용방침과 일정에 따른다.

면접 등 정해진 채용전형을 거쳐 마을, 사무장, 시장·군수 3자 사이에 협약을 체결하면 채용은 확정된다. 마을사무장의 근속기한은 최장 3년으로 한시적이다. 협약을 성실히 이행하고 하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1년 단위로 협약을 갱신해 최대 5년 동안 근속할 수 있다. 월급여는 120만 원이다. 일을 열심히, 잘 하면 마을에서 월 120만 원을 초과하여 추가 지원하거나 외부강의료 등 부대수입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마을사무장으로 채용되면 기본역량과 자질을 갖추기 위해 사무장교육부터 받아야한다. 2박3일 과정으로 치러지는 한국농어촌공사의 교육은 필수 이수과정이다. 마을사무장의 역할, 활동사례, 마을가이드 기법, 안전사고 예방, 농촌체험프로그램, 농작물재배체험, 생태관광, 전자상거래 활성화, 농특산물 마케팅, 의사소통과 갈등관리 등 다양한 주제와 내용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돼 초보 마을사무장들의 만족도는 크지 않은 듯하다.

마을사무장의 직무수행 상황과 실적 등은 매월 모니터링과 설문조사를 받는다. 사업의 기여와 성과, 만족도, 제도 개선사항, 사무장 업무수행 시 마을대표, 주민, 시·군 공무원과의 협력 정도, 사무장직무 관련 의견 등을 확인하고 평가한다. 그동안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마을사무장 제도를 운영하면서 나타난 성과는 일단 긍정적이다. 각 항목마다 마을주민들이 매긴 호의적이고 긍적적인 평가는 90%를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마을대표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체험마을의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하겠다는 사업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마을대표, 주민들이 생업인 영농활동에 안정적으로 종사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해주었다. 마을사무장이 체험관광 관련 업무를 전문적으로 전담함으로써 체험마을사업 운영도 원활해졌다. 나아가 마을주민들의 인식을 개선해 적극적으로 동참을 유도했다. 마을공동체의 활력소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결국 마을사무장을 통해 농촌체험마을 방문객과 매출액도 증가됐고 농촌지역의 일자리도 창출됨으로써, 도시민으로 하여금 정주할 만한 농촌으로서의 가능성과 대안을 보여주었다는 총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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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원촌마을 주영미 마을간사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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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하거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마을사무장에 대한 마을대표나 주민들의 인식 부족을 우선 들 수 있다. 심지어 마을사무장을 마치 마을머슴이나 심부름꾼으로 보는 마을주민들과, 어엿한 마을경영전문가로서 자리매김하고자하는 마을사무장 간에 갈등사례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을사무장에 대한 채용기간도 짧고, 보수도 한 가족이 생활하기에 부족하다는 현장의 소리는 여전히 크다. 이처럼 도시에서 직장생활하던 입장에서 보면 마을사무장이라는 직업은 채용조건은 불안정하고 근무환경은 열악하며 업무부담은 과중할 수 있다. 사실 마을사무장 뿐 아니라 도시민들이 농촌에 가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자리가 그런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농촌과 지역의 재생과 활성화를 이끄는 일에 대한 소명감, 마을에 뿌리 내리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부족하면 중도하차하기 쉬운 것이다.

마을사무장 일에 임하는 젊은 귀농인들도 오로지 진지하지만은 않다. 개중에는 단지 귀농을 위한 일시적인 훈련과정이나 통과의례 정도로 접근하기도 한다. 마을사무장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통해 더 많은 귀농인들이 마을에 터를 잡는 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 사후관리, 연계 지원책이 절실하다. 가령 마을사무장으로서 일하는 동안에도 영농이나 농업·농촌비즈니스를 준비하고 겸업할 수 있다면 보다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인 귀농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다.

마을사무장의 취업스펙은 '농촌사랑'

마을사무장이 되려면 일단 19살이 넘어야 한다. 체험프로그램 개발에서 고객관리, 주민교육에 이르기까지 농촌체험관광사업과 관련한 포괄적 업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종합적 능력과 자질이 요구된다. 형식적인 요건만 보면 다재다능한 팔방미인형 슈퍼맨이나 할 수 있는 일로 보인다. 실제로는 진정성을 가지고 농촌을 사랑하는 성실성과 책임감만 있다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대개 마을에 상주하며 상근직으로 전업 근무해야 한다. 다만 마을과 지자체장이 허락한다면 인근 지역에서 출퇴근해도 되고 영농에 한해서는 겸직도 가능하다. 동일한 조건일 경우, 여성, 연령이 낮은 지원자, 농과계(대)학교 졸업자 순으로 우선순위를 적용한다.

마을사무장에 지원하려면 희망마을, 자기소개, 지원동기, 주요경력, 특기사항 등을 적은 지원서와 직무수행계획서를 작성해 해당 시장·군수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때 지원하려는 마을을 직접 방문해 둘러보고 마을 대표 등 마을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중요하다.

