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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카이로에서 우연히 묵게 된 A호스텔에선 무선인터넷 사용이 가능했다. 덕분에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고 있는 나의 개인 홈페이지에 내 근황을 전하며 업데이트 등을 하느라, 호스텔의 거실 같은 곳에서 앉아있는 시간이 꽤 있었다. 그 곳에서만 무선 인터넷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사람 저 사람 인사를 나누게 되고 못 봤던 직원들과도 인사를 하며 너무나 편안히 적응을 해 가고 있었다.

등장인물을 들춰보자면, 스무 살 대학생이며 호스텔에서 일하고 있는 이슬렘, 눈 마주칠 때마다 인사 정도 하는 무스타파, 나랑 같은 도미토리 룸을 쓰는 스페인 아저씨 카를로스… 이 정도가 호스텔 안에서 내가 사귄 '친구들'이라 할 수 있다.

이집트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 카를로스
▲ 카를로스 이집트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 카를로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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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는 놀라울 정도의 완벽한 파머머리의 번역가로 일년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여행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있는 내내, 본인 집처럼 편안한 모습과 가끔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집중해 일 하고 있는 카를로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을 빈둥되는 듯 보이는 카를로스였지만, 자세히 관찰하니 할 일을 마치고 나면 꼭 밖에 나가서 오랜시간 산책을 하고 온다. 한번은 '큰 슈퍼'에 목마른 나에게 카를로스가 말했다.

"사라, 큰 슈퍼 발견했어! "
"엇! 정말 어딘데?"
"응. 지하철 타고 좀 가야해."

'지하철씩이나 타고 가야한다니… 그 곳을 어찌 발견했담?' 그래도 큰 슈퍼에서의 쇼핑에 목말라있던 나였으므로 기꺼이 카를로스와 장보기 마실을 간 적이 있더랬다. 카를로스는 마흔 초중반으로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같았다.

"카를로스는 결혼 왜 안해?"
"it's better." (안 한 게 나아.)
"카를로스는 왜 종교가 없어요?"
"it's better." (없는 게 나아.)

약간은 시니컬하게 인생을 사는 듯 보이는 카를로스지만, 난 카를로스의 눈빛이 너무 좋았다. 남자로서 카를로스가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그는 세상을 좀 더 산 사람의 인자하고 자상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어떤 나의 허물을 얘기해도 다 들어줄 것 같은 카를로스였다. 거기다 카를로스는 출처가 궁금해지는, 엄청나게 완벽한 컬의 긴 퍼머머리를 하고 있었다. 결국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완벽한 자연산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더 놀랐지만 말이다.

하루에 다섯 번씩 드리는 라마단 때의 기도.
▲ 기도 하루에 다섯 번씩 드리는 라마단 때의 기도.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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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 라마단은 아랍어로, "더운 달"을 뜻하며, 한 달간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 금욕을 하는 이슬람의 문화이다. 그래서 아침은 오후 6시에, 저녁은 새벽 3시에 먹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이방인의 눈으로 보기에 기현상이지만, 이들은 진심으로 즐겁게 종교의 의식을 즐기는 듯하다.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드리고, 해가 떠 있는 동안은, 물이나 음식을 금하고, 또한 금욕생활을 해야한다.

물론 라마단 이외의 기간보다 오히려 음식소비량이 20% 증가하고, 라마단 때 낮의 업무효율은 평소보다 떨어져 웃음을 자아내긴 하지만 말이다. 새벽 세 시, 이슬렘과 함께 저녁을 사러 간 식당은 정말 인산인해였다. 환한 불빛만큼이나 환한 웃음으로 삼삼오오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나에게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집션 남자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있다. 휘슬소리! 아마, 이집트를 다녀온 여자들은 이 휘슬소리를 한번 이상은 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리를 지나갈 때엔 이들은 흉내도 낼 수 없을 정도의 거침없고 현란한 휘슬소리로 관심을 집중시키려 한다.

이슬렘은 이런 휘슬소리에서의 내 흑기사였다. 낮에 혼자 돌아다닐 경우엔 어쩔 수 없었지만, 오후에 이슬렘이랑 가까운 근방이라도 나갈라치면, 신기하게도 이 젊다기보다 어린 이 친구와 다니는 데도, 그들의 휘슬소리는 딱 멈춰진다. 남자와 다니는 여자에겐 절대 무례하게 휘슬소리를 내지 말자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집트에서 만난 친구, 이슬렘
▲ 이슬렘 이집트에서 만난 친구, 이슬렘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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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렘, 이집트 남자들은 왜 이렇게 지나갈 때 휘슬소리를 내는거야?"
"(웃음) 그냥 관심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신경쓰지 말고, 길 다닐 때엔 절대 뒤 돌아보지 말고 앞만 잘 보고 다녀. 알았지?"

