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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로 유명한 겸재 정선(1676~1759)은 우리의 산과 강을 특유의 기법으로 그리는 진경산수화의 대가입니다. 겸재 정선처럼 우리의 산과 강을 그림으로 남긴 화가들 덕분에 우리는 등고선이 표시된 지형도가 없이도 당시의 한강지형을 어림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섬이 되어버린 선유봉

공원이 조성된 선유도. 과거에는 정수장이었으나 지금은 공원이 되었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과거에 이곳이 야트막한 산봉우리였다는 것은 사실 놀랍기까지 합니다. 신선이 놀다가는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선유봉이라는 이름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나봅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거치면서 주민이 이주하고, 1935년 일제에 의해 여의도 비행장으로 가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돌을 깨서 공급하는 채석장이 되면서 선유봉은 더 이상 봉(峰)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섬이 아니라 한강 이남에 붙어있는 봉우리였으나 제2한강교의 건설과 더불어 한강의 개발 이후 완전히 섬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으로 사용되다가 한강의 수질오염 등으로 효용성이 떨어지면서 2000년 12월 폐쇄된 이후 현재는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정선의 그림은 선유도가 양화지구와 분리되기 전에 염창동쪽에서 양화지구를 바라보며 그린 것으로 보인다.
▲ 18세기 선유봉 정선 作 정선의 그림은 선유도가 양화지구와 분리되기 전에 염창동쪽에서 양화지구를 바라보며 그린 것으로 보인다.
ⓒ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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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이남의 양화지구와 붙어있었던 선유봉은 이제 선유도(좌측 상단)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으며, 두 개의 석봉으로 구성된 선유봉이 있던 자리는 양화인공폭포가 들어서있다.
▲ 현재선유도 한강 이남의 양화지구와 붙어있었던 선유봉은 이제 선유도(좌측 상단)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으며, 두 개의 석봉으로 구성된 선유봉이 있던 자리는 양화인공폭포가 들어서있다.
ⓒ 네이버지도검색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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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학원가로 유명해진 노량진

지하철역 1호선 노량진역은 책이 가득 든 가방과 트레이닝복 차림의 학원 수강생들과 학원 홍보전단지를 뿌리는 아주머니들로 붐빕니다.

지금은 서울의 유명한 학원가인 노량진이지만 조선 초기에는 용산을 통해 서울로 들어가는 나루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도진취락이었습니다. 도진취락은 하천이나 좁은 바닷길을 지나는 길목에 모이는 사람들과 짐을 보관하는 여러 시설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는 주막, 창고 등이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지역명에 진(津)이나 도(渡)자가 붙은 곳은 과거에 도진취락이었던 곳이 많은데, 노량진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아담한 산세가 남아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산을 등지고 발아래로 강물을 내려다보는 경승지로도 유명했다고 합니다. 장시흥의 그림을 보면 가히 그런 멋진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쭉쭉 뻗은 올림픽대로 덕에 한강 이남의 동서통행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멋스러웠던 과거의 풍경이 가려진 것은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18세기 노량진, 장시흥 作
 18세기 노량진, 장시흥 作
ⓒ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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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나루터의 배대신 한강철교를 건너는 1호선 전철이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 현재노량진 오늘날은 나루터의 배대신 한강철교를 건너는 1호선 전철이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 네이버지도검색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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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호수는 원래 한강본류

송파동 인근지역은 1970년대 이전만 해도 강변이었습니다. 석촌호수 인근의 천호동, 잠실동, 신천동 등은 과거에 부리도(浮里島)라는 지명으로 불리던 하중도를 포함하는 지역이었으며, 그 이남으로도 한강의 본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강이 홍수 때마다 유로를 변경하면서 자연제방이 침식되고 유로가 변경되면서 커다란 모래섬이 강 가운데 생겼습니다. 이 섬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한강이 잠시 갈라져서 흘렀었는데, 1970년 북쪽 물길을 넓히면서 남쪽의 물길을 폐쇄하고 모래섬을 육지로 만드는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남쪽 물길이 폐쇄되면서 남은 흔적이 현재의 롯데월드가 건설된 석촌호수입니다. 석촌호수는 송파나루터가 있었던 곳으로, 현재에도 송파나루터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송파나루터는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서울과 전국을 잇는 중요한 뱃길의 요지였다고 합니다. 정선의 송파진 풍경화에서 당시의 고즈넉한 정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정선이 서울과 한강주변의 모습을 그린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있는 송파진 그림이다.
▲ 18세기 송파진 정선 作 정선이 서울과 한강주변의 모습을 그린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있는 송파진 그림이다.
ⓒ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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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와 롯데호텔의 모습이 보인다.
▲ 현재 석촌호수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와 롯데호텔의 모습이 보인다.
ⓒ 네이버지도검색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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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촌동 강변에서 견지낚시를?

정선의 작품 '소유정'은 지금의 등촌동 부근을 묘사한 것입니다. 산세도 그러하지만 더욱 낯선 것은 바로 석봉과 그 앞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한강에서 하는 낚시는 주로 대낚시이며, 이는 깊은 물에서 주로 즐기는 낚시법입니다. 반면 견지낚시는 우리의 전통 낚시이며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선의 소요정은 18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견지낚시가 묘사된 유일한 고증자료이기도 합니다. 배를 띄운 다음에 끈을 묶을 돌을 내려 닻으로 삼는 형식의 견지낚시는 정선의 그림에서 묘사되었듯 여울에서 즐기는 낚시법입니다.

그림 뒤편으로는 강변에 잘 자라는 버드나무가 가지와 잎을 길게 내리우고 있습니다. 강에 우뚝 솟은 큼직한 석봉은 건너편 난지공원 인근에 쌓였을 모래와 대비되어 기막힌 장관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석봉, 어느 공사장의 골재가 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었겠지요.

그림에 묘사된 석봉 중 오른편은 허가바위, 왼편은 광주바위이다.
▲ 소유정 정선 作 그림에 묘사된 석봉 중 오른편은 허가바위, 왼편은 광주바위이다.
ⓒ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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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봉은 커녕 야트막한 산자락을 찾기도 힘들어졌다.
▲ 현재 등촌동 일대 석봉은 커녕 야트막한 산자락을 찾기도 힘들어졌다.
ⓒ 네이버지도검색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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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형(!) 조경석 호안을 딛고 대낚시를 즐기는 당신은 진정한 용자
▲ 낚시 금지구역에서 자연형(!) 조경석 호안을 딛고 대낚시를 즐기는 당신은 진정한 용자
ⓒ 김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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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강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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