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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L양(13)을 납치 살해한 피의자 김아무개(33)씨가 10일 오후 부산 사상구 덕포시장에서 검거된 뒤 사상경찰서로 압송됐다.
 부산 여중생 L양(13)을 납치 살해한 피의자 김아무개(33)씨가 10일 오후 부산 사상구 덕포시장에서 검거된 뒤 사상경찰서로 압송됐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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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진다. 소식을 듣게 될 때마다 부모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 딸을 키우고 있다면 그 강도는 더 세다. '안양 혜진·예슬양 사건' 이후 '안산 조□□ 사건', '부산 여중생 김△△ 사건' 그리고 또 터졌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서울 김OO 사건'이다.

김아무개(45)씨는 지난 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휴일 방과후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 온 2학년 여자아이(8)를 자신의 집으로 납치해 성폭행했다. 

최익수 서울 영등포 경찰서 형사과장에 따르면 김씨는 이날 오전 9시 1분경 이 학교 정문 바로 왼쪽에 있는 건물 끝자락에 있는 아이를 불러 등나무 벤치 쪽으로 끌고 갔다. 이 일은 엄마가 이 아이를 학교 후문까지 데려다주고 놀이터 쪽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2~3분 뒤에 발생했다. 

김씨는 문구용 커터칼로 이 아이를 위협했고 어깨동무를 하는 척하면서 680m쯤 떨어진 자기 집으로 데려가 범행을 저질렀다. 아이는 김씨가 잠든 사이 도망쳐 나와 학교로 피신했고, 오후 7시쯤 동네 사우나에서 나오던 김씨는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지난해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반사회적 인격장애' 진단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를 모두 여읜 그는 부산의 한 고아원에서 지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에서 동성으로부터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김씨는 서울에 올라와 절도·폭력 등으로 경찰서와 교도소를 오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타깃이 되는 까닭

이 사건을 접한 언론은 아동성범죄를 근절할 대책이 필요하다며 대서특필했다. 

'제2 조두순' 김OO, 23년간 숨어있던 '악마'였다(서울신문), 아동性범죄자의 화학적 거세 적극 검토할 때(문화일보), '제3 조두순사건 막자' 초중고 24시간 CCTV 감시(머니투데이), 초등교 교문 90%이상 개방 '무방비'(한국일보), 학교개방=범죄개방? 안전지킴이는 없었다(헤럴드경제) 등등이 그것이다.

'김OO 사건'처럼 학교 안에 외부인이 침입해 발생한 성범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지적도 쏟아졌다. 더 이상 학교도 '아이들의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볼멘 성토가 이어졌다. 이뿐 아니라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라거나 전자 팔찌 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아동성범죄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꾸준히 만나 상담을 해온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대책과 교육당국의 입장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동성범죄를 줄이는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게다.

아동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 <오로라공주>의 한 장면.
 아동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 <오로라공주>의 한 장면.
ⓒ 이스트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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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점들을 주목했다. 가해자의 사회경제적 조건, 직업상태, 생활환경 등을 보라는 것이다. 복지후퇴도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지목했다.

김민혜정 국장은 "가해자에 대한 형량이 계속 높아지고 있음에도 보란 듯이 아동성범죄 사건은 되풀이되고 있다"며 "성범죄 예방을 위해 노력해야지 사후약방문 격으로 CCTV를 설치하거나 엄마패트롤 같은 제도로는 방어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동처럼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약자를 성폭행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가해자에게 있는 한 이 같은 범죄는 끊임없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게다. 성폭행을 저지르는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어린아이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권감수성이 없다는 것이다.

김민 국장은 "2007년 통계에 따르면 성범죄 고소율은 7.1%밖에 안 된다"며 "언론에서 크게 보도할수록 피해자는 숨고 움츠러들며 가해자는 담대하고 더 쉽게 범행을 저지른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김민 국장은 언론이 '약자와 강자'의 구도로 보도하면 보도할수록 피해자는 더 취약한 위치에 내몰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함부로 저항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자꾸 범행의 타깃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살인이나 방화에 비하면 큰 범죄 아니다?

변혜정 서강대 양성평등 성상담실 교수도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아이들을 더 이상 뛰어놀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릴 뿐 아이들의 현실을 반영한 실질적인 대책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변 교수는 "가장 취약한 아이들에 대한 성범죄가 발생하면 사회적으로는 엄청나게 시끄럽지만 달라지는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며 "아이들을 집에만 가둬둘 수도 없는 노릇인데학교에 CCTV만 설치한다고 되겠냐"고 우려했다.

그는 "전자팔찌도 사후처방은 되겠지만 예방의 효과는 전혀 없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에서 영어·수학 공부를 1주일에 3번씩 수업하듯이 성폭행 예방교육도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 인지적 관점을 갖고 서로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라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하지 않는 한 되풀이되는 끔찍한 아동성범죄는 막을 길이 없다는 게다.

변 교수는 "더 이상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귀가 따갑게 듣고 있지만 말만 있을 뿐 나온 대책은 없다"며 "성폭행예방교육 또한 매번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정작 교육현장에서는 1년에 1번꼴로 일회적으로 할 뿐"이라고 질타했다.

가해자 상담을 꾸준히 해온 변 교수는 "성매매업소를 드나들었던 가해자들은 이게 성폭력 범죄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살인이나 방화에 비하면 큰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전했다.

사이코라서 성폭행? 이웃공동체 파괴의 비극

아동 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 <세븐데이즈>의 한 장면.
 아동 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 <세븐데이즈>의 한 장면.
ⓒ 영화사 윤앤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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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주민들과 함께 '폭력 없는 마을 만들기'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박신연숙 '좋은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사무국장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박신연숙 국장은 "어린이 안전 문제는 결국 이웃공동체의 파괴에서 벌어지는 비극"이라며 "이웃관계가 회복되고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지도록 만들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박신 국장은 "내 아이의 안전만 지킨다고 해서 될 일이 더 이상 아니다"라며 "우리 동네, 사회, 국가가 나서서 어린이 안전문제를 총체적으로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가해자가 사이코여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서 발생한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커다란 문제"라며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성폭력 문제를 다시 점검하는 계기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린 여자아이가 680m나 끌려가도록 어느 누구도 관심 있게 지켜보지 못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지역관계망까지 파괴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사건이 한번 터지면 학부모들에게는 비상경계령이 내려져 '천하에 못 믿을 이웃'이라는 분위기가 생기지만, 학교 안에서 사고가 벌어진다고 해서 학교에 안 보낼 수 없듯이 지역민들과 담을 높게 쌓는다고 해서 아동성범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게다.

그는 지역공동체의 회복 관점에서 이 문제의 해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풀뿌리 주민운동을 통해 지역공동체와 만나고 소외되는 이웃을 차츰 줄여나간다면 사회적 안전망이 형성돼 끔찍한 아동성범죄가 줄어들지 않겠냐는 기대였다.


태그:#김수철, #아동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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