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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여한 입관예식은 모두 세 번이었다. 한 번은 장례지도사와 함께 내 손으로 직접 고인의 옷을 갈아 입힌 후 다른 가족들이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준비를 했고, 두 번은 장례지도사들이 수의를 완전히 갈아 입힌 다음 얼굴을 보게 해 주어서 다른 가족들과 함께 들어가 고인의 얼굴을 보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입관예식에 참여하지 않은 대부분의 장례식에서는 당연히 고인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없었고, 빈소에서 영정을 바라보며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외국영화를 보면 달랐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누구나 원하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 뚜껑을 열어 놓은 관 속에서 고인은 자는 듯 누워 있고, 가족과 조문객들은 한 사람씩 관 쪽으로 가까이 나와 고인의 얼굴을 보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다...

이것은 문화의 차이일 뿐만이 아니라, 시신에 대해 보존위생처리를 하는 전통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미국의 시신보존위생사 및 장례지도사(Licensed Embalmer & Licensed Funeral Director) 자격증을 취득한 정진구 교수(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가정의례학과)를 만나면서였다.

"시신보존위생, 질병 감염 막기 필요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 참여한 장례문화전문가들(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정진구 교수). 정진구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 참여해 시신 보존에 대한 장의 지도를 했다.
▲ 시신보존위생사 및 장례지도사 정진구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 참여한 장례문화전문가들(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정진구 교수). 정진구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 참여해 시신 보존에 대한 장의 지도를 했다.
ⓒ 정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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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3월 29일 정진구 교수를 만나 나눈 일문일답이다.

- 그동안 전직 대통령들의 장례예식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단독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고 장례문화전문가인 유재철 생활의례문화원 대표가 구성한 팀의 일원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참여해 시신보존위생(임바밍, Embalming)을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에도 참여해 시신보존에 대한 장의 지도를 했다. 국가의 소중한 지도자들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참여해 개인적으로는 영광으로 생각한다."

- 시신보존위생이란 무엇인가?
"미국 장례서비스교육위원회와 몇몇 주의 행정법전에 나온 정의를 가지고 종합해서 설명한다면, '화학 약품을 이용해 인공적인 방법으로 고인의 신체 내부 및 외부를 위생적으로 소독하고 임시로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시신을 냉장 안치실에 모셨다가 입관을 하고 화장 또는 매장을 하게 되는데, 시신보존위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은, 시신으로부터 감염될 수 있는 각종 질병을 예방 혹은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1997년 감사원에서 보건복지부에 통보한 <감사결과처분요구서-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이행 실태> 자료를 보면 '시신으로부터 질병 전염 등의 우려가 있어 방부처리 등 시신처리 능력이 필요한 염습종사자에 대한 교육 훈련이나 자격 제도가 마련되지 아니하여 국민 보건상 위해 우려'가 있다고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염습종사자의 전문성 확보 방안을 강구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파상풍균이나 장티푸스균, 결핵균 등이 시신 속에서도 장기간 생존해 장의업 종사자 등에게 다수 전염된 사례가 있다."

- 직접 시신을 접촉하는 염습종사자나 유족, 조문객들의 보건 위생 외에 시신보존위생의 또 다른 이유가 있는가?
"타국에서 사망한 자국민의 시신을 항공기 등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운송하려면 질병의 확산과 전염을 막기 위해 당연히 시신보존위생을 해야 하고, 각종 사고로 집단 사망자가 발생하는 경우 보건 위생상의 위해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신의 임시 보존을 통해 개별적으로 쉽게 식별이 가능하게 해 유족에게 시신을 온전하게 인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유족이나 친지들이 고인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접견 장례의식'을 치를 경우 안전하고 보건위생적인 상태로 고인의 마지막 의례를 진행할 수 있게 해준다."

