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MP3로부터 시작되었다. 멀쩡히 잘 쓰고 있던 MP3가 어느 날부터 스크롤 버튼이 제멋대로 작동을하고 배터리도 약해졌는지 몇 시간 가질 않는다.
그래서 P회사 AS로 문의하니 그 모델은 부속을 구하려면 2주 정도 걸리는데 괜찮겠느냐 동의를 구한다. 아무리 은쟁반에 옥이 구르는 목소리지만 탐탁지 않다.
일단 AS는 보내지만 거의 포기하고 싸구려 MP3를 하나 구하니 웬 자료 다운로드 쿠폰이 몇장씩이나 동봉되어 왔다. 평상시 이런 것들은 쓰레기 통으로 직행하는데 음악파일이나 좀 받을까 하고 들어가 보았더니 '세상에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파일이 그곳에 다 있었다.
문제는 음악파일들을 받고 영화파일을 받기 시작하니 하드가 꽉 차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가지고 있던 빈 하드를 편하게 사용하려고 보니 컴퓨터 파워 서플라이에 S-ATA 컨넥터가 하나밖에 없어서 파워를 업그레이드 해야할 필요가 생겼다. 사실은 필요를 만들었다. 지름신이 강림하면 항상 핑계거리를 만드는 게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속성 아니던가?
그래서 인터넷으로 S-ATA 컨넥터가 무려 6개나 달린 500W 파워와 내장형 카드리더기를 주문하니 '빠르기도 하지' 이틀 후 아침에 제꺽 내 품에 안겼다.
허겁지겁 달려 있던 파워를 분리하고 새 파워와 카드리더기를 달았더니 '어!' 전원이 들어오질 않는다. 다시 예전 파워를 붙이고 돌리니 팬이 잠시 도는 듯하다 멈춰버린다. 도사님께 전화를 했더니 메인보드를 분리하고 모니터만 붙여서 작동시키라는 말씀이다. 일일히 뽑을 것 뽑고 분리시켜 전원을 키니 신통하게도 모니터에 윈도우 프로그램이 돌아간다.
'역쉬~'
'룰루랄라'하며 보드를 다시 붙이고 새 파워 다시 달고 낄 것 끼고 전원을 넣으니 회심의 미소도 일순간, 또 다시 그 증상이 시작된다. 또 다시 분리하고 옛날 파워 달고 모니터만 달아 전원을 넣으니 이젠 완전 먹통이 되어버렸다. 다시 도사님께 전화하였더니 나도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노라 하며 메인보드에 이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주신다.
하긴 내가 무얼 잘못해서 보드가 나갔거나 좀 안 좋던 것이 탈착을 반복하는 순간 완전히 나자빠졌든 아니면 파워가 안 좋든... 머릿속에서는 해결책에 대한 프로우 차트가 막 그려지고 Yes or No 에 따라 화살표방향으로 내려가더니 나온 결론은 일단 파워와 메인보드를 AS센터에 보내고 컴퓨터가 없음으로해서 일어나는 금단증상을 해결할 메인보드를 하나 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메인보드는 이미 단종되어 동종의 것을 구하지 못하고 중고시장을 기웃거리니 마침 하나 보인다. 배송되어 온 중고보드를 끼우고 다시 조립한다.
환자로 온 친구를 마취 해놓고 잠시 들어와 전원을 넣으니 다시 먹통. 전원이 안 들어오는 것 만큼 내 머리 속도 깜깜해진다.
'원장님! 환자는요?'
아차 마취했었지?
'뭣 때문에 그렇게 정신없어?'하며 내 방으로 들어 온 친구도 '글쎄 왜 그럴까?'하며 자기도 의아해 한다. 다시 분해해서 친구 앞에서 스스로 복창해 가며 하나씩 조립해본다.
'자 메인파워 연결하고...보조 연결하고...S-ATA연결하고...모니터 연결하고...'
'그리고 카드리더기는 USB에 연결해야지?'
가만 보니 핀의 형태는 같은데 기판에 프린트 된 색깔이 다르다.
'이게 뭐지?' 조그맣게 써진 글자를 들여다 보니 USB로 생각했던 핀은 1394핀이었다.
속으로는 원인을 찾은 듯 했지만 '설마 이러면 카드리더기만 안되어야지 컴퓨터 전채가 작동을 안 할리가?'하며 조립을 마치고 전원을 켜니 평소 시끄럽게 느껴졌던 팬소리가 그렇게 반가울수가?
그런데 문제를 해결한 감동보다 더 큰 감동은 그 후였다.
일단 파워는 새것으로 교체되어 왔고 메인보드는 잘돼야 '이상없음'이라는 확인서가 붙여오겠거니 하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뽁뽁이로 대충 싸여 올 줄 알았던 메인보드가 깨끗한 박스에 포장되어 왔다.
속에는
외관검사-이상없음입고점검-전체점검 이상무출고처리-동일모델 정상교체'그럴 수가 있나?' 동일모델로 교체해주다니?
전화 받을 때의 좀 떨겁던 목소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변해 풋풋이 기억 속에 쌓이고, 연식이 오래 된 목소리에 오래 된 보드를 가지고 노는 게 가엾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짐작도 들긴 하지만, 세상에 이런 일이 나에게도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살맛나는 세상인지 이 글을 통해 J회사와 담당자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