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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기사 아저씨와, 다른 여정의 문앞에 서있는 나, 딱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으련만. 내 머리속에 알렉산드리아를 가기 위한 방법을 조사했던 것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알렉산드리아를 가기 위한 기차는 람세스역에서 타야 한다). 7시 52분에 도착한 람세스 역을 앞두고, 내 머릿속에선

 

'아, 저 낯선 건물은 뭐지? 내가 표 끊으러 왔던 그 곳이 아니잖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순간 너무나 당황한 나는 '여기가 아니다'라는 말을 연발하고, 기사 아저씨는 여기가 람세스 역이라고 반복하여 대답했다.

 

결국 나는 기차를 놓쳤고, 처음 본 택시기사 앞에서 분노의... 나를 향한 분노의 눈물을 보여버렸다. 나는 남들이 볼 때에 쉽게 눈물을 흘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택시 안에서 어이없이 이런 일을 만든 나 자신을 향해 어찌 할 바 모르고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잘하고 있었는데, 다음 여정지의 비자를 받기 위해, 이사 가서 찾기 어려운 에티오피아 대사관도 잘 찾아 비자도 받고, 매진됐다는 기차표도 끊으러 몇 번이고 기자(giza) 역에 가서 예매하고, 잘 하고 있었는데, 잘 되고 있었는데…. 어이없게 택시기사에게 람세스역으로 잘 못 얘기한 덕분에 난 호스텔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낯선 동양여자의 눈물에 당황했는지, 그는 계속 내 이름을 부르며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실수라고, 사람은 다 실수하고 그러는 거라고 위로하며 32파운드 나온 택시비를 20파운드만내라며 오늘 지낼 돈은 있냐고 했다. 그것이 날 더 슬프게 했다. 계속 분노의 눈물이 삭혀지지 않는 상태에서 난 그에게, 난 지금 슬픈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그러는 것임을 지껄여대며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을 다 지불하고 싶다며 돈을 내밀었다. 오늘 많이 당황한, 더구나 착하기까지 한, 기사 아저씨는 끝내 돈을 다 받지 않았고 무슨 일이 생기거들랑 전화하라며 번호를 적어주고는 떠났다.

 

"사라! 어찌된 거야?"

 

내 방을 다시 달라며, 돈을 내미는 나에게 리셉션에 있던 무스타파가 물었다.

 

"미안, 무스타파. 나 지금은 별로 얘기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야. 나중에."

 

눈이 벌겋게 상기되고 몰골이 딱 봐도, '쟤, 많이 울었구나'라고 보이는 상황에서 난 내 일을 화제삼고 싶지 않았다.

 

"그래, 여깄어."

 

열쇠를 주는 그에게 내가 너무 딱 잘랐나 싶어 대꾸했다.

 

"그냥... 기차를… 놓쳤어…."

 

왜 이 얘기를 하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지 바보 같았지만, 난 최대한 삼키며 말하고는 방으로 돌아섰다. 내 자신을 향한 한심함을 최대한 이해하고 감싸주려고 노력했으나 안 되었던 것을 고백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 때는 남들이 나에게 퍼붓는 비난보다, 내자신이 나에게 가하는 비난과 몰인정이 가장 힘들다고 믿는 사람이기에 무언가 날 향한 용서가 필요했다. 그 때, 누군가가 방문을 노크했다.

 

"누구세요?"

"사라, 나 무스타파야."

 

내가 머물고 있는 도미토리 룸 방문 앞에 무스타파가 서 있었다.

 

"너, 괜찮아? 그냥 뭐하나 하고…"

"들어와."

 

같은 방에 머물고 있던 카를로스는 산책을 나가서 아직 들어오지 않은 터라, 나 혼자 마음껏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온 무스타파는 어색한지, 늘상 농담을 하던 장난꾸러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쭈삣거리며 얘기했다.

 

"그냥, 뭐 하나 하고. 너 컴퓨터 하는 거 좋아하잖아. 밖으로 나와. 이렇게 혼자 있지 말고."

"신경써줘서 고마워. 근데 나 지금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지 않아. 그냥 여기 있을래."

"아무말도 안해도 괜찮아. 그냥 밖으로 나와."

 

물러서지 않을 듯, 고집스럽게 무스타파는 계속 나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무스타파. 내가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어. 나, 왜 람세스역이라고 얘기한 거지? 너무 화가나. 택시기사가 목적지를 물어보는데, 람세스역이라고 얘기했어. 기자역을 몇 번이나 그렇게 갔으면서도... 나, 있지, 예전에 태국에선 시간의 am, pm을 헷갈려서 한국 오는 비행기표를 날린 적도 있어. 난 이런 애야. 나 왜 이럴까. "

 

결국 무스타파는 속으로 앓고 있던 나를 향한 분노를 표출하게 만들었다.

 

"사라, 지금 니 마음 이해해. 그런데 누구나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한 경험은 가지고 있어. 너만 그런 거 아냐. 기차는 내일 타도 되고 모레 타도 되잖아. 너를그렇게 괴롭히지 마. "

 

헤어지는 일상이 싫어서 여행하기 싫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처음으로 난 룩소르로 향하는 일등석 기차 안에서 그런 생각에 마음이 먹먹했다. 인종도 다르고, 한국 사람만큼 말이 완벽하게 통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나도 다른 문화지만 나로 하여금, 그들은 그런 감정을 갖게 했다.

 

내 방문을 노크하고 얘기한 이후로, 장난꾸러기였던 무스타파와는 더 급속하게 친해졌고 짧은 시간에 정이 들어 버렸다. 종단여행을 끝내고 나면 다시 이집트로 오지 않겠느냐 했지만, 그런 것을 약속하기엔 난 너무 현실적이었다.

 

진심으로 날 걱정하는 눈빛을 보내며 카를로스는 "너, 다시 돌아오면 니 엉덩이를 차서 룩소르까지 날려버리겠다!"고 했고, 이슬램은 표를 못 구한 나 때문에 직접 역까지 가서 표를 구해주었다. 무스타파는 내가 떠나기 전 얘기했다.

 

"너, 가는 거... 안 봐도 괜찮지?"

"……."

"안 보려구. 나 바쁘니까, 아마 여기 없을 거야."

"알았어. 잘 있어…."

 

그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떠날 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기 있던 무스타파는 어디갔냐'고 이슬렘에게 물었지만, 그는 기도하러 떠났다고 했다.

 

가끔, '헤어지는 것'이 일상이 되는 여행이 싫어질 때가 있다.

 

덧붙이는 글 | - 이 여행기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태그:#이집트, #아프리카, #아프리카 종단, #룩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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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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