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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골목동네에서 만나는 골목고양이. 느긋하게 마실을 하다 보면 날마다 여러 마리를 만납니다.
 골목동네에서 만나는 골목고양이. 느긋하게 마실을 하다 보면 날마다 여러 마리를 만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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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할 때에 골목을 휘젓거나 가로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숱한 골목길 삶자락 가운데 하나'입니다. 해바라기를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님들 또한 '갖가지 골목길 발자취 가운데 하나'입니다.

골목길을 사진으로 이야기한다고 할 때에는 아이들 뛰노는 사진을 100점 가운데 한두 점 보여줄 수 있습니다. 도란도란 모여 있는 할머님들 또한 100점 가운데 한두 점 섞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골목길 사진이라고 하면서 아이들 모습이나 할머님들 사진으로만 100점을 모두 이루어 내려고 한다면, 이러한 사진들은 골목길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한 점으로도 어느 한 가지를 통째로 말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만, 장님 코끼리 만지듯하는 사진에 머물기 일쑤입니다.

골목안 풍경을 사진으로 담은 김기찬 님은 아이들 모습을 많이 잡아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책으로 묶인 사진을 볼 때에나 전시회에 나온 사진을 볼 때에만 이렇게 느낄 뿐, 김기찬 님이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을 때에 '아이들이 그토록 자주 많이 찍히지'는 않습니다. 따로 이렇게 모아 놓으니 골목길을 돌아다니면 아이들을 자주 많이 볼 수 있는 듯 잘못 여기고 있습니다.

골목길에서는 꽃 한 송이를 만납니다. 골목길에서는 나무 한 그루를 만납니다. 골목길에서는 빈 걸상 하나를 만납니다. 골목길에서는 빨래 한 점을 만납니다. 골목길에서는 고양이나 개 한 마리를 만납니다. 골목길에서는 꽃그릇 하나를 만납니다. 골목길에서는 문패 하나를 만납니다. 골목길에서는 누름단추 하나를 만납니다. 골목길에서는 나무문이나 쇠문이나 샤시문이나 얼기설기 엮은 문을 만납니다. 골목길에서는 타일로 붙인 벽이나 벽돌로 댄 벽이나 흙으로 놓은 벽이나 시멘트로 바른 벽을 만납니다. 어느 때에는 흙벽에 벽돌을 붙였다고 시멘트로 바른 벽을 만납니다. 골목길에서는 나무 창문틀을 만나고, 어느 때에는 먼 옛날 창호지 문틀을 만납니다. 천주교회 다니는 분들 붙임쪽지를 만나고 절집 다니는 분들 붙임쪽지를 만납니다. 조촐한 우체통을 만나고, 기와 지붕이나 벽돌 지붕이나 함석 지붕을 만납니다. 골목가게를 만나고 골목가게 자전거를 만납니다. 나무전봇대를 만나고, 나무전봇대 다음으로 선 예전 자그마한 시멘트 전봇대를 만납니다. 길바닥이나 벽에 그린 낙서를 만납니다. 높직한 아파트에 가려지지 않은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만납니다. 눈이 내린 날에는 고양이 발자국 찍힌 눈길을 만납니다.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는 모습은 백 가지로 그치지 않습니다. 즈믄 가지나 일만 가지에 이릅니다. 날마다 다른 삶이요 나날이 새로운 삶이며 언제나 새삼스러운 삶입니다. 이 숱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낸다고 할 때에는 '골목을 내달리는 아이들 모습'으로만 엮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여름에는 골목마다 고추를 말리는 모습이 한창이요, 헐리고 빈 집터에 텃밭을 일구는 모습 또한 흔하며, 바지랑대에 앉은 참새며 박새며 때까치며 틈틈이 만납니다.

골목길 사진 하나.
 골목길 사진 하나.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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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인천 서구 가좌1동. 2010.4.24.11:11 + F10, 1/60초
처음에는 땅을 파고 장독을 묻던 곳인데, 이제 더는 장독을 묻지 않아도 되는 삶터가 된 만큼, 장독자리에는 금낭화 몇 포기 곱디고운 꽃내음을 날리면서 골목집 빨래와 함께 아침햇살을 부드러이 맞이합니다.

골목길 사진 둘.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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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인천 남구 도화1동. 2010.4.24.12:59 + F16, 1/100초
인천 도화역 둘레에는 인천 다른 여느 곳과 매한가지로 옛 집을 헐고 새 집을 지으려는 재개발이 한창입니다. 하나둘 헐리어 사라지는 가난한 사람들 지붕 낮은 집인데, 아직 헐려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조그마한 집 지붕으로 늦물 개나리 노란 꽃송이가 차츰 저물며 푸른 잎사귀로 바뀝니다. 사람들은 개나리가 노란 꽃송이가 가득할 때에만 개나리인 줄 알아보고, 꽃이 진 다음 푸른 잎사귀로 넘실거릴 때에는 개나리인지 미나리인지 알아보지 못합니다.

골목길 사진 셋.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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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인천 서구 석남2동. 2010.4.24.11:55 + F14, 1/80초
하얀 수수꽃다리 활짝 피어난 밑을 지나가던 동네사람들이 "어머, 하얀 수수꽃다리는 드문데?" 하면서 올려다봅니다. 참말 보라 수수꽃다리는 많아도 하얀 수수꽃다리는 드물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 골목 저 동네를 찬찬히 다니다 보면 보라 수수꽃다리 못지않게 하얀 수수꽃다리 넘실거립니다. 붉은 수수꽃다리야말로 가장 드문 수수꽃다리인데, 저 또한 더 널리 오래 골목마실을 하다 보면 붉은 수수꽃다리까지 아주 자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골목길 사진 넷.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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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천 중구 유동. 2010.5.12.13:28 + F6.3, 1/80초
새마을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한때 양철판 문패와 주소패를 달아 주었습니다. 이 문패를 지난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대로 두는 집이 있고, 이 양철 문패를 안 쓰고 나무문패를 살린 집이 있으며, 아주 값싼 플라스틱 문패를 서른 해 남짓 쓰는 집이 있습니다. 어느 문패이든 문패이며, 이 문패는 닳고 낡으면 닳고 낡은 대로 골목집 자취를 남기며 골목동네 한켠에서 제구실을 합니다.

골목길 사진 다섯.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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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인천 중구 유동. 2010.5.9.15:18 + F18, 1/100초
하늘을 등에 이고 있는 골목집입니다. 하늘이 맑으면 맑은 대로 등에 얹고 하늘이 찌뿌둥하면 찌뿌둥한 대로 등에 얹습니다. 맑은 날은 맑은 기운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골목집 빨래요, 흐린 날은 흐린 기운 살며시 받아안는 골목집 빨래입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태그:#골목길, #사진, #사진찍기,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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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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