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국선언 교사 징계 유보는, 나 개인의 독단이나 고집 문제가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헌법적 가치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됐고, 신장해 왔느냐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시국선언 교사 징계를 유보한 대가는 혹독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교육과학기술부에 의해 고발을 당했고, 검찰은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은 8일 오후 시작된다. 1심 선고는 오는 7월 중순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김 교육감이 여기서 유죄를 받으면? 김 교육감의 직무는 그날로 정지된다. 결코 가볍게 여길 사안이 아니다. 6.2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 후보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된 김 교육감의 운명은 재판 결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국선언 교사 징계 유보, 후회하지 않는다"

 

7일 오후 수원 경기도교육청에서 진행한 '교육감 당선인'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초반에 물어본 것도 그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 교육감에게 "징계 유보를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김 교육감은 웃으며 이렇게 여유 있는 대답을 내놨다.

 

"후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김 교육감은 "교사들에게도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점과 교과부의 고발 등을 약 100일 넘게 고민했다"며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절차를 존중한 만큼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2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약진한 상황. 솔직히 김 교육감이 조금은 '업'돼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더욱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거침없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할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경기도의회도 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않았나.

 

하지만 예상과 달리 김 교육감은 차분했다. 오히려 더욱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며 몸을 한껏 낮췄다. 김 교육감은 "이명박 정부의 경쟁과 서열 중심 교육은 분명 심판 받았다"고 강조하면서도 진보 교육감 연대에 대해서는 "정책 교류, 공감대를 높이는 수준에서 소통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연대체를 만드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이어 그는 "정부와 진보 교육감들이 자주 충돌할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도 "소통과 대화 속에서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본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김 교육감이 이렇게 겸손한 자세로 나온 이유는 인터뷰를 마친 뒤 그의 측근을 통해서 들었다. 김 교육감의 측근은 이렇게 말했다.

 

"이젠 '반MB 교육' 구호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진보 교육감들이 승리하지 않았나. 이젠 구체적인 정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말을 앞세워서 될 일이 아니다. 진보 교육감들 역시 이젠 시험대 위에 올라섰다. 평가는 냉정할 것이다."

 

한마디로, 'MB 교육'과 진보 교육이 이젠 공개적으로 대결을 펼치게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무상급식과 혁신교육'의 아이콘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고민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아래는 김 교육감과 나눈 일문 일답이다.

 
'MB 교육'과 동등한 시험대에 올라선 진보 교육
 

- 선거 운동 기간 중 언제 승리를 예감했나. 

"여론조사에서 계속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무응답층이 50% 정도여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반드시 이길 것이다'라는 생각은 못했다. 믿고 지지해 준 도민들과 유권자들에게 감사한다."

 

- 시국선언 교사 징계를 유보해 검찰에 기소됐다. 재판이 8일 오후 시작되는데, 유죄를 받으면 바로 직무가 정지되는 위험한 상황이다. 

"시국선언 교사 징계 문제는 교육청 간부들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교사들에게도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 이젠 징계위원회로 회부하자는 조언도 있었고, 징계위에 회부하되 경징계로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결국 여러 조언을 듣고 교육감이 최종 판단해야 했다.

 

약 100일 동안 의견을 듣고 소정의 절차를 거쳤다. (시국선언 교사 징계 유보는) 내 독단이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과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 범주를 고려하면서 최종적인 결론은 사법부 판단을 따르겠다고 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절차를 존중했다.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징계위에만 회부했어도 기소를 피할 수 있었다. 후회는 안 하나?

"후회가 있을 수 없다. 나 개인의 독단이나 고집 문제가 아니다. 이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헌법적 가치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됐고. 신장해 왔느냐와 관련된 문제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 속에서 이 사안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검토했다."

 

- 교육청 내에서도 많은 의견이 있었다고 들었다. 김 교육감이 최종 결정을 하면서 "지식인은 진실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후퇴하면 안 된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는데.

"(웃음) 교육청 가족들과 주변에서 많이 걱정을 하기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 6.2지방선거 결과 작년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도의회, 교육의원 등 든든한 우군이 생긴 것 아닌가.

