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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지금 상황에 대해 어떤 말씀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분명히 '남북대화와 포용정책은 멈출 수 없다'고 하셨을 것이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인터뷰 내내 답답함을 토로했다. 천안함 침몰로 일어난 '북풍'으로, 안 그래도 악화일로를 걷던 남북관계가 결정적 좌초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30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사고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밝혀야 한다"면서도 "어떤 경우든 전쟁은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명박 정부의 남북대결 정책에 대해서는 날을 세웠다. 정 의원은 "서해를 평화협력특별지대로 만들기로 했던 10·4선언을 물거품으로 만든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정책의 실패가 이번 비극의 근본 원인"이라며 "젊은 영혼들을 수장시킨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MB, 젊은 영혼 수장시킨 정책 실패 책임져야"

 

정부와 보수강경 세력이 흘리고 있는 북한에 대한 '무력 보복설'에 대해서는 "철 없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만약 북한이 연루됐다는 게 객관적으로 증명된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군사적 보복은 실현 가능성도 없고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며 "천안함 침몰을 한반도 평화의 침몰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천안함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길은 서해를 전쟁통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또 국민적인 추모분위기와 북한 연루설을 방패 삼아 정부가 책임론을 피해가려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군 보고체계의 난맥상, 사고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무능에 대해 책임을 묻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보좌기능에 결정적 문제를 드러낸 외교안보팀의 교체와 함께 외교안보 이슈를 통합조정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끝으로 "46명의 해군장병의 억울한 죽음을 책임론을 덮거나 선거를 유리하게 이끄는 데 이용한다면 그건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강경보수 쓰나미'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지방선거에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동영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

 

"군함 더 만든다고 평화 오지 않아"

 

- 29일 천안함 침몰 희생 장병 영결식에 다녀왔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애통했다. 사진을 보니 앳되더라. 젊디 젊은 사람들인데….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고를 과연 사전에 막을 수는 없었을까 안타까웠다."

 

- 이번 사고가 일어나게 된 근본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무엇이든지 객관적 과학적으로 입증돼야 한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북한이 연루됐든 아니든 그것과 상관없이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2007년 10·4 선언은 서해를 평화협력특별지대로 만들자는 합의였다.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 수 있는 계기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10·4선언을 계승하겠다는 말을 한 번도 안했다. 그 결과 서해 바다는 긴장과 대결의 바다가 되어 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정책의 실패가 이 비극적 사고의 근본 원인이다. 젊은 영혼들을 바다에 수장시킨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 일부 보수 강경파들은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화해협력 정책 탓을 하기도 하는데.

"그 반대다. 화해협력 정책을 폈던 지난 정부 동안 이런 비극이 있었나. 육지는 남과 북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으로 연결돼 있었다. 그런데 서해 바다는 불안했다. 그래서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2005년 6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6자회담 재개, 핵 문제와 더불어 서해평화지대 문제를 장시간 토론했다. 김 위원장이 이러더라. '육지와 달리 바다에서는 (경계)선도 똑똑치 않지 않습니까. 여기서 서로 총질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정동영 특사가 제안한 공동어로수역 구축 문제 후속 논의를 합시다.'

 

그 때부터 논의를 시작해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지대를 구축하기로 도장을 찍었다. 평화의 문턱에 선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그 문턱을 넘어서는 대신 등을 돌려 버렸다. 군함을 더 만든다고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해에서 긴장과 대결을 없애는 것이 근본 해법이다."

 

- 아직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부에서 공공연히 보복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고 보수강경파들도 군사적 대응을 정부에 촉구하는 상황인데.

"만약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이런 '보수강경 쓰나미'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분명히 '남북대화와 포용정책은 멈출 수 없다'고 하셨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전쟁은 안 된다. 철없는 강경보수 세력은 군사적 보복을 주장하는데 과연 할 수 있는 일인가. 가능성도 없을 뿐더러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이라크 전쟁 개전을 앞두고 미 합참의장이었던 콜린 파월이 이랬다. '주로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전쟁하자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에 살면서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부 언론과 보수 논객들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중국도 군사적 대응을 반대할 것이다. 또 대한민국에는 전시작전권도 없다. 유엔 안보리에 이 문제를 회부하겠다고 하는데 물증 없이는 웃음거리밖에 안된다. 섣불리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천안함 침몰을 한반도 평화 침몰로 몰고가서는 안돼"

 

- 영결식이 끝났으니 이제는 후속 대책 마련이 중요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사고였다고 해도 문제고 서해 바다의 뒷문이 뚫린 것이라면 더 큰 책임이 있다. 정부는 추모 분위기와 북한 연루설로 책임론을 피해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렇게 어물쩡 넘어가서는 안된다.

