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캐발랄' 젊은 후보가 여기 있습니다."

청소년이 교육감 선거에 나섰다. 0번 후보로 직접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청소년 교육감 후보 선거운동본부도 꾸려졌다. '다른 후보와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20일 공식 선거운동 기간 동안 선거운동도 한단다. 청소년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듣는 어른들을 향해, '미성숙'하다며 선거권조차 주지 않는 사회를 향해 당당히 권리를 외치기 위함이다.

13일 오전 11시 '민주주의 꽃 선거'라는 간판이 걸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선거권이 없어 그 '꽃'을 누릴 수 없는 이들이 모인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 출마선언' 기자회견이다. 청소년들의 교육감 후보 출마는 서울 뿐 아니라 인천, 수원, 광주, 경남, 부산 등의 지역에서 전국적으로 진행된다. 문화연대, 인권교육센터 '들', 교육공동체 '나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뭉쳐서 만든 선거운동본부는 13일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13일 오전 11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 레알 교육감 후보 기호 0번 청소년 출마선언 기자회견이 있었다.
 13일 오전 11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 레알 교육감 후보 기호 0번 청소년 출마선언 기자회견이 있었다.
ⓒ 이주연

관련사진보기


"우리의 모토는 레알 교육감 후보"... 경찰 "근데 레알이 뭐야?"

선거운동본부 온라인 홍보 담당 '게로게로'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우리의 모토는 레알 교육감 후보"라며 "교육의 주체인 청소년이야말로 '진짜'(레알)라는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알'에는 청소년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채 선출된 교육감은 아무리 좋은 교육감이더라도 절차상 진짜가 아니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청소년 후보 지지 발언에 나선 인권교육센터 들의 '루트' 활동가는 "대학에서도 학부모들이 성적 관리 때문에 학교에 전화를 한다고 하는데 이를 보면 20~30대도 아직 청소년임을 알 수 있다"며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만 가두어놨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교육을 같이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 청소년들이 미래의 주역이라는 이름 아래 미래로만 밀려나고 있다"며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주체로 나서고자 하는 청소년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13일 오전 11시 중앙선관위 앞에서 열린 청소년 교육감 후보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포스터를 들고 있다.
 13일 오전 11시 중앙선관위 앞에서 열린 청소년 교육감 후보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포스터를 들고 있다.
ⓒ 이주연

관련사진보기

지지발언에 힘입은 '공기'가 출마의 변을 읽어 내려갔다.

"우리의 말은 듣지도 않는 어른들, 더 이상 우리를 위한 교육이라고 거짓말 마라. 우리를 왕따 시켜놓고 쑥덕거리는 게 어떻게 민주주의인가? 그래서 우리는 교육감 선거에 나선다. 누구보다도 0순위로 교육의 주인이 되어야 할 청소년이기에, 기호 0번이다. 우리는 잘못된 교육, 잘못된 사회에 맞서는 '싸우는 후보'가 될 것이다. 어른들만의 정치, 어른들만의 교육은 이제 '빠(bye)염!'이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사이 손님이 찾아왔다. 경찰이다. 기자에게 "저 사람들 어디서 나온 거예요"라며 주최 측을 묻던 혜화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은 어딘가로 보고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레알 교육감 후보 기호 0번 출마선언이래, 그런데 레알이 뭐야"라며 궁금해 했다.

손님은 또 찾아왔다. 이번엔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다. 그는 "사진 좀 찍을게요"라며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진짜라는 영어 표현인 real을 인터넷식으로 표현한 '레알'을 궁금해 하던 경찰은 구호를 외치겠다는 사회자 '공현'의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경찰은 "피켓 내리세요, 구호 외치지 마세요, 경고합니다"라며 겁을 주었다.

'19금' 선거 부숴버리겠어!

13일 오전 11시 중앙선관위 앞. 청소년교육감 후보 기자회견장에서 '19금'이라 적힌 손팻말을 부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13일 오전 11시 중앙선관위 앞. 청소년교육감 후보 기자회견장에서 '19금'이라 적힌 손팻말을 부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 이주연

관련사진보기

'어른들의 꽉 막힌 귀를 삽질하라'는 구호를 외치려던 선거운동본부 측은 구호를 접고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19세 이상에게만 선거권을 주는 것을 뜻하는 '19금', 어리다는 편견으로 피선거권과 선거권을 주지 않는 법을 의미하는 '미성숙, 편견, 악법'이라 적힌 플래카드를 주먹과 발로 차서 부수는 퍼포먼스로 기자회견은 끝이 났다.

2차 퍼포먼스는 크게 출력한 '후보자 등록 신청서'를 선관위에 내는 것이었다. 이들은 성명란에 '청소년'이라 적고 경력란에 '시험만 골백번, 학교현장경력 수년'이라 적은 신청서를 '기호 0번 청소년 후보'로서 제출하기 위해 선관위 건물로 들어섰다. 셔터를 눌러대던 선관위 직원은 당황한 기색으로 따라갔다.

