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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자존심 상한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면 의외라는 듯이 저를 봅니다. 저더러 전혀 남과의 관계에서 주눅이 든다거나 열등의식이 있다거나 하지 않을 거란 말을 합니다. 실은 안 그런데 말입니다.  

 

자기의 생각과 주장, 고집이 센 사람일수록 열등감이 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라는 상, 어떤 것을 '나'로 삼아 그것에 사로잡혀 있으면 남의 말이 잘 안 들리고, 자기 의견에 반했을때 참기가 힘듭니다. 저한테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주 뿌리깊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제가 참 야무지고, 똘똘하게 보이나 봅니다. 더군다나 책도 썼으니 무척 글도 잘 쓰는 사람인 줄 아는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귀고 보면 야무진 구석도 없고, 들여다 보면 똑똑한 구석은 더더욱 없고, 더 들여다보면 사물을 문학적인 표현 없이 있는 그대로 묘사할 뿐, 특별한 글재주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열등감이 있습니다. 저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면 시기와 질투도 일어나고, 일 잘하는 사람에게 경쟁심도 느낍니다. 또 글 잘 쓰면서 얼굴까지 예쁘면 말할 것도 없이 제가 미워합니다. 그런데 또 그런 제 자신을 보면서 못난 제 자신을 자책합니다.  

 

하지만 사람들 있는 앞에서는 절대 열등의식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왜냐? 잘난 척을 해야하니까요. 제 자신이 못난 것을 인정하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이 또 없더라구요. 그래서 티를 가급적으로 안내려고 하는데 어찌 티가 안나겠습니까. 나지요.  

 

오늘 스님께 질문한 분은 용감하게 자신이 열등감이 시달린다고 고백하시네요. 저보다 용감한 분 덕분에 열등감에서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스님의 법문을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깨달으면 바로 성불하겠는데...^^  

 

질문  

저는 열등감이 많습니다. 어떻게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법륜스님 법문 

 

열등감은 허상입니다.

우리는 남보다 잘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것이 뜻대로 안 되면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사춘기의 학생들은 첫째가 외모, 두 번째가 성적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혀요. 그래서 아이들이 거울을 자주 보고, 옷에 신경을 쓰는 걸 보면 어른들은 공부는 안 하고 외모에만 신경 쓴다고 야단을 칩니다. 사실 사춘기 때는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고,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고, 어디를 가든 중심에 서고 싶어 합니다. 그게 충족이 안 되면 소외감과 열등감을 느끼고 심해지면 정신적인 충격에 사로잡혀 자학에까지 빠집니다.  

 

또 일부는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우월의식은 자기가 잘났다고 폼을 재고 잘난 척하는 데서 생긴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열등감도 우월의식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열등감이라고 하니까 열등의식 같지만 실제는 자기가 잘나고 싶다는 우월의식이 밑바탕에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재는 서로 다를 뿐.

존재에는 우월성도 없고 열등성도 없고 서로 다를 뿐인데 내가 그걸 보고 차별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것보다 더 좋다.', '더 나쁘다.' 하는 생각은 존재 자체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 왜곡된 것입니다. 그걸 반야심경에서는 전도몽상이라고 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지 못하고 거꾸로 뒤바꿔 알고 있으니 실재와 맞지 않습니다. 안 맞으니까 현실에서 부딪히고 고통과 번뇌가 생기고 구속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못이나 망치는 자기가 사용되지 않는 곳에 있어도 불평이 없습니다. 쓰이지 않으면 그냥 있을 뿐입니다. 필요가 없을 때는 그냥 거기에 있다가 필요할 때가 되면 자기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사실을 있는 대로 관찰해 보면 그 존재 자체에 어떤 우월성이라든지 열등성이 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은 육근이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어떤 문제를 받아들이면서 열등의식과 우월의식을 가집니다. 오아시스가 실재하지 않는데 사막에서 오아시스가 눈에 보이는 신기루와 마찬가지입니다. 실재하지 않아도 우리가 느낄 수는 있습니다. 눈에 보일 수도 있고 귀에 들릴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허상을 허상인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나는 코가 못 생겼다, 눈이 못 생겼다.' 하지만 그런대로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볼 때 소위 예쁘고 잘났다는 배우들을 만나보면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얼굴에 대한 열등감이 큽니다. '다 잘났는데 눈이 문제야. 다 괜찮은데 코가 문제야. 입술은 괜찮은데 이가 이상하게 생겼어.' 이렇게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많습니다. 실재로 열등한 것과 열등의식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 의식이라는 것은 신체와는 별개인 정신작용이기 때문에 아주 우등이어도 열등의식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제일 열등의식이 심한 집단이 어디인가?' 라는 통계 자료를 본적이 있었는데, 서울대학교 인문사회계열 국내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가장 열등의식이 심한 걸로 나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정도니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항상 일등이었어요. 그런데도 국내 박사학위를 땄기 때문에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에 대한 열등의식이 심합니다. 객관적으로 미인이라고 하는 배우들이 신체적인 열등의식이 더 심한 것과 마찬가집니다.