 

군 보고체계의 난맥상, 사고 발생 후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무능 등에 대해 반드시 대책이 나와야 한다. 외교 안보팀 전면 교체도 준비해야한다. 이들의 보좌기능에 결정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복원해야 한다. 한반도는 아직도 긴장과 불안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 정부는 대북 대결 노선을 취하면서도 외교안보 이슈를 상시적으로 보좌할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외교부, 통일부, 국정원 모두 성격이 다른 부처다. 이를 통합조정하는 기능이 없으면 대통령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시스템이 없다 보니 사고가 났을 때도 중구난방이다. 반드시 NSC는 복원해야 한다."

 

- 만약 이번 사고에 북한이 연루됐다는 게 객관적으로 증명이 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나. 장기적으로야 서해의 긴장을 녹일 정책이 근본 대책이 되겠지만 단기적인 처방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다는 게 적절치 않은 것 같긴 하다. 만약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마땅한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것도 중요하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부른다.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고 보복의 악순환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이명박 정부 남은 임기 3년 동안 남북관계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근본적인 답을 내놓아야 한다. 해법은 대화와 포용밖에 없다. 포용정책 실종 폐기와 대결정책의 부활로 서해가 불안과 대결의 바다로 바뀐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합리와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 그런데 이번 사고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더 강경해 질 수밖에 없다는 예상이 많다.

"그렇게 된다면 일파만파로 한반도 문제가 꼬이기 시작할 텐데 긴장과 대립 국면이 계속되면서 언제 어디서 불행한 사고가 생길지 모르는 불안이 커진다. 국가 경제, 신인도에 악영향이 커질 것이다. 또 크게는 북한을 잃어버리게 된다. 세계는 통합으로 가는데 북한과 단절의 시대로 가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천안함 침몰을 한반도 평화의 침몰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천안함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길은 서해를 전쟁통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것이다."

 

"보복하자면서 전작권 반환은 반대하는 것은 모순"

 

- 이번 비극을 동력 삼아 보수 진영에서는 북에 대한 주적론 부활, 전시작전권 반환 연기 등을 밀어붙일 의도를 보이고 있다.

"주적론 부활은 전쟁불사론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주장이다. 총부리를 서로 마주대면서 대화하자고 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다. 북한에 보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세력이 전작권 반환 연기를 주장하는 것도 모순이다. 그들의 말대로 보복을 하려면 전작권이 있어야 한다. 전작권 반환을 가장 겁내고 있는 쪽은 북한이다.

 

우리의 국방비가 1년에 300억 달러인데 북한의 실질총국민생산이 100억 달러 정도밖에 안된다. 한국은행 추계로 해도 200억 달러다. 가져올 역량이 있는데도 돌려받지 말자고 하는 것은 찌들고 찌든 사대적 발상이다. 세계중심국가 운운하고 G20 정상회의 개최를 이야기하면서 전작권을 가질 실력이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 금강산 관광은 중단된 지 오래고 자산 동결 조치도 마무리 돼가고 있다. 개성공단 사업 중단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데.

"오늘 아침에도 서울 현대아산 사옥에서 개성공단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했다. 천안함을 북한이 공격했을 것이라는 설이 유포되는 상황에서도 출근 버스가 개성공단으로 넘어갔다. 개성공단은 중요한 심리적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 경제적 효과도 생각해야 한다. 개성공단을 닫게 되면 연간 6조 원의 피해가 발생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한다. 남북 관계가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개성공단은 절대로 닫아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이 닫히면 증오는 배가 되고 불안도 배가 된다. 다음 정권을 위해서라도 남겨 놓아야 한다."

 

- 아직 천안함 사고의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희생자들에 대한 과도한 영웅화 작업, 또 강경한 보복조치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에 대해 정부 책임론을 덮고 지방선거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의도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46명의 해군장병의 억울한 죽음을 책임론을 덮거나 선거를 유리하게 이끄는 데 이용한다면 그건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엄중히 경고해야 할 일이다. 정책의 실패로 서해를 긴장의 바다로 몰아넣은 세력들이 '북한에 당했다'고 주장할 염치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가슴에 손을 얹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 지방선거에서 천안함 '북풍'이 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이미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강경보수 쓰나미'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지방선거에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선거를 통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태그:#정동영, #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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