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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 캐나다에서 아빠가 되었다.

캐나다에서는 진료 한 번 받으려면 긴 대기 시간을 거쳐야 하고, 보통 임신 7~8개월까지는 산부인과 전문의를 만나지 못하는 의료체계이기 때문에(캐나다와 영국에서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패밀리 닥터가 큰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보내줘야만 한다. 한국에서 대학병원 등에서 보험혜택을 받기 위해선 동네 병원의 진단서가 필요한 것과 비슷하다.) 캐나다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다소 불편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캐나다의 정서는 한국식 산후조리 문화와 다르기 때문에 산후관리 역시 염려가 되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우려 속에서 시작된 캐나다에서 출산 경험이 모두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출산과 관련한 캐나다의 복지 정책에서 몇 가지는 인상적이었다.

오전 6시 진통이 시작됐다, 캐나다에서

우리의 경우,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에 있는 밴쿠버의 한 여성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출산 과정은 우려했던 것과 달리 매우 순조로웠다. 오전 6시 아내의 진통이 시작된 후 응급실로 가서 절차를 밟았고, 약 두 시간 뒤에 담당 산부인과 의사가 병원에 도착했다. 간단한 검사 후, 출산과 입원 기간 중 머물게 되는 병실로 이동했다. 

더욱 큰 수술을 요하는 경우 수술실로 옮겨지지만, 보통 출산 후 산모가 머물게 되는 병실에서 출산이 이루어진다. 이 병실은 주로 1인실과 2인실이 있으나, 대부분 1인실을 사용할 수 있다. 병실에는 화장실과 욕조가 있어 수중분만도 가능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무통분만 등을 위한 마취도 이루어진다. 자연분만을 하면 이틀 동안 입원하고 태아와 함께 지내며, 배우자 혹은 보호자도 함께 머무를 수 있다. 그간 진료를 받아 온 산부인과 전문의와 두 명의 간호사가 출산을 도와주었다.

친절한 의료진 덕분에 아내는 순산했지만, 황달 증세로 딸아이는 1주일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입원기간 동안, 산모를 위한 식사뿐만 아니라 신생아를 위한 기저귀, 간단한 유아 옷, 젖병 등의 물품이 필요한 것보다 넉넉하게 제공되었고, 신생아와 산모에게 필요한 의료품으로 분리되는 용품들도 모두 무료로 제공되었다.

입원기간 동안, 수유 상담원이 병실을 방문하여 올바른 모유수유법에 대해 지도해주고, 간호사는 신생아 목욕법을 가르쳐주며 퇴원 전에 실습(?) 기회도 준다. 퇴원 때에는 담당의사의 허가가 필요한데, 먼저 산모와 신생아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자동차를 타고 퇴원하는 사람들은 신생아용 카시트가 있어야만 퇴원을 허가해 준다.

하지만, 이러한 의료체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출산 후, 산부인과 전공의보다는 상주 간호사들이 산모의 상태를 확인하고, 교대로 업무를 보기 때문에 전문성 부족과 업무상의 혼돈을 일으키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간호사들의 오진으로 입원기간 중 소아과 전문의의 추가 진료를 받아야 했다.

경제부담은 최소로, 의료혜택은 최대로

퇴원 때에는 출산증명서를 포함하여 신생아가 의료 및 복지 혜택을 누리는 데 필요한 모든 서류를 병원에서 제공해주고, 퇴원 전 간호사의 가정 방문 시간도 미리 정한다. 간호사는 가정방문을 통해 산모와 산후관리에 대해 상담하고, 올바른 모유 수유법을 지도한다. 또 산모를 위한 세미나와 각종 워크숍 정보, 신생아 예방 접종을 안내한다. 뿐만 아니라, 간호사가 직접 휴대하고 다니는 체중계를 통해 신생아의 체중을 측정해주고, 주치의와 정보를 공유한다.

간호사의 가정 방문은 한 시간가량이며, 방문 횟수에는 제한이 없고 산모가 필요에 따라 추가 방문을 요청할 수 있으며, 매주 전화로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확인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간호사의 첫 가정 방문 때 태아를 위해 시립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선물로 보내온다는 점이다.