채용여부는 서류심사, 직무수행계획 설명회, 면접 등의 전형절차를 통해 결정된다. 채용심사는 주요경력 평가가 40점을 차지한다. 주로 담당 업무와의 관련성 및 연계가능성, 담당업무에 대한 기여가능성, 전산 등 담당업무 관련 자격증 소지 여부, 농촌지역개발 등 관련 교육이수현황 등을 평가한다.

직무수행계획의 적정성에는 30점이 배점된다. 평가항목은 직무수행계획의 구체성과 충실성, 직무수행계획의 실현가능성과 타당성, 마을발전에 대한 기여가능성이나 기대효과 등을 본다. 나머지 40점으로는 마을사무장으로서의 자질을 평가한다. 농업·농촌에 대한 이해·애정·관심 정도, 농촌체험관광사업에 대한 이해·애정·관심 정도, 채용희망마을에 대한 사전지식·이해 정도, 헌신성, 성실성, 추진력 등을 엿본다. 사무장 채용대상 마을과 사무장 채용 공고는 매년 말 농촌체험이나 귀농관련 포털사이트, 각 지자체 홈페이지, 읍·면게시판, 지방지 등에 홍보된다.

마을사무장은 농촌재생의 '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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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목공예가인 무주 치목삼베마을 김동열사무장 -
ⓒ 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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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무장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모태라 할 수 있는 진안군의 '마을간사' 제도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진안군은 2003년부터 '으뜸마을 가꾸기'라는 주민주도형 상향식 마을개발사업을 의욕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마을대표에게 업무가 집중되는 등 내부 인적 역량의 한계에 곧 바로 직면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고학력의 젊은 귀농인들을 마을간사로 활용해보기로 했다.

으뜸마을의 간사는 공개적이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했다. 마을 인근지역에 거주하는 귀농을 꿈꾸는 젊은이를 채용조건으로 내걸었다. 귀농1번지를 표방하는 진안군에는 이미 젊은 귀농인들이 적지않게 들어와 살고 있었다. 마을간사 구인광고를 보고 도시에서 다양한 전문인력들이 모여들었다.

평균연령 39세, 모두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로 마을간사 12명을 선발했다. 서울대 출신도 2명에다 대기업의 임원 출신의 최고령자도 포함됐다. 먼저 매주 월요일 회의를 정례화했고 마을간사협의회부터 구성했다. 초기부터 자발적인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한 것이다. 무엇보다 진안군 마을간사는 마을주민과 행정,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부여받았고, 스스로 자임하고 있다.

그 중 무거산촌생태마을 권대웅 이장은 진안으로 귀농해 마을간사와 도농교류센터 간사를 거쳤다. 아토피가 없는 생태마을의 비전을 마을주민들과 더불어 그려가며 새삼 사람끼리의 소통과 화합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자평한다.

진안군과 임실군이 연합해 만든 전북동부권 고추연합사업단의 노정기 대표도 진안의 마을간사로 귀농해 마을 일을 하다가, 대기업 임원출신의 경험을 살려 도농상생을 위한 지역농업경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진안 백운면 원촌마을 주영미 간사는 '살기 좋은 백운만들기모임'이라는 혁신학습동아리를 구성, 흰구름작은도서관 사업, 백운면 간판디자인 프로젝트 등에 앞장 서는 지역의 일꾼으로 스스로의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남해 송정마을의 박인수 사무장은 건축사 출신 귀농인이다. 이제는 집을 짓는 대신 참다래, 체리 등을 농사짓는 농부로 거듭났다. 게다가 팜스테이, 녹색농촌체험마을 등의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해 청정해양휴양마을이라는 마을의 청사진을 설계하고 실현하는 마을건축사로서의 새로운 꿈도 보태고 있다.

오늘날 전국적으로 체험마을 사무장,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권역사무장, 정보화마을 프로그램관리자, 생태산촌마을 산촌매니저 등의 이름으로 농산어촌에서 일하고 있는 마을사무장이 7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전국농산어촌체험마을사무장모임(http://cafe.daum.net/komafa)에서 그들의 생활상, 활약상을 엿볼 수 있는데, 농촌을 사랑하는 700여개의 풀씨마다 농촌에서 살아보겠다고, 농촌을 살려내겠다고 마을마다 다투어 퍼져나가며 아우성을 쳐대고있다.

덧붙이는 글 | 오래된 미래마을(http://cafe.daum.net/Econet) 원주민에 불과한 정기석은, '농사짓지 않는 귀농인, 마을시민', '마을을 먹여살리는 마을기업', '사람 사는 세상, 생활마을(생태공동체마을)'을 주로 기웃거리는 일을 하는 마을연구소를 꾸리며 삽니다.



태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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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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