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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지난 11일 '천안함의 영웅들,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제목의 특별생방송을 1부와 2부로 나눠 4시간 동안 방송했다.
 KBS는 지난 11일 '천안함의 영웅들,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제목의 특별생방송을 1부와 2부로 나눠 4시간 동안 방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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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천안함 사고에 대해 성금을 걷겠다고 나섰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그 사고의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한 천안함 사고에 대해 국민들의 온정의 손길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MB특보 출신을 사장으로 모시고 있는 KBS의 비장의 카드인지도 모른다. 천안함 사고로 인해 심기가 불편하실 대통령을 위해 '액션'을 취해야 했을 KBS의 입장에서 국민성금은 익숙하지만 꽤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권 여당에게 불리한 모든 이슈를 덮어 버리되, 정부에게 불리한 천안함 사고 원인이나 책임은 희석시키고 사건 자체의 비참함을 더 크게 강조하는 방법으로서의 국민성금.

비극적이지만 이와 같은 국민성금은 우리 국민들에게 절대 낯선 존재가 아니다.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에서부터 시작해서 5공 평화의 댐 건설 성금, IMF 금 모으기 그리고 최근에는 숭례문 복원까지. 우리의 국가는 툭하면 국민성금을 운운했고 국민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왔다.

국민성금 통해 강화되는 근대국민국가체제

따라서 국민성금이 제도 아닌 제도로 굳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근대국가가 국민을 호명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국가가 국민들에게 자신의 절대성을 확인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국가적인 재난, 사고에 한두 푼 모음으로써 자신이 국민임을 커밍아웃하며, 국가는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 모자란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구성원의 결속을 도모한다. 결국 국민성금을 통해 근대국민국가체제는 강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성금은 종종 국가가 원하는 이데올로기를 담지한다. 우리는 평화의 댐 건설 성금을 내면서 다시 한 번 북한 빨갱이의 무서움과 반공의식의 필요성에 대해 교육받았으며, IMF 당시에는 금을 모으며 이 국난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국민이 하나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술을 걸었다. 금 모으기가 경제적 행위가 아닌 애국적이고 민족적인 거사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맹목적인 국민성금에서는 나의 성금이 독재자의 수중에 들어갔다 한들, IMF 때 팔았던 금을 추후에 더 비싸게 샀다 한들 별 의미가 없다. 각 개인에게 중요한 것은 국가가 내게 구조를 요청했다는 사실과 내가 그 부름에 기꺼이 응했다는 사실이다. KBS는 이번 천안함 성금으로 하루만에 5억 원을 모았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결국 국민성금이 그만큼 효과적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천안함 사고, 모든 책임은 국가에 있다... 근데 왜

15일 오전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 함미 인양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15일 오전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 함미 인양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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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국민성금으로 국민을 호명하고 재원을 마련하는 국가. 과연 무슨 일만 터지면 국민성금을 걷는 이와 같은 관행은 옳은 것일까?

특히 이와 같은 의문은 현 정부에 들어서 더욱 부각되고 있는데, 이는 현 정부가 남대문 복원이나 천안함 사건 등 애매한 대상에까지 국민성금을 걷겠다고, 혹은 그것을 방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천안함 사고를 위해 국민은 성금을 낼 의무가 있는 것일까?

물론 모든 국민성금을 잘못되었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그 중에서는 국민성금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매년 발생하는 국내의 수해나 최근 일어났던 아이티 지진 재해에 관한 성금의 경우,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각 개인들이 시민적 연대의식을 갖고 기부하는 구호성금으로서 널리 장려되어야 마땅한 성금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고의 경우, 그 국민성금의 성격은 애매할 수밖에 없다. 사고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오히려 국민성금을 걷겠다고 나선 경우이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까지 사고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내부파열로 침몰했든 기뢰 혹은 어뢰로 파괴가 됐든 사고의 책임은 이 모든 것을 예방하지 못한 군에게, 그리고 국가에게 있다. 결국 그 예방을 위해서 국민은 국가에게 세금을 내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국가가 천안함 수몰자 유가족들을 위해 지상파까지 동원해 국민성금을 거두는 것은 모순에 가깝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성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사고가 일어난 이유를 명명백백히 밝혀 그 책임자를 찾아 문책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일이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자신이 할 일 국민에게 미루지 않길 바란다

그렇다면 왜 현 정부는 남대문이나 천안함 같이 논란거리가 되는 대상에조차 국민성금을 거두겠다고 나서는 것일까?

답은 뻔하다. 정권초기부터 부자 감세를 통해 꾸준하게 세금을 줄이고 국고의 대부분을 4대강과 같은 얼토당토 않는 분야에 소진하고 있는 현 정부가 어찌 천안함 침몰 같은 상상도 못할 재난을 위한 예산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지금까지 해왔듯이 국민들에게 성금을 내라고 하는 수밖에.

시대가 변했다. 이제 국민들은 더 이상 성금을 내라는 국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많이 배웠다. 부디 정부가 타성에 사로잡혀 자신의 할 일을 국민에게 미루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천안함, #KBS, #국민성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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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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