 

이 세상에 열등한 존재는 없다. 존재는 서로 다를 뿐.

예를 들어 보통 사람 스무 명을 뽑아서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고 해 봅시다. 키나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순서, 눈이나 입이 큰 순서, 팔이나 손가락이 긴 순서를 매기고, 또 누가 더 달리기를 잘하나, 넓이 뛰기를 잘하나, 부엌에서 음식을 잘하나 등으로 순서를 매긴다면 다양한 점수가 나옵니다.  

 

스무 명의 사람으로 한 천 개쯤의 질문을 해서 점수를 매겨서 평균을 내어보면 그 평균 점수가 비슷하게 됩니다. 이것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각각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서로 비슷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떤 시대나 상황, 조건에서는 이 중에 몇 개만 가지고 등수를 매깁니다. 몇 십 년 전에는 주로 수학, 국어, 영어 등 성적을 중심으로 등수를 매겼고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는 오직 문장 잘 쓰는 그 한가지로 점수를 매겼어요.  

 

그런데 지금은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것도 굉장한 능력으로 인정받습니다. 50년 전에 태어났으면 공 잘 던지는 것이 쓸모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야구에서 그 한 가지만으로 엄청나게 큰돈을 법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자기 아이가 능력 없다고 평가하면 안 됩니다. 시대에 따라 기준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신체장애는 열등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

그러니, 절대적으로 우월한 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절대적으로 열등한 이가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열등의식이 허상임을 알아 열등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령 신체장애는 열등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에요. 팔이 하나 없는 것은 다만 불편할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 의족을 해서 편리한 방향으로 극복하면 됩니다.  

 

그런데 신체장애를 열등하다고 생각하면 두 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자살충동 즉, 죽어버리고 싶은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팔이 두 개 있는 남의 팔을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입니다. 그래서 열등의식이 있으면 자학증상과 공격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상성격의 소유자가 됩니다. 독재자들을 심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들에게 열등의식이 잠재되어 있는 걸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자기를 칭찬하고 잘해주면 혀라도 빼줄 듯이 베풀다가 자기에게 반대하면 형제나 아내까지도 죽여 버릴 정도로 감정 기복이 극한으로 치우쳐 늘 불안한 삶을 살아갑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인간의 재능 중에서 필요한 몇 가지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에 우월하고 열등한 게 생깁니다. 그러나 눈이 잘 안 보이는 것이 다만 불편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면 눈이 나쁘다는 열등의식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의식의 문제, 불교로 말하면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치만 잘 알면 열등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의 열등의식은 내가 어릴 때 영어나 수학을 못 했든, 춤을 못 췄든, 잘 못 했던 것에 내가 집착함으로써 생긴 것입니다. 그 열등의식이 현재의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무지로부터 형성된 것이지 본래 열등한 건 아닙니다. 

