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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드라마 <이웃집웬수>
 SBS드라마 <이웃집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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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주말드라마 <이웃집 웬수>와 MBC 주말드라마 <민들레 가족>에 등장하는 퇴직 남편의 모습이 중장년 부부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먼저 SBS 주말드라마 <이웃집 웬수>. 정년 퇴직 후 껌처럼 집에 착 달라붙어 24시간 아내하고만 놀자는 남편(박근형 분). 시장을 갈 때도, 부엌에서 멸치를 다듬을 때도, 심지어는 미용실 갈 때도 뒤를 졸졸 따르며 사사건건 '싸니 비싸니, 좋으니 나쁘니' 눈치 없는 잔소리까지 하더니 마침내 참을성이 바닥난 아내(정재순 분)에게 서운한 소리를 듣게 된다.


"나도 숨 좀 쉬고 살자구요. 당신 이렇게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내가 얼마나 불편한지 알아요? 당신도 친구들도 만나고, 취미생활도 하고 하다못해 기원을 가든지 등산을 가든지 하세요. 일주일에 세 번쯤은 바깥에 나가줬으면 좋겠어요. 제발 좁쌀영감처럼 굴지 말고 친구들 밥도 사주고, 술도 같이 마시고 가끔 골프도 나가고 그러시라구요."


퇴직 직후에는 그동안 가족을 위해 직장생활을 해 온 남편과 일에 쫓겨 함께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도 즐기고 여행도 다니자며 위로해주던 다정한 아내였지만 한 달을 넘기지 못해 언제 그랬냐며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편이 직장생활을 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아내는 자기만의 공간인 가정 안에서 나름대로의 생활 패턴을 만들었고 그 패턴에 따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왔기 때문에 어느날 불쑥 혼자만의 공간에 들어 온 남편이라는 존재가 어색하고 불편한 것이다.

사랑이 있다면 그 정도쯤은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랑으로 불편을 참아내기엔 그동안 두사람 사이에 쌓아놓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부족한 것이 우리나라 장년, 노년층 부부의 현실이다.

사업 말리는 아내와 마냥 놀 수 없는 남편

<민들레가족> 정년퇴직 후 사업문제로 사이가 급격히 나빠진 유동근, 양미경부부
 <민들레가족> 정년퇴직 후 사업문제로 사이가 급격히 나빠진 유동근, 양미경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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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말드라마 <민들레 가족>에도 정년퇴직한 남편이 등장한다. 회사와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하다시피 했던 일중독 남편 상길(유동근 분). 스스로도 회사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에 퇴직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남편은 한참 일을 하고 있을 낮 시간, 집에서 아내 숙경(양미라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낯설고 불편스럽다. 집안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한 남편은 여전히 회사에 마음 반쪽을 두고 온 상태. 미련이 남아 여전히 회사 일에 머리를 쓰고 마음을 쓰지만 회사 역시 퇴직자인 자신이 마음 붙일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평생을 일중독자로 살아 온 상길은 많은 퇴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일거리를 찾아 사업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그동안 모아둔 재산을 투자해 자기 회사를 차려보려는 것이다. 퇴직자들의 불행은 대부분 이때부터다.

퇴직한 남편이 사업 이야기를 꺼내면 아내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마도 백이면 백 펄펄 뛰며 사생결단 말리려 들 것이다. 드라마 속 유동근의 아내 양미경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가진 돈이면 애들한테 손 벌리지 않고도 당신하고 나하고 평생 먹고 살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걸로 가끔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당신은 친구들과 운동도 다니고... 그렇게 편히 살면 안 되나요? 사업이요? 난 절대 동의 못해요. 사업하려면 이혼부터 하고 하세요."

남편의 퇴직을 안쓰러워하고 어떻게든 퇴직한 남편의 기를 살려주려 노력하던 착한 아내마저 폭발하게 하는 남편의 사업. 아내는 남편과의 말다툼 끝에 아예 짐을 싸서 집을 나와 버린다. 

남편이 싫고 미워서가 아니라 남편의 잘못된 시도로 부부의 노후가 불안해지는 것을 원치 않고 또한 주변에서 어설프게 사업을 시작했다 실패를 한 퇴직자들의 경우를 많이 보아왔기에 그런 실패를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일 하지 않고 집에 있어도 문제, 나가서 사업을 하려 해도 문제. 들어와도 걱정, 나가도 걱정. 사실 당사자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퇴직한 남편은 아내들에게 커다란 부담이기도 하거니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퇴직한 남편의 입장은 어떨까? 남편들이라고 아내가 반대하는 사업을 벌이고 싶을 것이며 남편들이라고 왜 나가서 친구들과 만나 차마시고 술 마시고, 골프 치며 노는 것이 싫을까 싶다.   

