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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여왕은 오월이라지만 제게 봄은 사월이 더 아름답고 화사하게 느껴집니다. 그건 아마도 어디서 어떻게 날아왔는지 모르게 동네 하천가와 한강변에 피어난 작고 예쁜 들꽃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봄까치꽃, 제비꽃, 토끼풀, 민들레, 개나리꽃... 그 이름들도 하나 같이 소담하고 자연을 닮아서 정이 갑니다. 이런 야생화들이 멀리 있지 않고 동네 가까이에까지 봄바람을 타고 날아와 피니 고마워서 쓰다듬어주고 싶네요.

 

소박하고 자그마하지만 이런 들꽃들을 한강에서 만나 반가운 것은, 한강이 말이 강이지 콘크리트막과 시멘트길에 갇혀 생기를 잃어 버린 삭막하고 거대한 댐 같기 때문입니다. 인공수로인 청계천의 큰 형님뻘이라고나 할까요.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당시 첫 단추를 잘못 꿴 개발을 시작으로 여태껏 한강은 자연이 주는 계절감을 잊어 버린 채 한이 많은 강이 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수초와 먹을거리가 없어 새들도 외면한 한강가에도 사월의 봄이 오면 연어가 고향을 찾듯 들꽃들이 봄바람을 타고 어김없이 날아옵니다. 이맘때면 한강 여의도 지구엔 벚꽃축제가 떠들썩하게 벌어지지만, 한강가와 그 지천변에서 벌어지는 색색의 들꽃 축제도 못지 않게 풍성합니다. 바람처럼 날아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어나는 들꽃들인지라 생명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뜻밖의 기쁨도 준답니다.        
 
매화, 산수유꽃, 벚꽃나무처럼 한 곳에 오랫동안 뿌리박고서 살아가야 하는 봄의 전령사들도 좋지만, 저는 그 어디에도 속박 당하지 않고 바람처럼 살다 가는 유목민 같은 들꽃들이 좋습니다. 게다가 한강처럼 점점 흙이 사라지는 곳에도 날아와 꽃을 피우니 그 강한 의지와 생명력은 인간에게도 삶에 대한 깊은 감흥을 전해 줍니다.

 

제가 좋아하는 봄까치꽃은 가까이 마주하면 파랗고 청명한 하늘이 떠오르는 꽃입니다. 그런데 이 꽃의 원래 이름은 개불알꽃이었다고 하네요. 이름이 안 좋아 사람처럼 개명한 것인데 만물의 영장으로 문자를 쓴다 하여 자연이 준 선물에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다니 봄까치꽃을 볼 때 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동병상련의 꽃들중에 며느리 밑씻개꽃, 노루오줌풀, 애기똥풀도 떠오르네요.  

 

봄까치꽃의 파아란 하늘같은 색깔과 민들레꽃이나 개나리꽃의 노랑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샛노란 색감처럼 들꽃들에게는 원초적인 색이 느껴집니다. 한강가를 예쁘게 꾸미기 위해 조성한 화단의 원예종꽃들이 화려하고도 질서정연하게 피어나 기를 죽이기도 하지만, 봄날은 짧디 짧기에 들꽃들은 부러워하거나 시샘하지 않고 자기만의 본색을 온전히 드러내기에 분주합니다.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따라해야 직성이 풀리는 끝간 데 없는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 세상속에서 저만의 색깔과 개성을 가지라고 들꽃들이 귀띔해 주는 것 같네요.   

 

들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가끔씩 드는 상념이 있는데, 내가 사는 세상의 사회적 약자들을 떠오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시대의 유행으로 자꾸만 넓어지는 산책로와 자전거도로에 밀리고, 색색의 화려한 꽃들로 무장한 조경 화단에 떠밀려 제가 살아갈 땅을 잃어가는 들꽃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그들은 한강 산책로의 돌계단 사이에, 표지판 기둥과 벤치 밑에, 자전거도로의 갈라진 아스팔트길 틈에... 한 줌의 흙이라도 있다면 씨앗을 뿌리고 꽃잎을 돋아나게 합니다. 그 끈질긴 생명력이 참 애처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한강과 그 지천의 여기저기에서 피어나는 들꽃들의 강한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마주하며 제 삶에 반추해보는 꽃피는 계절 사월입니다.

 


태그:#한강, #봄,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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