이슬렘은 나보다 정말 많이 어린 친구였는데도, 날 챙겨줄 때 보면 의젓했다. 어쩔 땐 공포스러울 정도의 카이로 교통, 사람과 차가 모두 서로를 'I don't care'(나 몰라라) 하는 상황에서도, 정신 못 차리고 꾸물거리고 있을라치면 내 손목을 이끌고 터프하게 건너는 흑기사가 바로 이슬렘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친구 이슬렘에게도 내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으니, 정말 너구리를 대량으로 잡을 듯한 담배, 정말이지 이슬렘은 애연가였다. 아니, 이슬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집션 남자들이 애연가인 듯하다.

이들은 물담배 시샤뿐만이 아니라, 일반 담배를 정말 많이 피운다. 술은 안 마시는 대신 담배를 하루종일 물고 사는 것을 보면, 무슬림이지만 저 담배에 집중된 기호를 차라리 술에 조금 나누어주고, 담배를 좀 줄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집트에서 만난 친구, 무스타파.
▲ 무스타파 이집트에서 만난 친구, 무스타파.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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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장난꾸러기 무스타파…. 떠나고, 헤어지는 것을 일상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내 여정에서 처음으로 헤어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했던 사람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내 심정은 자기혐오로 그득해서, 무스타파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헤어나와야 했을지 난감하다.

카이로에는 람세스역이라는 큰 역이 있다. 우리나라의 역으로 치자면, 서울역쯤이랄까. 원래의 내 계획은 카이로 이후, 알렉산드리아로 갈 예정이었으나 카이로에서 예정보다 시간을 더 지체한 탓에 알렉산드리아와 다른 서부쪽의 사막은 포기하고, 룩소르로 내려가기로 했다. 한국으로 치자면 용산역 격인, 기자(giza) 역에서 룩소르의 표를 끊고, 호스텔로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얘기했다.

"나 룩소르 가는 표 끊었어. 내일 오후 8시까지 기자GIZA역으로 가야해!"
"안돼~ 좀 더 있다 가. 사라! 진짜 가는거야? 어디, 표 봐봐."

다들 너무나 아쉬워했고, 어느 역인지 몇시인지 확실히 확인해 두고 싶어했다. 그랬다. 기자(giza)역이었다. 내 머릿속에 왜 그렇게 람세스 역이 크게 떠다니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다음 날, 모두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간에 나를 파악한 카를로스는 혼자서 아프리카를 내려간다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그런 이미지의 카를로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나에게 이것 저것 당부를 해 둔 터였다.

이슬렘은 나에게 언제 또 올 거냐고 물어봤다. 그 말에는 대답할 수 없었지만, 우린 연락처를 교환했으므로 쿨한 영세대인 이슬렘답게 작별을 했다. 무스타파와도 눈인사를 건넨 후 나는 호스텔을 떠났다. 시간을 조금 여유있게는 나왔지만, 카이로의 지독한 교통 상황에선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서둘러, 나는 택시를 잡았다.

라마단때의 저녁식사 시간.
▲ 새벽3시의 저녁식사 라마단때의 저녁식사 시간.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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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어디로 가세요?"
40대 정도의 젊은 기사 아저씨가 반겼다.

"람세스 역이요. 아저씨 미터로 갈 수 있어요?"(가격을 미리 흥정하고 가는 것이 아닌, 미터법대로 가격을 지불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관광객들에겐 미리 요금을 공지하고
그 가격대로 받고자 하는 기사가 많다)

늘 그렇듯, 난 타기 전에 모든 것을 확실히 해 두고 싶어했다.

"그래요, 어서 타요."
"네, 람세스 스테이션으로 가주세요. 8시가 기차시간인데 안 막힐까요?"
"막힐 시간이긴 한데, 어서 가죠. 괜찮을 거예요…."

덧붙이는 글 | - 이 여행기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태그:#이집트, #박설화, #아프리카 종단, #아프리카 여행, #카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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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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