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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가 정말 빠르다. 얼마 전까지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친 것 같은데 절기상 '망종'이 지났다. 들판에선 보리 수확과 모내기가 한창이다. 계절이 벌써 여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우리의 나들이 문화도 계절의 변화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어디를 가면 눈도장 찍고 다니기에 바쁜 게 현실. 특히 단체여행의 경우 이런 현상이 심하다. 오늘은 속도전에서 벗어나 쉬엄쉬엄, 싸목싸목 하늘거리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가본다.

 

백운산 자락,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에 있는 '쉬어가는 박물관'이다. 쉬어가는 박물관은 남해고속국도 광양나들목에서 11번 지방도로를 타야 한다. 박물관은 이 도로를 따라 옥룡면 소재지를 지나 백운산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광양시 옥룡면 용곡리 초암마을이다.

 

 

이름에서부터 여유가 묻어나는 쉬어가는 박물관은 생활사박물관이다. 생활유물전시관을 겸한 찻집이기도 하다. 조경이 잘 돼 있어 수목원 같기도 하다. 한 마디로 차 한 잔 마시면서 생활유물까지 살필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도 개인이 만든 박물관이다. 전시물품은 주로 오래된 생활용품들이다. 올해 69세 된 조홍헌씨가 공직생활을 하던 1980년대 중반부터 하나씩 모은 것들이다. 우리 조상들이 쓰던 손때 묻은 물건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게 안타까워 취미 삼아 모으기 시작한 게 지금의 박물관까지 차리게 됐다는 게 그의 얘기다.

 

전시물품은 장롱과 반닫이에서부터 떡살, 절구통, 농기구 등 조상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던 생활용품이 대부분이다. 종류만도 1000여 가지가 넘는다. 그 가운데서도 반닫이가 눈길을 끈다. 이 반닫이에는 오래 전 사고 팔았던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종이로 만든 안경집도 있고, 조선시대 서당에서 먹물로 쓰고 지운 서판도 있다. 서판은 요즘의 칠판에 다름 아니다. 떡방아를 찧고 떡을 만들었던 돌 떡판 그리고 폐종이로 만든 갓집, 나무로 만든 가방도 있다. 모두 전문 박물관에서조차 눈독을 들일 만한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숯을 넣고 찻물을 끓여내던 차화로, 놋쇠로 만든 상, 각양각색의 호롱불도 있다. 60년대 계산기, 50년대 교과서 그리고 '진달래' '희망'이라는 이름이 선명한 옛 담배도 볼 수 있다. 나막신, 먹통, 담뱃대, 재봉틀, 축음기, 물레, 물지게, 주판, 멱서리, 대로 만든 반짇고리함, 각종 농기구까지 전시물품은 셀 수도 없다. 모두 근대화 바람이 불면서 마구 버려지고 태워졌던 것들이다.

 

전시품 역시 보통의 박물관과 달리 유리상자 안에 갇혀있지 않다. 집 안과 밖, 계단, 정원 곳곳에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풍경 속에 전시품이 자리하고 있고, 전시물품이 풍경이 되기도 한다. 생활용품이 더 정겹게 느껴지는 이유다. 누구나 쉽게 만져보며 손끝으로 촉감을 느껴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차는 박물관 건물 안에서도 마실 수 있고 밖에서도 마실 수 있다. 요즘 같은 날씨엔 야외 그늘에서 마시는 이들이 많다. 박물관 풍경도 정말 아름답다. 감나무와 매실나무가 박물관을 감싸고 있다. 정원에는 수십 가지 꽃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 400살 된 모과나무가 있고 160살 된 매실나무도 있다.

 

조경석도 군데군데 자리 잡고 아름다움을 뽐낸다. 생활용품은 이런 풍경과 어우러져 있다. 차를 마실 수 있는 탁자도 옛 재봉틀을 개조해 만든 것이 있고, 통나무를 멋스럽게 깎아 만든 것도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잔디밭도 드넓다. 야외공원 같다.

 

박물관 조성은 조홍헌씨 혼자서 20년 동안 한 것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박물관을 염두에 두고 했다면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원주택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틈틈이 꽃씨를 뿌리고 나무도 심으면서 땀을 흘렸다.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차도 한 잔씩 대접하면서….

 

그런데 찾아온 사람마다 찻집으로 만들면 좋겠다며 권유했다고 한다. 그 의견을 받아들여 재작년부터 차와 간단한 다과를 팔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쉬어가는 박물관이 됐다. 여기서는 생과일주스와 팥빙수, 커피에 와플, 치즈케이크, 토스트 등을 취급하고 있다. 차 한 잔 마시면서 전시물품도 구경할 수 있는 그런 박물관이다.

 

 

가까운 곳에 가볼 만한 곳도 많다. 백운산 자연휴양림은 박물관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다. 백운산(1218m)은 지리산 반야봉, 노고단 등 지리산의 몇 개 봉우리를 빼고는 전남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휴양림은 이 산이 품고 있다.

 

백운산 자연휴양림은 인공림과 천연림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낸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 계곡도 좋다. 황톳길 산책로도 조성돼 있어 맨발로 산책로를 걸어볼 수도 있다. 휴양림이니 만큼 통나무로 만든 숙박시설이 있고 야영장도 있다. 야영장에선 오토캠핑도 가능하다. 나들이는 물론 가족 휴가지로도 좋은 휴양림이다.

 

 

산촌체험을 하고 싶으면 휴양림 앞에 있는 도선국사 마을을 찾아가도 된다. 도선국사 마을은 쉬어가는 박물관에서 백운산휴양림으로 가다가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옛날 사또가 주로 마셨다는 사또약수와 손두부로 유명한 고을이다.

 

여기선 모 심기, 찻잎 채취 등 농작물 수확체험을 비롯 손두부 만들기, 차 만들기, 도자기 만들기, 천연염색 등 계절별로 다양한 체험거리를 운영하고 있다. 고로쇠 약수로 된장과 간장을 담그는 농장도 이 마을에 있다.

 

먹을거리도 차원이 다르다. 광양은 참나무 숯을 이용해 구워내는 광양숯불구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게 아주 맛있다. 섬진강 모래톱에서 채취한 재첩 요리도 빼놓을 수 없다. 재첩 고유의 시원한 맛이 살아있는 재첩국물 그리고 쫄깃쫄깃한 재첩살을 부추, 고추장, 참기름으로 무친 재첩회무침도 별미다. 도선국사 마을에서 갓 만들어낸 손두부에다 막걸리 한 잔 걸쳐도 좋다.

 

덧붙이는 글 | 쉬어가는 박물관은 남해고속국도 광양나들목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다. 광양나들목에서 11번 지방도로를 타고 옥룡면 소재지를 지나면 오른편으로 박물관을 알리는 작은 입간판이 보인다.


태그:#쉬어가는박물관, #조홍헌, #광양, #도선국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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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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