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시행되어 첫 입학생을 받은 지 1년 반이 지났습니다. 로스쿨 과정이 3년인 점을 생각하면 이제 막 반환점을 돈 셈입니다.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일부 대학들이 전문대학원 인가 반납을 공언하는 등 제도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서, 비슷한 전문대학원 제도인 로스쿨에서의 실무교육 실태에 대해 다뤄봅니다. 마지막 3편에서는 서울대학교 한인섭 교수 인터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서울대학교 한인섭 교수는 로스쿨 도입에 일익을 담당하였고 로스쿨에 대해 고민하는 교수로 유명하다.

한 교수는 9일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로스쿨은 실무교육기관이 아니고 다양성과 자유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하여 미래의 실무를 준비하는 곳"이라며, 로스쿨에서 기술적인 변호사 실무를 교육하는 것에 대한 경계를 강조했다. 또한 "로스쿨은 지식의 전시장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고, 지식과 법적인 사고력(리걸 마인드)을 정돈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로스쿨에서 실무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심이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과 교수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과 교수
ⓒ 박상규

관련사진보기

"실무교육이 과연 무슨 의미냐? 어떤 변호사가 A에서 B로 자리를 옮기면 B에서 실무를 새로 배워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로스쿨은 '실무지향적'인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실무와 유관한' 법이론을 탐구하고, 리걸 마인드를 키우는 곳이다. 물론 실무와 연관성이 없는 이론은 없다. 다만 현재의 소송기법이나 소송지식을 탐구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사, 판사, 변호사 실무가 다 각기 다르고, 거기에 대한 소위 실무는 1~3개월 익히면 되는 것이다. 로스쿨은 실무관련성이 높은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실무 감각과 맛을 보면 된다. 대학마다 다르겠지만, 졸업 10년 후에도 남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쓸 수 있는 지식은 쉽게 날아갈 것이다."

- 변호사가 없는 무변촌에서의 법률봉사와 리걸클리닉 활동을 강조한 바 있다. 실무교육기관이 아니라면 이들은 로스쿨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나?
"'무변촌' 봉사는 문제의식을 키우는 기회다. 학생들이 '내가 법률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분야가 이런 곳이구나'라고 느끼며 공부에 대한 자극도 될 것이다. 또한 거기서 발생한 문제의식을 소송실무를 통해, 나아가 제도개혁을 통해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료법률상담소(리걸 클리닉)는 학생들이 민·형사 사건을 수임부터 판결까지 수행해 봄으로써, 강의실에서 배운 추상적 지식을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있고 그럼으로 인해 지식을 살아있게 만드는 과정이다. 책에서 모의 사례를 보는 것보다 자극과 긴장을 야기하여 도움이 될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금전적 유인에 의해 쓸려갈 학생들이 스스로 견제, 경계할 기회다. 실무 자체에 집중하기에는 (자신이 졸업 후 어떤 직역에 갈지) 장래가 미확정적이므로, (이런 리걸 클리닉을 통해) 학생들은 로스쿨 3년 동안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 정종섭 신임 원장이 '실무연수는 학교가 떠맡아서는 안 되고 검찰이나 법원, 법조계에서 분담해야 한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로스쿨 졸업 후) 별도 연수기관을 두는 것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연수기관에서는 모의 사례와 법률문서 작성에 교육의 초점을 둘 것이다. 그럼 그 후 또 실무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실무교육은 실무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종류도 수십가지이므로, (자신의 직역을) 선택해서 해야 한다. 판사 했다고 기업 변호사 역할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다 로스쿨에서 (교육)할 수는 없을 것이다. 로스쿨은 실무관련 이론을 3년 동안 학습하고, 지식의 전시장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고, 지식과 리걸 마인드를 정돈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각 실무기관에 가는데 필요한 특별교육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해당 기관에서 받는  걸 'continuing legal education'이라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각종 기관에서 만들어 일주일이나 3~4일 듣고 수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변호사가 판사로 전직한다면 '재판실무'를 듣는 식이다. 교육 주체는 수 백개 기관에서 경쟁하면 된다. 서울대 로스쿨에서도 할 수 있다. 별도 연수기관은 또 다른 옥상옥이 될 뿐이다."