책 한 권의 금전적인 가치보다, 부모가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를 권장하고 책 읽어주기를 통해 가족 간의 대화를 장려하는 가족중심적인 문화가 잘 나타난다. 그리고 시립도서관 가입 서류와 이용 방법을 설명해주면서, 자녀를 위한 독서를 장려한다.

이러한 출산을 위한 의료 환경은 캐나다의 국영의료와 복지 체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캐나다에는 주마다 제공하는 MSP(Medical Service Plan)이라 불리는 건강보험이 있다. 이 MSP는 개개인의 소득에 따라 의료보험료에 차등을 둔다.

밴쿠버가 위치한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의 경우, 저소득층(연소득 2만2000달러 이하)은 연간 건강보험이 전액 무료이고, 연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경우 세 가족 기준으로 월 114달러를 내야 한다. 이 MSP 가입자는 치과를 제외한 모든 의료 비용이 무료이며, 출산과 관련한 진찰, 분만, 산후관리까지 모두 무료이다. 저소득자가 고가의 약을 처방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약값 일부를 지원 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출산을 위한 의료 환경 이외에, 캐나다 연방정부는 양육 지원 정책의 하나로 2006년 7월부터 6세 미만의 자녀를 둔 모든 가정에 UCCB(Universal Child Care Benefit)라는 양육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매달 100달러를 지급하고, 이외에도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이러한 산모를 위한 각종 지원과 편의 제공은 캐나다 복지 정책의 일부이다. 이러한 캐나다의 의료 환경과 재정적 지원은 긴 양육과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산모 중심의 정부 지원은 출산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의료적 혜택은 최대화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한다.

저출산 문제, 출산이 아니라 양육에서 해법 찾아야

물론 캐나다의 의료 환경에도 의료시설 부족이라는 문제는 있다. 일부 캐나다인들이 의료시설 부족 현상으로 중요한 수술이 지연되자 의료민영화를 외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전면 민영화가 아니라 부족한 의료 시설의 대안으로 개인병원을 허가하자는 요구이기 때문에, 자본의 유입을 돕는 한국의 의료민영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출산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는 다소 다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산모 중심의 모든 의료 지원과 경제적 양육 지원을 하는 캐나다와는 달리, 한국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초자치단체별로 출산장려금을 기준 없이 지급하고 있다. 첫째 아이는 백만 원, 셋째의 경우는 500만 원까지 지원하는 기초단체도 일부 있지만, 아무런 지원금도 지급하지 않는 곳도 있다.

저출산이 국가적인 문제라면, 캐나다 정부처럼 중앙정부 차원의 양육 지원 정책이 있어야한다. 또한, 단순히 금전적인 지원 이외에 출산 후 거동이 불편한 산모뿐만 아니라 신생아를 배려한 의료 지원과 더욱 편리한 출산 환경 조성 역시 출산 장려를 위한 추가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출산과 관련한 의료와 복지 환경만을 출산율과 직접적으로 연관짓는 것은 어렵다. OECD가 발간하는 통계연보에 기록된 G8의 출산률을 비교하더라도 의료 환경과 출산률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그래프 1 참조). 하지만, OECD 회원 중 5년째 최하위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지난 5년간 무려 20조원을 투자했음에도 저출산 대책은 성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반면, 2008년 1.19명에서 1.15명으로 출산율이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G8과 한국의 출산율 연도별 변화
 G8과 한국의 출산율 연도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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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출산 장려 정책은 국가보다는 각 가정을 위한 정책이 되어야 하고, 저출산 문제를 경제적인 문제로 국한시키는 것은 효과적인 개선책을 찾는 데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근본적으로 저출산 문제는 출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양육의 어려움에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비록 캐나다의 출산을 위한 의료적 환경과 각종 지원 정책만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힘들 수도 있지만, 적어도 산모와 가족이 양육의 시작인 출산부터 걱정하는 일은 덜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태그:#캐나다, #저출산, #양육지원, #의료환경, #출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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