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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가 다 내려다 보여 좋기는 한데, 노인들이 이용하기에는 장애가 너무 많다.
▲ 남산 케이블카 서울 시내가 다 내려다 보여 좋기는 한데, 노인들이 이용하기에는 장애가 너무 많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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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시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는데 힘만 드는 건 아니었다. 효도하는 데 흔히들 마음이 문제라고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또 있으니, 바로 돈과 시간이다. "5월에는 어차피 돈이 많이 들어가게 돼 있어"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남편도 슬슬 비용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지난 2일 일요일, 날씨는 화창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서울에 사는 시누이네에 들러 서울 구경을 시켜드리기로 했다. 시누이네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3시쯤 출발해서 간 곳은 남산. 날씨 좋고 봄빛 머금은 경치 좋으니 서울 시민들이 몽땅 남산으로 몰린 듯했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남산 도서관 옆 주차장. 늦은 시간임에도 주차하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차에서 돗자리를 꺼내 들고 좋은 자리를 찾으려는데, 어머니께서 극구 안 가시겠다며 비어 있는 벤치를 골라 앉으신다. 시누이네서 좋지 않은 일이 있어 기분이 내키지 않으셨던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내가 아니다. 남편에게 어머니 모시고 있으라고 하고는 돗자리를 들고 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조건은 좀 까다로운 편, 멀지 않아야 하고, 가파르지 않아야 하고 계단이 없어야 한다. 안으로 조금 들어가자 나무 밑으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데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많다. 꽤 괜찮아 보이는 자리다.

얼른 가서 어머니를 모셔오고 자리를 깔아 눕게 해드렸다. 잠시 후 남편이 간식거리를 사러 가잖다. 어머니야 누워 쉬고 싶으시겠지만 우리는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지라 여기저기 둘러보고 나서 매점을 찾아 과자와 음료수를 사 왔다. 눈에 띄는 건 거의 가족 단위 행락객들. 아이들 재롱도 보고 어른들 이야기 소리도 들으면서 앉아 있자니 남편이 케이블카 이야기를 꺼낸다. 대뜸 알아 들은 어머니.

"난 그 케이블랑(?) 싫어."

우리는 어머니의 그 흉내 낼 수 없는 발음에 폭소를 터뜨리다가 물었다.

"아니 왜 싫으세요. 한 번도 안 타 보셨잖아요."  
"타 봤어. 그 해남인가 뭐, 거게 바닷가서…."
"어머닌 싫으시다는데 뭘 가. 자긴 타 봤잖아?"
"아냐 나도 안 타 봤어. 그러니까 타 보려는 거지."

아니, 케이블카를 못 타 봤다니. 서울에서 몇 년을 살았다면서.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모자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다. 예전에는 남산 케이블카 타령을 하면 "촌놈이야 케이블카를 타게"하면서 타박을 주었다. 그래도 어른들 모시고, 또 친구들과 남산을 오르다 보면 호기심에 한 번씩 타곤 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드디어 모자가 합의를 했다. 케이블카를 타기로. 전화로 물어보니 밤 11시까지 운행을 한다. 요금은 1인 왕복 7500원, 노인과 어린이는 5000원. 지금 가면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단다. 조금 이따가 가면 덜 기다리겠지 하고 30분쯤 있다가 일어나는데 남편이 딴소리를 한다.

"케이블카를 탈까, 그냥 맛있는 저녁을 먹을까?"

아마도 비용에 신경이 쓰인 것 같다.

"맛있는 거야 다음에 먹을 수도 있지만 케이블카는 아니잖아. 그냥 타러 가자구."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조금씩 기력이 쇠해가고 있었다. 지난 가을 오셨을 때와 이번엔 또 달랐다. 그러다 조금 있으면 여행도 힘겨워 하실 것 같은데, 케이블카는 아마 영영 못 타 보실 거다.

남산 타워가 보이는데 어머니는 주저앉으셨다

계단은 노인들의 적이다. 그만큼 노인들은 계단을 두려워하는데, 케이블카를 타려면 밑에서나 위에서나 이렇게 계단에 서서 줄을 서야 한다.
▲ 계단 따라 '줄서기' 계단은 노인들의 적이다. 그만큼 노인들은 계단을 두려워하는데, 케이블카를 타려면 밑에서나 위에서나 이렇게 계단에 서서 줄을 서야 한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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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을 3분의 1쯤 돌아 케이블카 타는 곳에 이르니 도로 옆에 차들이 빼곡하다. 어딜 가나 차가 문제다. 그래도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붙어 기다리자니 주차하는 사람이 와서 묻는다. "케이블카 타실 거죠?" 그렇다니까 기다리란다. 그런데 앞에 선 차들이 영 줄지를 않는다.

내가 먼저 가서 표 끊고 기다린다고 하자 처음에는 같이 가자며 말리던 남편이 차가 움직이지 않자 그렇게 하란다. 헌데 표 끊는 데는 보이지 않고 줄만 지루하게 늘어서 있다. 줄을 서야 표도 끊는단다. 차쪽을 바라보니 진척이 없는데 줄은 표시나게 줄어든다. 계단을 오르다보니 매표소는 2층도 아니고 3층이다. 그리고 거기서도 한 층을 올라가야 케이블카를 탈 수가 있다.

이렇게 높은데 노인이 올라오실 수 있을까? 아무리 둘러봐도 엘리베이터 비슷한 것도 눈에 띄지 않으니 걱정이 앞선다. 매표소 앞에서 잠시 자리를 양보하고 전화를 했다. 방금 주차를 했고 3층이라도 올라오실 수 있단다. 표를 끊고 줄을 서 있는데 이 두 분 오실 때가 됐는데도 보이질 않는다. 궁금해서 밖을 보니 맨 끝에 서 계시다.