서울대학교 법학도서관 전경
▲ 서암관 서울대학교 법학도서관 전경
ⓒ 최종연

관련사진보기

- 그러면 로스쿨 졸업생은 "실무가 약하다"라는 평가를 듣지 않겠나?
"'실무가 약하다'라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연수원 졸업생이 대형 로펌에 가면 일단 관련 지식은 없는 상태다. 그 때 자료를 찾을 역량이 되고 용어를 찾고 배울 수 있다는 잠재력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2년이 넘으면 자신의 비용에 관해 적자를 흑자로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떠한 연수원 졸업생도 가자마자 M&A를 할 수는 없다."

- 로스쿨에서의 특성화는 실무교육을 전제로 특정 분야의 변호사 업무를 익히는 것이 아닌가?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특성화는 어떠한 의미가 있나?
"특성화는 자신이 (로스쿨 입학) 이전 전문지식으로 의뢰인과 대화가 되고 이해가 된다는 점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회계사 출신 변호사는 기업인과 상담하기가 편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특성화 분야를 설정하면 관련 과목을 좀 들을 수는 있어도, 진짜 민법과 민사소송법과 같은 기초 역량을 갖추고 졸업시켜 달라는 요청이 더 많다. 법률의 기초를 더 튼튼히 해 놓으면 다른 것(특성화)은 그 위에 쌓으면 된다. M&A 특성화를 한다고 로스쿨에서 M&A 전문가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장래 가능성을 탐색해 나가면서 실무에 계속 접촉하고, 나의 잠재력은 무엇인지 체감하는 장이 로스쿨이다.

현재 '실무'라는 개념에 대해 오해가 많다. 연수원생이 법원 민·형사부에 가면 뭘 좀 아나? 모른다. 민사부에 가도 분야별 각 부가 있지 않나. 실력있는 사람이라면 가서 실무를 빨리 익힌다는 의미이지,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강력 검사가 될 거야'라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실무에서 접하는 모든 사건은 새로운 것일 수밖에 없다. 모든 사건을 준비해두는 것이 실무는 아니다."

지난해 서울대학교 로스쿨 국제하계강좌의 Tom Ginzburg 교수
▲ 국제하계강좌 지난해 서울대학교 로스쿨 국제하계강좌의 Tom Ginzburg 교수
ⓒ 최종연

관련사진보기


- 그렇다면 로스쿨에서 실무가 출신 실무교수의 역할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나?
"행위론, 구성요건론, 증거의 공방 등은 실무가만이 할 수 있다. 실무가가 보는 사건의 맥락과 텍스트로 보는 맥락은 다르다. 교수가 텍스트로 사건을 보면 변호사 비용 확보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사건을 봐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이 '리걸 클리닉'이다. 2학년 1학기 실무수습에서부터 시작,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 그럼 실무가 출신 실무 교수들이 변호사 자격을 활용할 수 있게 해 리걸 클리닉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학생들이 리걸 클리닉에서 변호사 업무를 수행해도 필요할 때는 실무교수가 대행해야 하지 않겠나.
"변호사와 교육가는 다르다. 교육가는 금전적 동기와 승소를 추구하면 안 된다. 그걸 추구하다 보면 다른 교육 측면을 추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교육은 당파와 편파에 의해 지배될 것은 아니다. 한편 교육용으로 될 만한 사건이 널려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온갖 치졸하고 저열한 면들이 사건에 들어 있어서 학생들이 보면 엄청 실망할 것이다. 소송기법도 마찬가지다. 소송에 임하는 변호사는 이익을 위한 전사(戰士)아니냐. 그래서 그 무대를 교육의 장으로 끌어오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그래서 리걸 클리닉은 사실 '공익소송'밖에 다룰 수가 없다. 기업 소송을 학생이 하겠나? 기업이 과연 맡기겠나? 그러므로 실무가 출신 실무교수는 실제 사건을 주는 변호사와 학생 사이에서 학생에 대해서는 학습지도를 하고 변호사 요구를 조정하며, 변호사는 실무교수에게 학생의 지도를 주문하면 된다. 실무교수는 변호사와 학생의 연결고리이다."

- 로스쿨이 실무교육기관이 아니라면, 로스쿨이 연수원과 학교에 대해 갖는 차이점과 의의는 결국 어디에 있다고 보나?
"'연수'란 리걸 마인드보다는 아주 디테일한 것을 익히는 것이고, 내용은 기존 법질서에 도전을 못하는 획일적이고 종속적인 것이다. 로스쿨은 이를 다양하고 자유로운 생각으로 깨자는 교육이다. 연수원에서 시험을 봐서 학생들을 줄 세울 때는 동일한 내용을 시험지에 쓰면서 누가 문서 작성의 '기법'을 잘 지키는지 본다. 그러나 대학과 연계된 교육기관은 사상의 자유와 다양한 사고를 추구해야 한다.