 

존재 자체가 우월하고 열등한 게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그 어떤 존재도 불쌍한 존재는 없습니다. 불쌍하다는 것은 내 생각이에요. 사람이 죽는 것이 불쌍하다면 우리 마음은 내내 불쌍해야죠. 지금도 계속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설령 누가 죽는 걸 봐도 자기하고 연관 관계나 이해가 있고 없음에 따라 불쌍한 생각이 일기도 하고 안 일기도 합니다. 어린 아이에게 손이나 다리 하나가 없으면 우리는 그 아이를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그 아이를 보면 불쌍하다고 여기실까요? 부처님은 여느 아이와 똑같이 그 아이를 안고 웃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아이를 잡고 잘 웃다가도 그 아이를 보면 갑자기 '손가락이 하나 없네, 아이구, 불쌍해라.' 이럽니다. 그 아이 입장에서는 본래는 자신이 불쌍한 존재가 아닌데 모든 사람이 자기를 보고 불쌍하게 여기고 불쌍해하는 얼굴 표정을 지으니까 그 아이는 우울해집니다. 그러니 누가 아이를 불쌍하게 만들어버린 거예요? 바로 우리의 생각, 의식입니다. 우리에게 열등의식이 없다면 스스로는 누구도 열등하거나 우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하면 부러울 것도 없고 도움 받을 것도 없는 거지요. 

 

존재는 열등한 것은 없는데 열등의식은 현실로 존재한다.

열등하지 않는데 열등의식이나 우월의식이 형성되는 이유는 인생에서 몇 가지만 가지고 집이나 학교, 사회가 순서를 매기기 때문입니다. 돈에 집착을 하면 자기보다 돈 많은 사람에 대해서는 열등의식이 아주 큽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돈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또 우월의식이 아주 큽니다. 또 사회적 지위나 출세에 집착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계급이 하나라도 높으면 굉장히 비굴하게 굴고 자기 아랫사람에 대해서는 권위의식을 갖습니다. 이처럼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은 어떤 것에 집착하면서 생기는 거예요.

 

돈에 집착하면 돈 문제에 있어서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이 생기고, 얼굴에 집착하면 외모에 관해 우월의식이나 열등의식이 생깁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열등의식은 무지로부터, 환경으로부터 형성된 것이지 본래 존재가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은 아니다.' 이 사실만 우리가 확실히 알아도 열등의식에 사로잡히지는 않습니다. 열등의식이 일어나기는 하겠지만 내가 거기에 사로잡혀서 울고불고하지는 않아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바랍니다.  

 

스님의 법문으로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저 성불한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면 저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릴 여러분들을 위하여 제가 보살의 마음으로 성불은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의 열등의식은 집착함에서 비롯된다는 스님 말씀에 해답의 실마리를 조금 찾았습니다.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집착이 열등의식을 만들겠다 싶고, 더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포기하는 마음을 내가 만드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할 뿐이다'는 말을 제가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이유는 저한테는 가장 어렵고, 자꾸 뒤로 물러서려는 제 마음을 앞으로 탁 떠밀어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할 뿐'이라는 말에 잘못 삘받으셔서 혹시 바람 피우시는 분, 지속할 생각 마세요. 또 부부싸움 하시는 분, '다만 할 뿐이기'에 끝장보려 들지 마세요~ 인생이 그래서 피곤한 겁니다.  

 

'다만 할 뿐이다'라는 명심문은 이 날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죽이는 생명이 너무 많고, 죄도 너무 많이 짓습니다. 법륜스님 법문 중에 "고기를 안먹으면 가장 좋지만 만약 먹었다면 그 먹은 힘으로 생명을 죽이는 일에 쓸 것이 아니라 생명 살리는 일에 써라" 라구요.

 

낙동강에 들꽃과 새들과 물고기들이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나두면 낙동강 뿐 아니라 나라가 온통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질 것 같습니다. 생명은 사람이어서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모두 존귀합니다. 생명 살리기에 여러분의 한발이 필요합니다. 동참해주세요.

 

나는 행복을 전하는 보살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토회, #열등감, #법륜스님, #무엇이든 물어라,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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