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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에안성의 성도 빈(Vinh)에 도착하였다. 빈에서 서쪽으로 20km 지점에 호치민 생가가 있다. 거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여건은 전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베트남까지 와서 위대한 영웅 호치민의 생가를 가보지 않는 것도 매우 후회할 만한 일이었다.

자전거와 짐을 맡기고 호치민 생가로

택시를 타고 가면 되지만 문제는 자전거와 짐이었다. 궁리하다 보니 자전거 가게가 보인다. 찢어진 타이어도 갈아야 되므로 들렀더니 마침 주인이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우리는 그 가게에 자전거와 짐을 맡기고 불러준 택시를 타고 생가가 있는 캄 리엔(Cam Lien)으로 갔다.

생가는 매우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다. 호치민이 나고 자란 외가로 초가집이 몇 채 있고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호치민은 몸과 마음을 모두 조국 베트남의 통일에 헌신한 세계적인 지도자이다. 전쟁 중에 사망하지만 그가 남긴 "당과 인민의 단결"은 결국 베트남을 통일에 이르게 한다.

 매우 소박하게 꾸며진 호치민 생가
 매우 소박하게 꾸며진 호치민 생가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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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주차비를 내다

도로가에 근사한 식당이 있어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식당 앞에서 자전거에 내리니 마치 주차 편의를 봐주는 사람이 오는 것처럼 한 젊은이가 다가온다. 식당 벽에 주차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식당에서 나온 줄 알고 식당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려다 안에서 보이기에 바깥벽에 기대 놓았다. 그런데 웬 번호가 적힌 딱지를 준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이들이 주차비를 달라고 한다. 그것도 한 대당 2만동씩 8만동을. 8만동이면 식당에서 먹는 맥주가 8병 값이다. 하도 어이없었으나 젊은 것들이 그래도 돈 좀 벌겠다고 나선 것 같아 반을 깎아 4만동을 주었다. 반 강제적이었으나 아무튼 생전 처음으로 자전거 주차비를 냈다.

손빨래하는 세탁 서비스

하틴(Ha Tinh)과 꽝빈(Quang Binh)성의 성도 동호이(Dong Hoi)를 지나 17도선 군사분계선에 이르니 매우 커다란 기념탑 같은 건물이 있고 베트남 국기가 높이 솟아 있다. 도로 건너편에는 옛 모습의 집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각 방에는 전쟁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옆으로 벤허이(Ben Hai) 강이 흐르고 강물 위로 미군의 폭격에 의해서 여러 번 끊긴 히에르엉(Hien Luong 다리가 놓여있다.

 벤허이 강과 히에르엉 다리, 멀리 기념조각상이 보인다.
 벤허이 강과 히에르엉 다리, 멀리 기념조각상이 보인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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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Dongha) 전 7km 지점에서 점심을 하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오늘 머무를 도시는 거의 다 왔고 시간은 충분해 비 그치기를 오래 기다렸으나 영 그칠 기색이 없다. 비에 젖은 채로 호텔로 들어섰다. 일찍 도착해서 다행히 세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세탁기에 돌릴 줄 알았으나 전부 손빨래하는 것을 보았다. 아직 세탁기가 보급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건조기도 없다. 다음 날 세탁물을 받았을 때 조금 눅눅했지만 그래도 말리려고 애쓴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경쟁하듯 울려대는 경음기 소리

베트남의 소음은 대단하다. 거리에서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경음기를 울려댄다. 처음엔 적응하기 매우 어려웠으나 경음기 소리가 나를 보호해준다는 생각을 하니 참을 만했다. 뒤에서나 앞에서나 경음기가 울리면 갓길로 내려간다. 자동차는 우릴 보호하듯이 간격을 두고 옆으로 비켜간다.

1번 국도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는 물론이고 우마차를 포함해 온갖 교통수단이 다 사용한다. 주 도로는 왕복 2차선이고 중앙보호벽은 물론 노란 중앙선조차 대도시 외엔 보질 못했다. 주 도로 양 옆에는 폭이 좀 좁은 갓길이 꼭 있다. 대부분 자전거와 작은 오토바이는 이 길을 사용한다. 자동차가 이 길을 침범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듣던 바와 달리 1번 국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안전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안전했다.

 1번 국도의 갓길. 매우 안전하다.
 1번 국도의 갓길. 매우 안전하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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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 무질서 속의 질서

베트남의 환경은 타이완과 매우 비슷했다. 도로 양옆에 있는 2, 3층 건물이 뒤로 길쭉한 것이나, 오토바이가 물결을 이루며 달리는 것. 그러나 대만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역주행이 베트남에선 너무나 보편화되어 있다. 왕복 2차선인 도로에서 자주 두 대의 차가 앞에서 나란히 온다. 심지어는 세 대의 차가 나란히 오며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것을 자주 보았다.

갓길에서의 역주행은 마치 법으로 허용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한다. 베트남에서 차량은 우측통행을 한다. 그러나 갓길에서 마주치면 자연스레 좌측통행을 하여 비켜간다. 무질서 속의 질서라 할까 나름대로 질서가 있어 그나마 사고를 줄일 수 있는 것 같다.

환전 사기를 당하다

꽝찌(Quang Tri)성의 성도 동하는 군사분계선 안에 있는 땅굴 관광의 중심이 되는 도시이다. 숙박한 호텔 앞에 개인 환전소가 있어 환전하였다. 이상하게 환전하는데 바로 앞에서 주지 않고 돈만 받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한참 있다 내려오는데 지폐를 다양하게 섞어서 준다. 분명 앞에서 셀 때는 맞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일부 사기당한 것을 알았다. 10만원권에 5만원을 섞어준 것이었다.

찜찜한 마음을 뒤로하며 북부를 벗어나 중부에 있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웬(Nguyen) 왕조의 수도 후에(Hue)에 입성하였다. 후에에 들어서자 젊은 아가씨 둘이 '한국인이죠'하며 반가워한다. 둘이서 북부에서 남부까지 관광버스로 일주하는 중이란다. 하노이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보는 한국인이라 매우 반가웠다. 마침 배도 고팠는데 바나나를 한 다발 사더니 일부 건네준다.

프랑스는 1885년 청나라와 2차 톈진조약을 맺고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는다. 이후 남부를 코친차이나로 바꾸고 직접 통치하였으나 중부는 안남으로 바꾸고 보호국으로 삼아 당시 응웬 왕조가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후에는 이 왕조의 수도로 높은 담과 성이 거의 훼손되지 않았고, 황궁 둘레에 쳐진 해자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조선도 비록 일본이 강점했을지라도 왕조가 망하지 않고 자치권이나마 행하였다면, 옛 모습의 한양을 많이 유지하고 있어 오늘과 같은 모습의 서울이 아니었을텐데 하는 회한이 든다.

 후에 황궁과 주차된 자전거. 그 사이에 해자가 있다.
 후에 황궁과 주차된 자전거. 그 사이에 해자가 있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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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세차비 주고 자전거를 닦다

황궁을 뒤로 하고 후옹(Huong) 강을 건너 신도시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외국인이 많이 보였고 간판이나 메뉴도 영어로 된 것이 많다. 호텔에서는 영어가 통했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 너무도 지저분한 자전거를 닦기 위해 세차장을 찾았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세차해 주는 곳에서 쾌히 우리 것도 해 주었다. 처음으로 자전거 세차하고 값을 지불했다.


#호치민 생가#후에 황궁#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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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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