"전체적인 선거 결과에 대해서 내가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경기도교육청과 관련 있는 도의회, 기초자치단체장 등의 선거 결과를 보면, 예전보다 분위기나 여건은 다소 좋아졌다."

 

- '김 교육감이 날개를 달았다'는 평가가 많다. 무상급식 추진 로드맵은 어떻게 되나.

"언론을 통해 그런 평가를 봤다. 물론 소통과 대화의 여건은 많이 좋아졌다. 2014년까지 의무교육 기간인 중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하는 게 목표다. 변수는 시·군 자치단체장, 기초의회 당선자들이 무상급식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다. 무상급식은 시·군과 함께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여건이 되면) 준의무교육이 된 고교까지 무상급식 실시를 고민해야 한다.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서 무상급식에 대한 국민 의식이 높아졌다. 이젠 국가적 차원에서 무상급식을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필요하면 내가 직접 국가에 검토 요청도 할 생각이다. 정부와 국회가 더 진전된 입법이나 준비를 하면 (국가적 차원의 무상급식 실시가) 좀 더 빠를 수 있지 않겠나."

 

"지식인은 진실 앞에서 머뭇거리면 안 돼... 사법부의 올바른 판단 기대"

 

-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처지가 뒤바뀌었다. 이젠 김 지사가 다소 외로운 처지가 됐는데.

"김문수 지사는 정치적인 경험도 풍부하고, 이번에 재선하면서 정치적 역량도 커졌다. 그가 적절한 방법으로 일을 잘할 것으로 본다. 다만, 경기도교육과 관련해서는 조금 더 미래지향적으로 열린 마음을 갖길 바란다."

 

- 지난 1년 동안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경기도의회나 지자체에서 내가 제안하고 요청한 무상급식의 취지가 왜곡되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난을 받을 때 안타깝고 힘들었다. 특히 무상급식 예산이 도의회에서 세 번이나 전액 내지 부분 삭감이 이뤄졌는데 '이렇게까지 대화가 안 될 수 있나' 하는 마음이 들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왜곡과 비난 중에서도 직간접적으로 무상급식 취지를 이해한다는 마음의 표시도 있었다. 다수가 반대했지만, 그런 분들이 있어 위안이 됐다."

 

- 그동안 많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감정은 잘 드러내지 않았다.

"난 경기도교육청의 수장이다. 도의회와 공식적으로 대면하면서 도교육청 대표가 아닌 개인의 감정을 앞세우는 건 곤란하다. 물론 나도 인간이라 안타깝고 서운했지만 그것을 공식석상에서 드러내는 건 최대한 삼가야 한다. 나는 그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최대한 대화와 소통을 하는 게 내 역할이다. 상대가 뭐라고 해도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것입니다'라고 차분히 이야기하고 이해와 수용을 부탁해야 한다."

 

- 사실 이번 전국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부담은 없었나.

"이번 교육감 선거는 교육 자치에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동안 현직 교육감으로서 교육 현장을 보며 교육감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실감했다. 우리 대한민국 교육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상당한 책임은 교육감에게 있다. 

 

그래서 이번 교육감 선거가 잘 치러지길 바랐다. '우리(진보 진영)만'이 잘되길 바라기보다는, 교육민주주의와 교육자치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나 인식수준이 커지길 바랐다. 그런 취지에서 선거 기간 동안 내가 할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사실 경기도에만 31개 시·군이 있어 (선거 운동을 하는데) 크고 벅차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계신 분들에게도 조금 도움이 되면 정책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봤다. 선거운동을 했다기보다는 정책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높이는 게 내 역할이었다."

 

- 벌써부터 '진보 교육감 연대' 이야기가 나온다.

"구체적으로 공식적인 연대체를 만드는 건 적절하지 않다. 정책 교류, 공감대를 높이는 수준에서 소통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가령, 정당 가입 교사들에 대한 징계 조치의 경우도 다른 진보 교육감 당선인들과 나는 사정이 좀 다르다. 나는 현직 교육감이라 바로 조치를 해야 한다. 이처럼 (진보 교육감 당선인 중에서도 처지가) 같은 부분도, 다른 부분도 있다."