- 이야기 중에 '접견 장례의식'이란 말이 나왔는데, 외국영화에서 흔히 보는 관을 열어 놓고 조문객들이 고인을 직접 보면서 장례식을 하는 그런 것으로 이해했다, 맞는가?
"맞다. 조금 더 설명을 붙인다면, '접견 장례의식'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고인이 관 안에서 혹은 테이블 위에서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잠을 자는 듯한 자세로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유족과 문상객들은 고인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존경심과 사랑하는 마음, 명복을 비는 마음을 직접 고인에게 표현할 수 있다."

얼굴 보고 자연스럽게 보내기, 아직은 생소하지만

미국의 접견 장례의식 사진
▲ 접견 장례의식 미국의 접견 장례의식 사진
ⓒ 정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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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과 관련된 것은 워낙 문화의 차이가 커서 시신의 얼굴이 공개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아무런 거부감 없이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지난 해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 밖에는 안 계셨던 것 같다. 관 속에 주무시는 것처럼 누워계시던 그 모습... 많은 사람들이 인상적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가족의 죽음, 나의 죽음으로 오면 시신의 얼굴을 조문객들에게 공개하는 것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접견 장례의식'의 장점을 보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돌아가신 분의 얼굴을 직접 봄으로 인해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현실적으로 인지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심리적인 안정감와 평안함과 위로를 느끼게 되고, 떠나신 분의 마지막 얼굴을 추억의 사진처럼 우리들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아직 인식 부족으로 한국에서는 '접견 장례의식'을 진행해 본 적이 없다. 앞으로는 도입될 것으로 본다."

-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시신보존위생을 배우게 된 계기는?
"시신으로부터의 감염 우려에 대한 자료를 우연히 접하고 아무도 이 일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제대로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늦은 나이에 미국 샌안토니오대학 장례학과(San Antonio College, Mortuary Science)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 요즘 죽음, 죽음준비에 대한 관심이 높고 상조 관련 산업도 거대한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장례 관련 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처지에서 당부하고 싶은 말은, 시신을 돌볼 때에는 항상 고인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고 높은 윤리규범을 유지해야 한다. 더불어 장례서비스 관련 법과 규정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 시신보존위생사인 본인은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가?
"인생이 시작될 때, 즉 아기가 태어날 때 축하를 받는 것처럼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의 순간에 아름답게 작별하는 것이 소원이다. 당연히 '접견 장례의식'을 통해 남은 사람들이 내게 사랑과 존경을 표시해 주면 좋겠다.(웃음)"

인터뷰를 마친 후 정진구 교수(오른쪽)와 함께
▲ 인터뷰를 마치고 인터뷰를 마친 후 정진구 교수(오른쪽)와 함께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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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분야, 남들이 미처 접하지 못한 길을 찾아 맨 처음 떠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자신감에서 나오는 강함이 있는가 하면, 역시 같은 자신감에서 나오긴 했으나 부드러움과 배려도 있다.

정진구 교수는 후자였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분야의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그 길을 찾기란 더 어려워보이는데도 자신감을 내보였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인식은 달라질 것이라고.

그러면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드러웠다. 아니, 순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듯하다. 그것은 분명 자신감과 함께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처음 찾아 나선 사람이 가진,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내면의 힘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였다. 쓸데 없이 목에 힘주고, 목소리에 무게를 잡지 않아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당당함이었다.

인터뷰 내내 모든 질문에 성실히 답을 해주었으나 가족들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는 끝까지 말을 아꼈다. 쓸데 없는 질문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렵고 생소한 공부에 뛰어들어 여기 오기까지 겪었을 이런 저런 일들의 한 자락을 내비치는 것으로 보여 나는 두 번 다시 묻지 않았다.

죽음, 시신과 죽음 준비를 이야기하는 자리였지만, 거기에는 웃음과 유머와 낙관과 희망이 슬픔, 이별, 쓸쓸함 같은 것들과 섞여 잔잔하게 흘러다녔다.


태그:#정진구, #임바머, #임바밍, #시신보존위생, #죽음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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