그럼 과거의 대학은 왜 법률교육을 감당하지 못했나? 법률교육이 너무 이론화되어 있었다. 이제 로스쿨에 실무가들이 들어옴으로써 실무관련 지식을 만들고 융합을 시킬 수 있다. 당장 서울대 로스쿨에서도 나, 조국 교수, 이상원 교수가 생각이 다르지 않냐. 연수원에서는 20명의 교수가 있어도 내용이 다를 수가 없다. 거의 붕어빵을 만들어내는 느낌이다. 특히 연수원은 대법원 산하에 있기 때문에 대법원 판례에 대해 자유로운 비판이 불가능하다.

이에 반해 현재의 실무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교육기관이다. 현재의 실무에 적응할 생각도 해야지만, 소위 '일류' 로스쿨일수록 실무를 비판하고 거리를 유지하면서 미래의 실무를 만들어 가야 한다. 하버드 로스쿨 교수들은 미 연방대법원 판례들을 매 시간마다 비판하는 것이 일이다. 대신 실무관련한 고려에서 비판하는 것이다. 만약 로스쿨을 나와서 바로 실무에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단순한 법기술자밖에 안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써먹을 수 있는 인재를 대학이 만들지 않는다는 비판도 가당치 않다. 대학은 기업 실무에 활용될 지식이 얹힐 수 있는 기초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다. 나머지는 기업연수원에서 하면 된다. 기업연수원 역할을 대학이 한다면 그 사람은 40살만 되어도 잘릴 것이다.

왜 비판적, 창조적 사고가 중요한가? 어려운 사건에서는 온갖 가치 충돌 속에서도 '창조적 해답(creative answer)'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한 지적 토대를 갖춘 사람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집이 좁아서 책을 버려야 한다면 남기는 책들을 보라. 수험서를 제일 먼저 버리고, 고전에 대한 해설서를 버리고, 결국 고전을 남기지 않냐. 그런데 고전이 가장 구닥다리 아니냐. 마찬가지로 우리 지식 중에서 무엇을 10년 뒤까지 남기게 될지 생각해봐야 한다."

-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수들 간의 시험 공동 출제 및 공동 평가를 통해 교수 간 학점의 형평성을 제고하자는 논의도 있었는데,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큰 의미가 없겠군요.
"공동출제를 하려면 가르치는 내용도 공동조정하고, 판례도 어디까지만 하자고 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신이 안 난다. 교수가 신이 나서 가르치는 부분에서는 학생이 그 열정에 한 번 감명받아 볼 수 있다. 그리고 교수가 잘 모르는 부분은 로스쿨 학생들의 다양한 배경과 전공을 활용해서 수업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로스쿨의 가장 큰 차이이자 특징이다. 로스쿨에서는 선생이 단순한 '강사(teacher)'가 아니고 '촉발자(facilitator)'가 되는 것이다. 학생의 다양성과 강점을 알고 촉발을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 마지막으로 로스쿨의 의의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사법시험 평균 합격연령이 29세다. 아까 말한 것처럼 집 좁으면 바로 버릴 수험서와 교과서 몇 권을 공부하면서 20대를 날리는 셈이다. 거기에 군대 다녀오고 경험 쌓는데 또 4년을 보낸다. 결국 20대에 익힌 것이 객관식 문제와 2차 시험 대비용 교과서 몇 권인 엄청난 낭비인 셈이다. 그러나 공부할 필요 없는 법학적성시험(LEET) 봐서 로스쿨 들어오면, 20대에 배운 지식이 그대로 남는다. 20대에 푸코도 읽고, 롤즈의 정의론도 읽고, 외국어도 배우고, 그것이 그대로 남아 2천명의 로스쿨생 속에 다양한 지식이 남아 숨쉬는 것이다.

학비 문제가 제기되는데, 전체 학생의 10%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40%는 반액을 받고, 나머지 50%는 제 돈 주고 다니게 할 수 있다. 이는 대한민국 경제사정과도 조화가 되는 구도이다. 결국 결정적인 문제는 되지 못한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blog.naver.com/isulkuu)에도 게시되었습니다.



태그:#한인섭, #로스쿨, #법학전문대학원, #서울대, #사법연수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