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을 결정하기까지

지난 6월 4일 목요일은 유난히도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퇴근길에 건너편 생맥주집 앞을 지나다 시원한 생맥주가 생각나 빠끔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곳엔 우리 직장 등반대장을 맡고 있으며 자전거 마니아인 김 팀장이 자전거를 옆에 세우고 한잔 하고 있었다. 동석하여 500cc 맥주 한 잔을 하는데 6월 6일 현충일에 자전거로 속초를 간다고 한다.

몇 해 전 그의 블로그에서 자전거로 속초를 다녀온 수기를 읽고 부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6월 5일 토요일 운동을 다녀와서 좀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문득 자전거 생각이 나서 김 팀장한테 전화를 돌려 "혹시 나 좀 데리고 가면 안 될까?"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환영이란다.

하지만 선뜻 결정을 못했더니 이번 기회에 한 번 나서보라고 채근이다. 쉽게 결정을 못하는 이유는 내가 자전거를 탄 경력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준비해서 100km 밖에 라이딩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다 속초까지는 약 210km를 가야 한다고 한다. 또 내가 52년생이니 나이가 너무 많다. 백두대간을 두루 섭렵했던 등반대장 김 팀장은 59년생이고, 동반하기로 한 다른 한 친구는 62년생이니 나하고 열 살 차이가 난다. 그러니 나로 인해 행여 중도 포기 하는 일이 발생할까 봐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거의 매일 아침 조기 테니스로 체력은 어느 정도 된다는 생각과 한 해라도 시간이 더 지나가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아내와 딸은 너무 무모한 도전이라고 걱정을 한다.

새벽 네 시에 잠실 철교 아래서 출발

우리 셋은 현충일 날 새벽4시에 잠실철교 아래 한강둔치의 자전거도로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얇은 여벌 옷 한 벌과 초콜릿, 오이, 음료 등의 간식을 작은 배낭에 넣어 나오란다. 모닝콜을 아침 3시에 맞춰 놓고 한 잔하러 나오라는 테니스 회원들의 요청도 무시하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잠이 오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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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의 성내천 모습. 자전거 도로와 생태하천으로 잘 복원된 성내천의 요즘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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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새벽 바람을 안고 성내천 자전거 도로를 달려 잠실철교 밑에 도착하니 새벽 네시. 간단히 몸을 풀고, 4시 5분에 출발하여 한강자전거 도로를 따라 암사동을 지나고 팔당대교까지 가는 구간에는 여명 속에 노랗게 피어난 갖가지 꽃들이 이슬을 머금어 더욱 싱그럽다. 미사리 주변 둔치의 찔레꽃이 하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만발하고 자전거 도로나 산책로가 잘 가꾸어져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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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전 모습. 새벽 네시 한강 둔치에서 출발에 앞서 김대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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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대교를 지나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 부근의 옛 국도를 따라 양평에 도착하니 오전 6시 5분. 주행거리가 32km다. 해장국 집에 들려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자전거 잃어 버린다고 식당 주인의 양해를 얻어 식당 안까지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가야 했다.

자전거가 펑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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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펑크 도로 우측 가장자리를 달리다 보니...각종 이물이 가장자리에 모이게 되어 작은 프라스틱 조각에 의해 펑크가 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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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마의 구간은 양평군을 벗어나 홍천군에 접어드는 며느리고개. 잘 다듬어진 46번 국도를 줄기차게 달리며 양평소방서 앞을 지나는데 느닷없이 퍽 하는 소리가 난다.

자전거가 나가지를 않고 너덜너덜하여 내려서 보니 좀 날카로운 프라스틱 조각이 뒷바퀴에 박혀 펑크가 나버리고 만 것이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되어 있고 우측 가장자리를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도로의 가장자리 부근에는 항시 이런 이물들이 많아 자전거 펑크가 잘난다는 자전거 마니아의 얘기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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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수리 노련한 김팀장의 자전거 펑크 수리하는 데 약 30분이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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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모한 도전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했더니... 역시 베테랑 김 팀장이 조그만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낸다. 자전거를 거꾸로 세우고 타이어를 빼고 튜브를 꺼내 펑크 수리를 하는 데 약 30분이 걸렸다. 다시 동쪽으로의 주행은 계속됐다. 첫 번째 마의 구간이라는 며느리 고개는 터널을 통과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터널 속을 통과할 때는 지나가는 차량의 소리는 마치 팬텀기 뒤에서 추진굉음을 듣는 것처럼 귀청이 찢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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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보충 중 마의 구간이라고 하는 며느리 고개를 앞두고 간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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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밥에 보양식을... 점심식사로 시킨 보리밥에 김팀장이 특별히 준비해온 보신용 수육을 같이 넣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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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km를 주행하고 쉬기를 수차례 홍천군과 인제군 경계쯤에서 보리밥집에 들려 점심을 했다. 역시 노련한 김 팀장이 체력을 유지하려면 먹어야 한다며 준비해 온 보신탕 수육을 내놓는데 다시 한번 놀랐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인제군 경계에 들어서니 소나기가 시작된다. 나무로 남성의 성기를 주로 만들어 전시한 청정조각공원에 들어가 소나기를 피했다. 원통 부근을 지날 때도 한차례 소나기가 훑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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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기를 피해 들어간 휴게소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피해 들어간 휴게소는 목재를 이용한 남자의 성기 전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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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싶은 고비를 넘고 나니 오기가 생기다