내가 줄 서서 표를 끊었으니, 사람들 헤치고 빨리 올라오라고 전화를 했다. 잠시 후 어머니을 모시고 올라왔는데, 아들이나 어머니나 숨이 턱에 차 있다. 급한 대로 앉을 자리를 마련해 드리며 그 곳에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

"아니 여기는 어르신을 위한 엘리베이터도 없나요?"
"예,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서요. 엘리베이터라는 게 금방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습니까."

하긴 그럴 듯도 하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니까. 그래서 그런가 주위를 둘러보니 다 젊은 사람들뿐이다. 예전에 시골에서 갓 상경해 남산 케이블카부터 찾던 때와는 영 딴판이다. 거의 청춘 남녀고, 간간이 외국인도 섞여 있다. 아무튼 케이블카를 타고 무사히 올라갔는데, 이건 위에도 역시 줄이 길다. 게다가 위 아래로 계단이 이어져 있어, 전망은 고사하고 어디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자리도 없다.

어머닌, 더 이상 못 가신다며 계단에 철퍽 주저앉으신다. 위를 바라보니 남산 타워가 보이고, 거기까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데, 주저앉은 어머닌 일어날 생각을 않으신다. 사실 그건 젊은 사람들 얘기지, 노인에게는 계단 하나 딛고 올라가기도 힘든 상황이다. 난감해진 아들, 주위를 둘러보더니 조금만 올라가시자며 어머니를 달랜다.

아들 말에 솔깃해 하는 순간 우린 어머니를 양쪽으로 부축해 계단 중간에 있는 휴식 공간까지 가 겨우 앉혀 드렸다. 남산타워까지 올라가면 좋지만 사실 거기까지는 무리다. 이만큼이라도 오셨으니 다행이라 여기며 그곳에서 구워 파는 쥐포를 사서 나눠 먹으며 시내를 바라보았다. 더 올라갔으면 전망이 무척 좋았을 텐데, 아쉬워하며.

"그 할매는 딸이 마칸(전부) 미키(메이커) 옷만 사서 보내준다더라"

줄은 아직 기다려야 하지만, 어머니는 노인이라서 특별 대우. 화장실 옆 의자에 앉아 계신다.
▲ 줄서기 줄은 아직 기다려야 하지만, 어머니는 노인이라서 특별 대우. 화장실 옆 의자에 앉아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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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는 데도 작전이 필요했다. 노인을 줄을 세울 수는 없었다. 평지도 아닌 계단인데…. 그래서 내가 줄을 서 있으면 20분쯤 지나 남편이 어머니를 모시고 안으로 들어가 화장실(노인들은 화장실에 자주 가신다)에 들른 다음 편안한 자리를 마련해 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내려갈 때는 올라올 때의 반대 방향으로 타서 이번에는 서울의 다른쪽을 보여드리자고 약속했다.

정말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서울을 제대로 구경하셨고, 고생하신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주차료가 8000원이란다. 여기서는 시간당이 아니라 무조건 차를 대기만 하면 8000원이라는 주차료를 내야 한단다. 아, 그제서야 차들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시간당으로 매기면 차를 얼른 찾아가지만 시간과 상관이 없다면 차를 계속 세워놓고 다른 볼 일 보고 구경도 하다가 차를 늦게 찾아도 상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인을 모시고 케이블카 타는 비용이 28000원이 들었다.

"어머니, 이제 강릉 가시면 친구분들한테 자랑하세요. 서울 가서 남산 케이블카 탔다구요."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요즘은 노인 사회에도 등급이 있다. 자식이 효자인데다 성공을 하면 자랑거리가 많고, 따라서 그런 노인들은 많은 노인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다. 거기에 동화된 다른 노인들은 은연 중에 자식들에게 바라게 되고. 정말 요즘은 노인들의 욕망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하늘을 찌른다.

"그 할매는 딸이 마칸(전부) 미키(메이커) 옷만 사서 보내준다잖아."
"그래서 그게 부러우셨어여?"
"아니, 그렇단 얘기지. 그 싱거포리(싱가폴)가 어디야. 나 살던 거게 사람들이 곗돈을 모다서 몽땅 거겔 갔다왔다는 게야…."

그렇단 얘기라고 말씀은 하시지만 무척 부러우신 눈치다. 우리 어머닌 그다지 잘된 자식 없이 그저 그럭저럭들 산다. 기껏해야 우리가 모시고 여행 다니고 맛있는 음식 사드리는 것 뿐, 크게 자랑거리라고 할 만한 게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마 남산 케이블카 자랑을 신나게 하실 것 같다. "어지러웠지만 서울이 아주 잘 뵈키드라. 아주 좋은 귀경했다"하시면서, 할머니들의 시선을 받으며 자랑하실 어머니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하다.

남산은 서울의 대표 산이다. 케이블카가 보이고 밑에는 주차장이다. 한 번 주차하는데 8천원. 때문에 차가 잘 빠지지 않아 마냥 기다려야 겨우 주차할 수 있다.
▲ 남산 케이블카 남산은 서울의 대표 산이다. 케이블카가 보이고 밑에는 주차장이다. 한 번 주차하는데 8천원. 때문에 차가 잘 빠지지 않아 마냥 기다려야 겨우 주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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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남산 케이블카, #시어머니, #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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