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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m의 높이 대원개(쿠폴라)는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1437년에 완성되었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들은 10년 후에 저 쿠폴라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다. 쿠폴라의 곡선은 마치 순정한 처녀의 치마처럼 우아하다.
▲ 두오모의 쿠폴라 106m의 높이 대원개(쿠폴라)는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1437년에 완성되었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들은 10년 후에 저 쿠폴라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다. 쿠폴라의 곡선은 마치 순정한 처녀의 치마처럼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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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가파른 계단은 때때로 소라고둥처럼 휘돌아졌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벽에 기대어 쉴 수도 없다. 뒤따라오던 다른 여행자가 내 엉덩이에 코를 박는 민망함을 피하려면 부지런히 414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다행히 때때로 널찍하게 쉴 공간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종탑의 꼭대기에 이를 무렵 절로 드는 생각. '헥헥, 내가 이 성당의 지체 높은 성직자는 어찌 됐는지 잘은 모르겠고, 종지기만큼은 천국에 간 게 틀림없지' 매일 종을 치기 위해 오르내렸을 그 종지기만큼이나 하늘의 뜻에 가까이 다가간 신실한 자가 또 있었을까.

그러나 조토의 종탑 끝에 올라 한눈에 들어온 피렌체(Firenze)를 맞닥뜨리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마음을 닦듯 묵묵하게 오르내렸든, 하루하루를 불평불만으로 종을 때렸든지 간에, 그 종지기는 죽어 천국에 가기 전에 이미 살아서 천국을 본 게 틀림없다는 것을.

피렌체 도시 가득 붉은 지붕들이 푸른 하늘 아래에서 물결처럼 펼쳐졌다. 중세 때부터 상업과 금융업으로 성장한 이 도시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에 힘입어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단테나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수많은 예술가들은 피렌체가 낳은 인물들이다.

조토의 종탑 꼭대기에 오르면 피렌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런 좁은 계단에서 앞서 가는 사람을 만난다면 고개를  푹 숙여주는 게 예의.
▲ 414계단 조토의 종탑 꼭대기에 오르면 피렌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런 좁은 계단에서 앞서 가는 사람을 만난다면 고개를 푹 숙여주는 게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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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를 보려면 두오모에 오르지 마라

피렌체의 상징 두오모 성당의 돔(Cupola, 쿠폴라)이 바로 앞에 보인다. 저 돔의 꼭대기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의 남녀 주인공이 만나는 약속을 했다는 것, 영화는 주로 피렌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영화를 보지 않았다.(돌아와서 봤다)

어쩐 일인지 두오모는 문을 열지 않아서 우리는 두오모의 계단을 오르는 대신, 옆에 있는 종탑을 올랐다. 어쩌면 두오모에 오른 것보다 조토의 종탑에서 두오모의 돔을 더 잘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볼록하지도 너무 가파르지도 않은 쿠폴라의 둥근 곡선은 어찌 그리도 우아하고 간결한지. 마치 순정한 처녀의 치마자락처럼 아름답다. 너무 좁지도 부풀지도 않은 치마폭이 지루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듯 딱 보기 좋다.

고대 로마의 건축인 판테온 신전에서 영감을 받아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완공되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공학기술을 설명하기 힘든 르네상스의 걸작품이라고 한다. 멀리서 보면 두오모 성당은 붉은 색 푸른 색 흰 색으로 울긋불긋 색깔을 입힌 듯한데, 가까이서 보면 그게 모두 다른 색깔의 대리석이란 걸 알 수 있다.

꽃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대리석의 다양한 색감이 아름답다.
▲ 두오모 꽃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대리석의 다양한 색감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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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그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에 두 번 놀랐다. 앞에서는 그 아름다움에 놀라고 뒤에서는 그 더러움에 놀랐다. 검은 때가 더께가 져서 흘러내리듯 하얀 대리석을 온통 뒤덮은 모습이, 철수세미로 박박 긁어도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강고해 보였다.