라이딩을 시작한 지 열 시간이 지난 오후 두시경이 되니 기력이 떨어지고 장딴지 근육이 아파오고 안장이 닿는 사타구니 부근은 안장에 대기도 싫어진다. 그 때부터 후회가 되기 시작한다.

내가 무슨 고생을 이렇게 사서 한다는 생각에서부터 아내의 말을 들을 걸, 아니면 여기서 포기하고 인제에서 낚시가게 하는 친구나 용달을 불러서 미시령까지 실어다 달라고 할까 등등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 하지만 나보다 젊은 직원들의 도전에 끼어든 내가 판을 깬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 그 때부터 처지기 시작하니 더욱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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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령로로 들어서기 전. 극한 상황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한계령과 미시령으로 갈라지는 지점의 휴게소에서 꼭 이루겠다는 오기가 발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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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힘을 다해 원통을 통과하고 한계령(양양방향)과 미시령(속초간성방향)이 갈라지는 지점의 휴게소에 들어서서 물과 음료수를 마셨다. 휴게소 처마에 집을 짓고 새끼에게 연신 먹이를 물어 나르는 제비를 보니 이제는 오기가 생긴다. 죽어도 미시령 옛길에 올라선다는 각오를 다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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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령을 향해 미시령길과 진부령 길이 갈리는 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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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입구가 있는 용대리를 향한 오르막이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미시령 옛길을 향해 패달을 힘차게 밟아대니 4차선으로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아스콘 냄새가 고소한(?) 갓 포장한 미개통  아스팔트나 터널로 들어가 공사 관계자한테 야단도 맞았지만 우리의 진행은 계속되어 미시령 터널 입구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시 경이다. 벌써 서울을 출발한 지 13시간이 되었다.

조선시대 파발은 속초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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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령 옛길 자전거를 끌고 걸어서 올라가는 미시령 옛길은 변한 것이 없다. 다만 차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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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 터널은 자동차 전용도로로 자전거가 들어갈 수 가없다. 그래서 미시령 옛길을 올라가야 하는 데 경사와 구배가 심해 우리 같은 초보는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는 힘들다.

하지만 노련하고 체력 좋은 우리 김 팀장은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것이 목표란다. 그리고 성공을 했다. 하지만 나와 다른 동료는 정상에서 3km 전방부터는 걸어서 올라야 했다. 정상에 도착하니 18시 30분경이다. 미시령 정상까지 14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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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령 정상 드디어 미시령 정상에 도착하여 숨을 돌리다. 이때가 18:30이니 꼭 열네시간 반이 걸린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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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에 와본 미시령 정상인가? 그리고 자동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전거와 보행으로 여기를 올라와 볼 것이라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 아닌가? 우측으로 비켜 보이는 울산바위와 뱀처럼 꾸불꾸불한 속초로 내려가는 도로며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왕명을 받은 파발은 속초까지 며칠쯤 걸렸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기념사진 몇 컷을 찍고 길을 재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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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령 휴게소에서.. 속초시내와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미시령 휴게소에서 증명사진을 한컷... 우측으로 울산바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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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전거가 보기도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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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애륜 210km를 함께한 나의 자전거 예우 차원에서 울산 바위를 배경으로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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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속초에서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 경사와 구배 심한 내리막길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속초의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7시. 꼬박 열다섯 시간이 걸렸고 자전거의 주행계를 보니 총 210km를 주행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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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룻동안 이렇게 탓다. 반바지 입은 허벅지가 이렇게 햇볕에 그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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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서울행 표를 예매하고 근처의 목욕탕에 들어가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을 한잔씩 들이켰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하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밀어닥친다.

근처의 횟집에서 시원한 물회 한 그릇으로 저녁을 마치고 밤 열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던지고 눈을 떠보니 새벽 한시, 강남 터미널이다. 버스 짐칸에서 꺼낸 자전거가 이젠 보기도 싫어진다. 힘들어 자전거를 타지도 못하겠다. 화물 택시를 불러 자전거를 실고 집에 들어오니 새벽 2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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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로 갈 고속 버스 짐칸 고속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싣고 서울로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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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모한 도전을 왜 했을까? 나이가 들어가며 모든 일에 앞으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심정의 발로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일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