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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17일)은 둘째 누님(75세) 생일이어서 셋째 누님과 함께 인천에 다녀왔다. 4월에 찾아뵙지 못하고 내려와서 마음에 걸렸었는데, 함께 점심이라도 하고 오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둘째 누님은 한국전쟁 중에 육군 특무상사와 중매로 결혼해서 휴전과 함께 고향을 떠나는 바람에 어렸을 때 기억은 별로 없다. 다만, 누님 등에 업혀 다니면서 봤던 주변 모습 몇 장면이 색 바랜 흑백영화 필름처럼 기억에 남아 있는 정도다.

 

그러나 누님이 나 때문에 고생을 무척 했다는 얘기는 귀가 아프도록 듣고 자랐다. 유난히 투정이 심했고, 업히는 것을 좋아했던 나, 그래서 누님이 편할 날이 없었다는 것이다. 집에 자주 놀러 오셨던 아주머니들은 죽도록 잘해도 성가시게 했던 빚을 못 갚을 거라고 했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데, 잠도 나를 등에 업고 엎드려 잘 정도였다고 한다.

 

어려서는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들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생각이 달라지면서 미안한 마음과 애틋한 정이 쌓여갔다. 그래서인지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갈 때마다 들러 조금이라도 용돈을 드리거나 마른 생선을 사다 드리곤 했다. 더 늙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봐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한데 75회 생일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둘째 누님' 만나러 가던 날

 

지난주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내가 언제 인천에 가느냐고 묻기에 셋째 누님과 일요일(16일)에 가기로 약속했다고 하니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약소하지만 성의 표시이니 둘째 누님에게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시누이 생일을 챙겨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16일 오후 2시 버스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군산 시외버스 터미널에 1시 40분쯤 도착했는데 셋째 누님(70세)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더니, 매표구 쪽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따져보니까 셋째 누님과 둘만의 여행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누님이 그만큼 살림하느라 정신없이 살아왔다는 얘기도 되겠는데, 할미꽃처럼 굽은 허리로 보따리 세 개를 힘겹게 들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까 '우리 누님이 벌써 저렇게 늙었나?'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 마음이 짠했다.

 

보따리 세 개에는 찰밥과 쑥 개떡, 팥 칼국수 재료가 담겨 있다고 했다. 옛날부터 형제들이 모이거나 야유회를 갈 때마다 항상 먹을거리를 푸짐하게 장만했던 누님이었다. 그런데 허리도 굽고 몸도 둔해졌는데도 변함없는 정성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에 오르니까 무척 더웠는데, 앞자리를 좋아하는 누님과 조금 떨어져 앉았다. 갈증이 나면서 얼음과 우유 맛이 나는 콘이 생각났다. 해서 매점으로 달려가 두 개를 사서 하나를 누님에게 주었더니 "찐득찐득 헌 것을 머허러 샀냐!"며 머퉁이를 하면서도 웃으며 받았다.

 

콘의 횃불처럼 솟은 부분은 더위를 식히며 시원하게 먹었는데, 손잡이 안에 든 크림은 핥아먹기가 궁색했다. 어떻게 먹을지 궁리하다 손잡이 아랫부분에 플라스틱 스푼이 들어 있는 것을 어렵게 발견했다. 미로를 헤매다 통로를 찾은 것처럼 반가우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앞자리에 있는 누님도 나처럼 고민하고 있을 것 같았다.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갔더니 생각대로 이리저리 살피며 만지작거리고 있기에, 노란 종이를 뜯어내고 플라스틱 스푼을 꺼내주었더니 "세상에, 거기에 있는 것도 모르고 한참을 찾았네!"라며 겸연쩍어했다. 여우와 학이 서로 식사에 초대해서 골탕먹이는 이솝우화가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버스가 평택 시내로 진입할 무렵에 전화벨이 울리기에 받았더니 수원에 사는 조카며느리였다. 큰 누님 둘째 며느리인 그는 지난달에도 인절미를 만들어와 맛있게 먹었는데 또 전화를 걸어왔다. 남편과 함께 전주에 사는 친정아버지를 뵙고 오는 길인데, 막내 이모(누님)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다며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막내 누님 집에 도착해서는 셋째 누님이 해온 찰밥에 쑥 개떡, 그리고 가져온 재료로 만든 팥 칼국수를 안주로 막걸리를 몇 병 비우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놀다가 조카 내외는 9시 조금 넘어 다음에 또 만나기로 약속하고 돌아갔다.

 

집에서 출발하던 16일은 무척 더웠는데 조카며느리가 친절을 베풀어주어 시원하고 흐뭇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특히 항암 주사를 중단해도 된다는 막내 누님의 검사 결과 소식은 우울했던 모두에게 미소와 웃음을 찾아주기에 충분했다.

 

빗줄기도 축하해준 '둘째 누님' 생일     

 

이튿날(17일)에는 아침을 먹고 누님들과 매형 이렇게 넷이 인천 부평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둘째 누님 막내딸(조카)이 전화를 해왔다. 구로역에서 내려 갈아타지 말고 밖으로 나와 기다리면 모시러 온다고 했다. 

 

구로역 광장에서 조카를 만나서 둘째 누님 집에도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둘째 누님은 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길가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는데, 순간 세월이 가면 늙는 게 당연한 것을 알면서도 "우리 누님이 벌써 저렇게 늙었나?" 소리가 또 나왔다.

 

모두 차에서 내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까? 의견이 분분했는데, 막내 매형이 "오늘의 주인공이니 드시고 싶은 음식을 잘 하는 식당으로 안내해야죠!"라고 하니까 둘째 누님이 싸면서도 맛이 좋다는 식당을 추천했다.

 

왕만두와 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었고, 크지는 않지만, 찬이 깔끔하게 차려져 나왔다. 냉면 한 그릇에 3천5백 원이었는데, 맛은 6천 원짜리와 다를 게 없었다. 특히 처음 먹어보는 주꾸미삼겹살 찌개는 칼칼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셋째 누님이 밥을 먹다 말고 가방에서 쑥 개떡 한 뭉치를 꺼내, 언니 주려고 만들어온 거니까 냉장고에 보관해놓고 먹으라며 건네주었고, 막내 누님은 직접 쒀온 묵을 생일 선물로 주었는데 값비싼 의류나 보석을 주고받는 것보다 아름답고 애틋하게 다가왔다.

 

얼추 계산해보니까 식대가 4만 원 정도면 해결될 것 같았다. 해서 아내가 준 돈으로 계산하면 '떡고물'이 조금 떨어질 것 같았다. 해서 약은꾀를 먹고 식대를 계산하려는데 막내 매형이 누구든 식대를 계산하면 화를 낼 거라며 못을 박았다.

 

어쩔 수 없었다. 해서 안나 엄마(아내)가 참석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에 과일이라도 사드시라고 했다면서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둘째 누님에게 건넸다. 처음엔 사양하던 누님도 주위에서 권하니까 집에 가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달라며 받았다.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나와 아쉽게 작별하고 영등포에 도착하니까 막내 매형이 기차표까지 사주었다. 고마우면서도 이틀 동안 사용한 돈이 셋째 누님과 사먹은 콘 값 4천 원이 전부여서 허전함이 밀려왔다. 아무리 없어도 쓸 때는 써야 하는 게 돈이기 때문이었다. 

 

군산역에 도착하니까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제법 굵었는데, 주변 가로수 잎과 풀잎을 때리는 빗소리는 둘째 누님의 건강을 기원하고 일흔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해주는 반주로 느껴졌다.


태그:#둘째누님, #생일, #쑥개떡, #팥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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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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