언젠가, 대리석을 닦아내는 일조차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또한, 온 도시의 온 건축물이 유물이고 유적인데 그 모든 걸 한결같이 관리하는 것도 힘든 일이겠다 싶은 생각이, 더러운 뒷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이틀을 머물게 될 한인 민박집조차 1300년이나 된 건물이라고 했다. 두오모 역시 700년 이상 된 성당인 걸 보면, 이탈리아에서 일, 이백 년은 기본인 듯싶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우리나라 커피점 간판 한 귀퉁이에서 'since 1982' 같은 표시를 발견하다면 콧방귀를 뀌고, 아파트 올라간 지 40년 만에 재건축하는 일에는 코웃음을 칠 일이다.

1300년 된 건물에서의 저녁 만찬

민박집은 여행하다 고향에 들른 것처럼 편안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가 외출한 사이 부탁해 놓은 빨래를 보송보송 말려서 침대위에 가지런히 개어놓기까지 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마중 나왔던 무뚝뚝한 아들이 소개해준 식당에서의 점심은 최고였다. 육즙이 풍부해 입에서 살살 녹는 스테이크와 봉골레는 이탈리아 요리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인 민박집을 예약할 때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해외 여행까지 가서 한국인과 복닥거리며 부딪히는 것도 흥이 깨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도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욕실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민박집에서 제공하는 식사였다. 첫 저녁식사를 위해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둥근 식탁에 둘러 앉았을 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밥아, 너 본 지 오래구나!"

입맛을 돋우는 장아찌와 김치, 매번 바뀌는 특별메뉴는 절친한 이웃집에 초대받아 대접 받는 음식처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정성스럽고도 따뜻하다. 함께 식사를 하는 여행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다. 이런 저런 가벼운 정보까지 양념으로 곁들여져 저녁 만찬은 더욱 풍부해지게 마련.

이탈리아에서 요리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젊은 여행자는 함께 온 여자 친구와 이 민박집 칭찬을 늘어놓았다. 여긴 정말 음식이 최고다, 다른 한인 민박집은 장삿속이 빤해 음식이 엉망인 곳이 많다, 한인 민박집이라 해도 조선족들이 하는 곳이 많다는 등....

아무 것도 모르고 무작정 인터넷 통해 예약해 버린 민박집이 밥맛이 최고인 집이라니, 로또 맞은 기분이 뭐 별거냐 이런 거지, 싶다. 게다가 1300년 된 건물에서의 저녁 만찬이라니 이 흐믓함과 충만함, 로또보다 못할 게 없다. 장담컨대, 여행이 얼추 반이 지난 그 무렵, 입에 맞는 음식으로 원기를 회복해 주지 않았다면, 더위에 지치고 체력이 딸려, 여행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빨리 내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리라.

여행이 길어진다면, 밥이 맛있는 한인 민박집은 필수 코스. 아, 새콤 달콤한 키위 드레싱의 맛은 아직도 그립다!
▲ 한인 민박집 식사 여행이 길어진다면, 밥이 맛있는 한인 민박집은 필수 코스. 아, 새콤 달콤한 키위 드레싱의 맛은 아직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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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뜨거움은 물러갔지만 피렌체의 밤은 여전히 더운 공기가 가득했다. 천장이 훌쩍 높은 방이지만, 더 이상 갈 곳 없는 더운 공기가 위에서부터 차곡차곡 밀려 내려오는 것만 같았다. 에어컨을 달지 않은 건 1300년이나 된 건물에 대한 예의일까?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면서, 덧문을 활짝 열었다.

오토바이 소리는 끊임없이 좁은 골목길을 뒤흔들었고, 야외 카페의 테이블에 둘러앉은 젊은이들의 혈기왕성한 소란스러움은 1300년이나 된 건물을 예의도 없이 밤새도록 두들겨 댔다.

조토의 종탑을 오르는 동안 서서히 피렌체 시가가 펼쳐지고 있다.
▲ 두오모 조토의 종탑을 오르는 동안 서서히 피렌체 시가가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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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9년 8월, 2주 동안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습니다.



태그:#피렌체, #두오모성당, #조토의 종탑, #이탈리아, #한인 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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