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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으로 가는 길. 나로호 모형이 세워져 있다.
 고흥으로 가는 길. 나로호 모형이 세워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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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기대와 흥분보다는 덤덤하고 차분했다. 또다시 궤도 진입에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쏘아 올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동안 발사 연기와 실패를 되풀이한 탓이다. 지난 7일 발사체를 세우는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그래서 망설였다. 고흥까지 가서 우주발사체를 봐야 하나. 첫 발사 때처럼 호기심이 발동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지난해와 달리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수업하는 학기 중이고, 직장인들도 근무하는 때다. 관람객이 적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전체적으로 맥이 빠진 분위기였다.

그래도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안고서…. 남도 끝자락 고흥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차창을 꿰뚫고 비치는 햇볕은 뜨거웠다. 도로도 여느 때처럼 한산했다. 군데군데 설치된 이동 안내소도 느슨했다. 교통경찰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찾아오는 사람이 적고 길을 묻는 사람도 드물었다.

남열해수욕장. 왼편에 보이는 모래사장이 해수욕장이다.
 남열해수욕장. 왼편에 보이는 모래사장이 해수욕장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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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열해수욕장에 모인 아이들. 나로호의 성공 발사를 응원하고 있다.
 남열해수욕장에 모인 아이들. 나로호의 성공 발사를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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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남열해수욕장이다. 전라남도 고흥군 영남면에 있는 남열해수욕장은 나로우주센터의 발사통제동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다. 눈앞에 특별한 장애물이 없이 바다만 펼쳐져서다. 날씨만 좋으면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가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른바 포인트다.

하지만 남열해수욕장 인근도 그다지 북적거리지 않았다. 길거리에 자리를 잡고 앉은 포장마차의 주인도 연신 부채질만 해댄다. 지난해 몇 ㎞ 밖에서부터 차량을 통제했던 것과 비교하면 한산할 정도였다. 가는 길이 한산한 만큼 주차도 불편하지 않았다. 주차공간도 여유가 있었다.

해수욕장 소나무숲엔 그래도 사람들이 좀 있었다. 곳곳에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가 들어서 있었다. 축제장의 단골인 품바도 빠지지 않았다. 해변에선 컬투가 진행하는 라디오 생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연예인들이 나오는 공연치고 분위기가 비교적 차분했다. 

지난해 8월 나로호 발사 당시 1만여 명이 모였던 것에 비하면 썰렁할 정도다. 기껏 1000명에서 2000명 정도나 돼 보였다. 나로호의 성공 발사를 염원하는 응원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진기자들이 어린이들을 꼬드겨 태극기를 한번씩 흔들어보라고 하면서 연출을 시킬 뿐이었다.

실망... 태극기를 손에 든 관광객이 나로호의 발사 연기 소식에 기운이 빠진 모습이다.
 실망... 태극기를 손에 든 관광객이 나로호의 발사 연기 소식에 기운이 빠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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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 나로호 발사 연기 소식을 들은 여성관광객이 아이를 안고 나로우주센터 쪽을 바라보고 있다.
 실망... 나로호 발사 연기 소식을 들은 여성관광객이 아이를 안고 나로우주센터 쪽을 바라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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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로호 발사가 연기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소화용액 분출이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해변에 모인 사람들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다들 예견이라도 한 것 같았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장년층이 그 뒤를 이으면서 한 마디씩 내뱉었다.

"에이! 이게 뭐야? 쏘아보지도 못하고…."
"내 그럴 줄 알았어. 발사체를 제때 세우지 못할 때부터 알아봤어."
"리허설도 완벽하게 했다면서…. 양치기 소년이 따로 없네"

몇몇 관광객은 한동안 멍-하니 해수욕장 저편에 있는 나로우주센터를 바라봤다. 나름대로 실망이 큰 모양이었다. 담배 한 개비 물고 연기를 깊이 들이마신 한 관광객은 "발사 전에 문제점이 발견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문제점을 철저히 확인해서 다음엔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라디오 생방송 컬투쇼. 인기가수 비스트와 화요비 등이 출연, 컬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라디오 생방송 컬투쇼. 인기가수 비스트와 화요비 등이 출연, 컬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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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 대신 해수욕. 남열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나로호 대신 해수욕. 남열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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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 발사 연기 소식에도 라디오 생방송 무대 앞에 모인 학생들은 끄덕하지 않는다. 인기가수 비스트와 화요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애당초 나로호보다는 공연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공연도 꿋꿋하게 이어졌다.

아이들은 여전히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다.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 파도에 맞서 몸을 던지는 아이들도 보인다. 물놀이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부모들의 표정에는 흐뭇함이 묻어난다. 바닷물이 밀려왔다 간 모래사장을 다정하게 걸으며 나로호 발사 중지의 아쉬움을 달래는 연인도 보인다.

자원봉사를 나온 지역주민들의 안타까움은 상대적으로 커 보였다. 나로호 발사 연기가 자신들의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죄스러워하기도 했다. 일부 주민은 "다음 발사일에 관광객들이 더 오지 않을 것 같다"며 미리 걱정도 했다. 어떤 이는 "나로우주센터로 인해 고흥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것 같다"며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당초 우려대로 우주로 가는 하늘길은 이번에도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국민들 사이에서 나로호에 대한 기대감이 서서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심지어 교육과학기술부와 항공우주연구원을 '양치기 소년'에 빗대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니까. 그 때문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고흥으로 가는 길보다도 훨씬 더 멀게만 느껴졌다.

태극기와 신발. 관광객이 물놀이를 즐기는 사이 태극기와 신발만 덩그러니 남아 모래사장을 지키고 있다.
 태극기와 신발. 관광객이 물놀이를 즐기는 사이 태극기와 신발만 덩그러니 남아 모래사장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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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 언론사 기자들이 나로호 발사 연기에 따른 관광객 표정을 전하고 있다.
 허탈... 언론사 기자들이 나로호 발사 연기에 따른 관광객 표정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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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나로호, #남열해수욕장, #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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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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