"평생 가져다주던 월급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 위축이 되고, 가장으로서 일을 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돈을 곶감꼬치 빼먹듯 빼먹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여러 가지로 자신감이 떨어지는 거지. 남자들이라고 놀기 싫고 돈쓰기 싫어서 그러나. 벌 때 쓰는 돈은 부담이 되지 않지만 벌지 않고 쓰기만 하는 건 큰 부담이거든. 물론 수십억 재산가라면 다르겠지만 말이야."

함께 TV를 보던 남편이 드라마 속 퇴직 남편들의 입장에서 한마디를 한다. 그렇다면 왜 집에만 붙어 있는 건지? 왜 혼자 놀지 못하고 젖먹이 아이처럼 아내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건지도 궁금했다.

"지금 퇴직하는 우리 세대들이 다 그렇지만 대부분 회사에 자신의 운명을 걸었던 세대들이야. 일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과 가정을 돌보지 않고 오직 일에만 매달렸던 세대들이지. 그러다보니 이 사람들이 회사일 밖에 모르는 거야. 다른 취미나 놀이문화를 즐길 여유가 있었겠냐구."

말을 하다 보니 남편도 살짝 열이 받는지 목소리가 올라간다.

"마누라들 입장도 이해하겠지만 퇴직한 남편 보고 나가라고 하면 그 사람들이 어딜 가겠어? 술 마시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취미 생활도 하루 이틀이지. 마누라들이 그렇게 자주 술 먹고 놀러 다니면서 모아 둔 돈 쓰고 다니면 좋아할까? 아마 그러면 더 못 살겠다고 난리들을 칠 걸."

아내들 "회사에서 '퇴직 교육'해 줄 순 없나"

남편의 말에 수긍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퇴직할 나이가 되어 버렸고 살면서 퇴직까지 준비할 여유가 없었기에 아무런 준비 없이 퇴직을 하게 된 것뿐인데 마누라, 자식들 눈치 보며 집안에서 받아야 할 스트레스가 너무나 큰 것이다. 

"우리도 처음엔 24시간 붙어있는데 미치겠더라구. 시장을 가도 따라 오구, 운동을 가도 따라 오구, 남편이 집에 있으니 편히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을 수가 있나, 이웃집 아줌마 불러 질펀하게 수다를 떨 수가 있나. 나갔다가도 밥 때 되면 뛰어 들어오기 바쁘고. 나이 오십 넘어서 이게 무슨 시집살인가 싶더라. 남편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봐. 하루 24시간이 왜 그렇게 긴지 모른다니까."

올해 퇴직한 남편과 몇 달만에 그러저러한 일로 크게 부부싸움을 했다는 친구. 그 후 남편도 집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렇게 조금씩 퇴직생활에 적응을 해가고 있지만 퇴직 전과 달리 매사에 소심한 모습을 보이는 남편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단다. 

"아직 너무 젊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많고, 무엇을 시작하기엔 위험 부담이 크고, 퇴직한 사람 다시 받아주는 회사도 없고, 마땅한 소일거리도 없고... 내가 봐도 우리 남편 참 답답할 것 같아. 일도 없고, 친구도 없고, 취미도 없고 어쩜 인생을 저렇게 재미없게 사나 싶어. 어떤 땐 불쌍하다니까."

나와 친구들의 나이가 오십에 이르다 보니 바야흐로 베이비붐 세대였던 남편들이 역시 하나 둘 정년퇴직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래서 낮 시간 동안은 집전화로 통화하지 않는 것이 예의가 되어 버렸다. 혹시라도 친구 남편이 전화를 받게 되면 서로가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다가올 거라 예상은 했던 정년퇴직. 하지만 남편들도 그들의 아내들도 정년퇴임 이후의 생활에 대해 전혀 준비한 것이 없기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남자들 퇴직하기 전에 회사에서 퇴직 후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 혼자 노는 방법 뭐 이런 것 좀 가르치면 안 되나? 모의 창업이나 퇴직 후 재취업 교육 같은 것도 좀 해주고, 퇴직 후 즐길 만한 취미교실도 좀 열어주고...부려먹지만 말고 퇴직 후 인생설계에도 도움이 되어주면 얼마나 좋아."

오죽 답답했으면 회사를 향해 되지도 않을 퇴직 전 교육까지 바랄까 싶지만 앞으로 홍수를 이루게 될 베이비붐 세대들의 퇴직을 생각한다면 그리 엉뚱한 발상도 아니지 싶다. 퇴직한 남편들도 그를 바라보아야 하는 아내들도 미리 공부하고 준비했더라면 퇴직후 생활에 적응하기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태그:#민들레가족, #이웃집웬수, #정년퇴직, #베이비붐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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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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