직원은 "후보로 등록하려면 재산, 거주요건 등의 조항을 만족해야만 한다"며 "성명이 실명이 아니고 법 상으로 피선거권이 19세로 제한되어 있어 등록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직원은 기자를 향해 "이 부분을 꼭 기사에 넣어주세요"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어른들이 정치를 너무 못해서 우리가 나선 것"

'둠코'는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을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신청서를 내는 것"이라며 "나이 제한으로 막아놓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후보요건에 맞게 싹 준비해두었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는 "어른들이 정치를 너무 못해서 우리가 나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관위 직원은 "여기서 퍼포먼스 하는 것도 의미는 있지만 국회에서 하는 것도 의미 있다"며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신청서를 받아둘 듯하더니 이내 "취지는 알겠지만 공식 서류 요건이 부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걸 받아줄 수는 없겠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은 "짐이 많아 못 갖고 가겠다"며 직원에게 신청서 팻말을 건네고 돌아섰다.

경찰의 은근한 압박에 마음이 급해진 선거운동본부 측은 청소년 후보 활동 계획 소개도 못한 채 기자회견을 급하게 마무리했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담아둔 이야기를 듣고자 가까운 곳으로 장소를 옮겨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 포스터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 포스터
ⓒ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 선거운동본부

관련사진보기

- 포스터에도 가면을 쓴 모습이고, 오늘 기자회견 때도 가면을 썼다. 어떤 의미인가.
공현 : "누군가 한 명이 주목되길 바라지 않아서다. 청소년 전체를 대표한다는 의미도 있다. 신청서 성명에 '청소년'이라고 쓴 것도 같은 의미다. 누군가 한 명이 후보로 나서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모든 이들이 후보가 되겠다는 뜻이다."

- 선거유세 계획은 어떻게 되나.
공현 : "석가탄신일에는 절에 가서 하고, 평일엔 학교 앞에서 하고, 일요일엔 교회에서 선거유세를 하려고 한다."
게로게로 : "트위터로도 홍보하고 있다. 반응이 좋다. 이렇게 멘션(mention)이 많이 달린 건 처음이다. 오늘 기자회견을 한 것도 올렸는데 다들 지지한다는 의견을 올려 주었다."

- 선거운동본부 구성은?
공현 : "인원은 20명가량이다. 언론담당자 공현, 온오프라인 홍보는 둠코 등 맡은 분야가 따로 있다. 정책논의 팀도 따로 있다."

- 출마한 청소년들의 나이는?
어쓰 : "게로게로는 15세, 공기·어쓰·따이루·둠코는 18세, 공현은 23세다. 거의 15~18세 정도다."

- 진보교육감에게 바라는 것은?
둠코 : "진보진영 입장에서 진보적인 것 말고, 현실적으로 학생을 위한 것을 추진해주길 바란다. 부진아 돕겠다고 하는데 왜 돕나? 그냥 두면 된다. 왜 바꿔야 하고 개선시켜야 할 존재로만 보나. 놀게 둬라."
공현 : "기대치가 낮긴 한데, 인권조례 제정이나 자사고, 일제고사 막는 것 딱 그 정도다. 그 이슈만이라도 싸우는 교육감이 되었으면 한다. 앞서 말한 것들 중에는 교육감의 권한 외적인 부분도 있는데, 교과부와 싸워서 이루어냈으면 좋겠다."

- 보수교육감 후보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둠코 : "표가 있으면 꼭 떨어뜨려야 하는데 표가 없어서 아쉽다."
공현 : "이원희씨가 발언한 것 봤다. 저런 사람이 계속 교육감을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를 하니까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

- 공약을 소개해 달라.
공현 : "입시경쟁, 시험지옥 그만! 두발복장 자유, 체벌 폐지, 강제야자보충 박멸! 식욕 돋는 학교, 꿈을 꾸는 학교! 차별은 없고 차이는 존중받는 교육으로! 학생에게 권력을, 학생에게 임금을!"

- 그중 가장 핵심적인 공약은.
둠코 : "'학생에게 권력을, 학생에게 임금을'이다. 학교에 다니면 월급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재생산을 위해서 학교를 만든 거니까 '배워주세요'로 요청하는 것이 맞다.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선택할 수 있으면 돈 내고 다니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임금을 달라는 것이다."
공현 : "68혁명 때에도 학생에게 임금을 지급하라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같은 맥락이다."

- 선거권 행사가 적정한 나이는 몇 세라고 보는가. 선거권을 요구하는 이유는?
공현 : "만 15~16세 정도면 적당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지금도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알고 정치적 의식이 있어서 선거권을 주는 것이 아니지 않나. 어른들만의 선거에도 지역주의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선거권이 주어지고 참여 기회가 주어졌을 때 오히려 생각하는 훈련이 된다. 그래서 선거권을 요구한다."

인터뷰에 응해준 선거인단. (왼쪽부터) 공현, 어쓰, 게로게로, 둠코, 루트.
 인터뷰에 응해준 선거인단. (왼쪽부터) 공현, 어쓰, 게로게로, 둠코, 루트.
ⓒ 이주연

관련사진보기



태그:#지방선거, #교육감 선거, #청소년 후보, #기호 0번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