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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읍에 사는 30살 미애(가명)씨. 그는 허물어져 가는 낡은 집 좁은 마당에 서서 대문 밖 넓은 세상을 꿈꿨다. 지적장애 1급. 한 음절의 단어조차 내뱉지 못하는 그였지만, 시선은 집 마당 너머 세상을 향해 있었다.

 

혹 병원이라도 가는 날이면, 그는 폴짝폴짝 뛰었다. 집 밖에는 신기한 세상, 그가 좋아하는 병뚜껑들이 길가에 널려 있었기 때문. 그의 바지 주머니엔 사이다, 콜라, 맥주병 뚜껑이 가득했다. 미애씨에게 녹슨 병뚜껑은 둘도 없는 보물이었다. 왜냐면 그와 낮과 밤을 함께하는 유일한 놀이감이자 친구였기 때문이다.

 

몸은 성인이지만 3살  수준의 지적능력과 순수성을 지닌 딸. 그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가엔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남편과 사별한 채, 허리 통증과 당뇨 등 지병으로 몸이 불편한 그녀에겐 세면대 하나 없는 집에서 딸을 씻기고, 산책을 나서는 등 일상생활 자체가 큰 고통이었다. 딸 미애씨는 세월이 흐를수록 몸무게가 불었다. 어렸던 소녀는 몸만 어른으로 컸다.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가 감내하기엔 벅찼다. 항상 노심초사해야 했던 어머니는 행여 외출이라 할라 치면 문을 걸어 잠글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는 차라리 외부와의 단절을 택한 것이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려웠다. 딸을 잃어버릴까 걱정했다. 생활을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아무 곳에나 딸이 볼일을 본 모습을 보고 가슴을 쳤다. 

 

어머니가 살아온 삶의 굴곡진 상처처럼 곳곳이 패인 마당에는 타인의 접근을 꺼리게 만드는 짙은 냄새가 뱄다.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누구에게 부탁할 수도, 대화를 나누는 것도 힘들었다. 그는 오랜 세월 홀로 감내했다. 그저 '천형(天刑)'이려니 하며 체념의 나날을 보냈다. 장애인 딸을 둔 어머니의 몸도 마음도 함께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만남으로 모녀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해 12월 집근처 운동장에서는 사천시장애인부모회가 주관한 지역 장애아동을 위한 열린학교가 열리고 있었다.

 

힘겹게 산책 나온 모녀는 운동장에 들렀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마냥 신기한 듯 바라보는 미애씨.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가슴이 아팠다. 사천시장애인가족지원센터 최준기 센터장은 이날 행사를  멀리서 지켜보는 모녀를 우연히 마주했고, 사연을 물었다. 그리고 사천시, 사천네트워크 등과 연계해 도움의 손길을 전하기 시작했다.

 

사천지역자활센터 집수리 봉사단이 지난 5월 말까지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주방을 개조했다. 오물과 곰팡이로 범벅된 벽지를 뜯고, 도배를 새롭게 했다.

 

 

자칫 화재의 위험이 있었던 전기시설도 전면적으로 손을 봤다. 이외에도 쓰러져가는 담벼락을 보수하고, 대문도 새로 달았다. 세면시설도 새로 만들고, 오랜 세월 방치됐던 쓰레기와 오물을 걷어냈다.

 

장애인가족지원센터는 미애씨의 운동지도와 신변관리를 위해 장애인도우미 파견을 주선했고, 현재 활동가를 섭외 중에 있다. 장애인도우미는 어머니를 대신해 미애씨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훈련과 상담을 계속할 예정이다. 미애 씨가 그토록 좋아하는 산책 또한 몸이 불편한 노모를 대신해 자주 진행할 계획이다.

 

장애인가족지원센터는 사천네트워크와 연계해 지역에서 모녀를 도울 수 있도록 후원단체와 후견인을 찾고 있는 중이다. 사천시 주민생활지원과 역시 사연을 접한 뒤, 주거환경 개선 등에 예산을 지원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지난 9일 장애인가족지원센터 관계자와 함께 모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평생 홀로 안고 가야할 업보 같았는데, 이렇게 주변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을 줄 몰랐네요. 고맙다는 말 밖엔..."

 

미애씨도 집을 방문한 최준기 센터장의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면서 반가움을 표시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최준기 센터장은 "여전히 복지와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가정이 많다. 정확한 실태조사를 통해 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을 찾아내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의 사연이 있는 분이 있을 경우 반드시 연락 해달라"고 말했다.

 


최준기 센터장은 실제 18세 미만의 장애인이 있는 가정의 경우 실태조사가 끝난 상황이지만, 성인 장애인의 경우 정확한 실태조사가 그동안 이뤄지지 못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의미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경남장애인부모회가 경남도에 건의해 전체 장애인 가정 실태조사를 진행키로 한 것. 사천에는 9명의 조사원이 7월부터 조사에 들어간다. 이번 조사로 행여 복지의 사각지대에 빠져 있을 줄 모르는 장애인 가정의 상황이 어느 정도 파악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경우는 우연한 계기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장애인 가정의 사례가 발굴돼, 지역 단체들과 시의 지원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유사한 사례가 있을 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지역사회와 이웃의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사천(www.news4000.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뉴스사천, #장애인, #사천, #위기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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