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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아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TV를 통해 접했다.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이라 TV 보도가 잘못된 거라 생각하고, 인터넷뉴스를 확인했지만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소식뿐이었다.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노 전 대통령은 23일 자택의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죽음을 선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많은 국민들이 슬퍼했지만 그 중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슬퍼 한 사람은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은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린 것 같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라는 말을 하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 몸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뛰어 다니며 '행동하는 양심'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그 해 8월 김 전 대통령마저 세상을 떠났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광우병 촛불 집회', '집회·언론·결사의 자유 탄압', '용산참사' 등 역사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을 우리 두 눈으로 보게 됐다. 이런 현실 속에 민주화의 상징인 두 사람의 죽음은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현재 이명박 정부에 맞설 수 있는 두 마리의 용을 한꺼번에 잃어 버린 상실감 때문이었다.

광주 5·18이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낳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시작과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 등 한국 사회는 지난 2년간 정말 불꽃 튀는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갑작스레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요동치기 시작한 걸까? 그냥 급하게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나고 있는 걸까?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한홍구, 한겨례 출판사>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한홍구, 한겨례 출판사>
역사학자 한홍구씨는 <지금 이 순간의 역사>(한겨레 출판사 펴냄)라는 책을 통해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의 시작을 광주 5·18에서 찾으려고 한다. 5·18은 박정희 대통령의 저격 사건 이후 당시 군인이었던 전두환이 권력을 잡기 위해 무구한 시민들을 죽인 80년 5월의 사건이다.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80년 5월 27일 마지막으로 계엄군이 광주를 소탕할 때 끝까지 무장하여 광주 도청을 지킨 시민들의 행동이다. 끝까지 계엄군에 맞서 싸운 시민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죽임을 당했지만 그들의 죽음이 80년대 역사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시민군이 도청에 끝까지 남아 싸우지 않고 계엄군에 타협했다면 현재 한국 사회의 역사는 달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광주는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실패한 무장봉기입니다. 처절하게 패배한 봉기였지요. 그러나 긴 역사에서 볼 때 광주만큼 성공한 운동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광주는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광주가 열었던 새로운 시대는 전두환 정권의 폭력과 억압에 맞서 목숨을 걸었던 학생들의 시대였다. 대학생들은 학교에 입학하며 광주 5·18의 참혹한 사진을 보게 되고, 끝까지 도청에서 싸우다 죽은 시민군의 얘기를 듣고 너도 나도 학생 운동가가 되어서 사회에 헌신하게 됐다. 학교 건물 옥상에서 뛰어 내리며 '독재 타도! 민주주의 쟁취!'라는 구호를 외치며 분신한 학생도 있었고, 학업을 그만두고 노동자들의 현장인 공장으로 위장 취업하여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다 죽음을 맞이한 학생도 있었다.

"계산을 할 수 없었던 세대, 셈이 멈춰버린 세대, 그렇게 하면 손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딪쳐 볼 수밖에 없었던 세대입니다.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앞에서 무슨 계산을 하겠습니까? 거기서 무슨 주판알을 튕기겠어요? 그런 세대가 한 시대를 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87년 체제의 종식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대학생이었던 이한열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죽게 된 장면이다.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대학생이었던 이한열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죽게 된 장면이다.
ⓒ 이한열열사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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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항쟁을 통해 한국 사회는 민주화를 이루게 되었다. 대통령 직선제,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3권 분립, 민주적 노동조합 탄생 등 이전의 독재 정권과 비교할 수 없는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80년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학생운동가들 중 많은 사람들은 사회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몇몇은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또 1997년 한국 최초의 정권 교체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루었고, 학벌·지연·파벌 등 힘을 가지지 않은 보통 사람 노무현이 2002년 대통령이 되었다. 이렇게 한국 사회는 다수가 힘을 모아 두루두루 행복한 사회로 향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민주 정권 10년(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남긴 한계는 명확했다. 87년 체제라고 불리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형식적 민주주의'였다.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고, 언론·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었지만, 빈부의 격차 심화, 불안정한 비정규직 대폭 증가, 관료, 재벌의 부패 심화 등 국민이 두루 행복한 사회를 이루지 못했다. 많은 국민들은 정치에서 관심이 멀어져갔고, 불안정한 사회 구조 때문에 하루하루 밥을 먹기 위해 살 수밖에 없었다.

87년 체제의 한계는 고스란히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경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건 이명박 정부가 탄생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87년 체제가 더 이상 현실에서 통용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386세대들이 광주 5·18을 겪고 목숨을 걸고 싸우며 만들었던 사회는 2009년 5월 이후 변화를 요구받고 있었던 것이다.

"5·18 광주처럼 우리도 잘 져야 한다"

광우병 촛불 집회, 용산참사, 미디어법 통과, 공공 부문 민영화 등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방향대로 국민들의 싸움은 패배하고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싸움 앞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80년 광주의 5월 27일 죽을 줄 알면서 도청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처럼 잘 질 수 있는 싸움을 준비하고 있나?

"우리 대중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자기를 버렸을 때 나왔다고 생각해요. 대표적인 예가 광주 아닙니까? 첫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도청에서 광주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죠. 그 사람들이 정말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닙니다. 질줄 알면서도 거기 있었습니다. 그리고 잘 졌기 때문에 바로 유산이 된 겁니다. 처절하게 잘 지는 것. 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 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 알라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한홍구 지음, 한겨레출판(2010)


태그:#광주518, #지금이순간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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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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