 

- 진보 교육감들과 정부가 충돌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경기 교육과 관련해서는 그런 충돌이나 소모적인 논쟁이 예전보다 줄어들 것이다. 도의회 등이 달라졌고, 이미 지난 1년 동안 경기교육이 어떻게 변화 발전할 것인가의 많은 논쟁과 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기반으로 상당한 소통과 대화 속에서 구체적인 정책들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충돌? 대화와 소통으로 잘될 것"

 

- 결국 김 교육감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대화와 소통'인 것 같다. 

"누구든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핵심은 지금 허물어진 공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여기서 출발하면 기존의 입장이나 방향에 차이가 있어도 서로 조율할 수 있다고 본다."

 

-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서울-경기-인천 '혁신학교벨트' 구상을 이야기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풀어가겠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미래지향적인 선진교육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보수로 분류되는 교육감 당선인들도 상당수 고민을 같이할 것으로 본다."

 

- 교육감 선거 결과 이른바 'MB 교육'이 심판 받았다는 평가가 많다.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이명박 정부 교육 정책의 기조와 정책 방향 등은 평가 받았다고 본다. 언론 등에서 교육감 선거를 '진보 대 보수'로 썼지만, 유권자들은 그런 이분법이 아닌 정책적 내용을 보고 판단했다고 본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서 비판하고 평가한 면이 있는데, 이를 이념적인 문제로 연결시키면 안 된다. 유권자들은 기존의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경쟁·서열중심주의 교육이냐, 아니면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방식의 교육 기조와 방향이냐를 구분했다.

 

전국 16개 시·도 중에서 6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다. 진보 진영에서 12개 시·도에 후보를 낸 것을 감안하면 50%가 시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이는 새로운 방향의 교육 정책과 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수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높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다."

 

- 냉정한 평가를 받은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 입안자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나.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은 이미 대학입시에 예속돼 있다. 이는 적절하지도 않고 잘못된 것이다.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어느 대학에 보낼 것인가만을 염두에 두고 초중등 교육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정부가 추진한 (잘못된) 교육 정책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이를 바꿔내는 게 필요하다. 정부도 공교육 내실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이야기했지만, 구체적인 성과가 났나? 사교육비는 오히려 증가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입시·경쟁 중심 교육을 바꿔야 한다. 더불어 상상력과 창의력을 어렸을 때부터 키울 수 있도록 교육의 틀을 바꾸자고 제안하고 싶다."

 

"MB식 경쟁 교육 대신 상상력과 창의력 교육을 합시다"

 

- 앞으로 4년, 경기도 교육을 어떻게 바꿔놓고 싶나. 

"4년 뒤, 학생들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가 되어 있거나 되어 가고 있을 것이다. 또 학부모들이 믿고 자녀들을 학교에 맡기는 학교 교육이 되어 가고 있을 것이다. 학교의 분위기와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선진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4년 내에 충분히 바꿀 수 있다."

 

- 학부모들의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다른 무엇보다 자녀들 학력 신장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사실 아닌가.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지금은 대입에 초중등 교육이 예속돼 있다. 하지만 초중등 교육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기 위치를 잘 잡고, 밝고 발랄하게 공부하면서 자아를 실현하게 된다면? 학부모들도 그런 아이를 보면서 믿음과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교육 담당자들이)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동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 교원평가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크다. 전교조 등은 반대하지만 찬성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교원평가는 이미 시작됐다. 평가가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추진될 것인가는 계속 조율·조정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교원평가 결과가 무리하게 인사관리에 이용되는 걸 막고, 말 그대로 교원들의 능력 개발에 평가가 참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다른 무엇보다 학생들은 두발 자유와 야간 자율학습 선택권에 관심이 많은데.

"선거 운동을 하다 보니, 학생들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환호하고 그러더라. 교육감 개인을 좋아한다기보다 아마 두발 자유화 등 정책 때문인 것 같다.(웃음)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를 거쳐야 하는데, 몇 달은 더 지나야 통과될 것이다. 유세 때도 이야기했지만, 몇 개월은 더 학생들이 기다려야 한다. 아직 토론의 과정이 더 남아 있다."

 


태그:#김상곤, #진보교육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