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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의 눈 푸른 눈을 아시는지요

동백의 연푸른 열매를 보신 적이 있나요

그 민대가리 동자승의 푸르슴한 정수리 같은…

그러고 보니 꽃다지의 꽃이 진 다음

아기 동자승이 떼로 몰려 낭낭한 경(經)읽는 소리

그 목탁 치는 소리까지도 들었겠군요

마음의 경(經) 한 구절로 당신도 어느 새

큰 절 한 채를 짓고 있었음을 알았겠군요

 

그렇다면 불화로를 뒤집어쓰고 숯이 된

등신불(等身佛) 이야기도 들어 보셨나요

육보시 중에서도 그 살보시가 으뜸이라는데

등(燈)을 밝힌다면, 보시 중에서도 그 꽃 보시가 으뜸인

오늘 이 동백숲을 보고서야 문득 깨달았겠군요

 

한 세월 앞서

초당 선비가 갔던 길

뒷숲을 질러 백련사 법당까지 그 소롯길 걸어 보셨나요

생꽃으로 뚝뚝 모가지 채 지천으로 깔린 꽃송이들

 

- 송수권 시, 백련사 동백꽃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남도의 꽃봄이 펼쳐지고 있다. 남도 곳곳에서 쏟아지는 봄꽃소식을 감당하기 버겁다. 어디로 발길을 돌릴까 잠시 망설이다 강진 백련사로 간다. 시인 송수권이 노래한 '백련사 동백꽃'을 보러.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백련사 주변에는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붉디 붉은 동백꽃과 강진만의 푸른 바다, 그리고 천년 세월을 품은 사찰 백련사가 어우러져 아름다움이 한 경지를 이루는 곳이다.

 

백련사 동백꽃은 절 주차장에서부터 만난다. 백련사로 가는 길 여기저기가 온통 동백꽃이다. 절정은 절 주변에서 펼쳐진다. 겨우내 짙푸른 잎새가 매서운 바람을 이겨내고 그 사이사이에서 붉은 꽃잎을 터뜨렸다. 핏빛 같기도 하다.

 

짙푸른 잎새와 붉은 꽃잎, 샛노란 수술이 선명한 색상의 대비를 이룬다. 색깔만큼이나 강렬하고 정열적인 꽃이다. 그 꽃덩이를 찾아 나선 동박새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봄햇살을 가득 받은 동박새는 동백나무를 찾아 다니며 봄을 쪼아대고 있다.

 

붉은 동백꽃은 나무에만 달려있는 게 아니다. 붉은 꽃덩이들이 땅에 뚝뚝 떨어져 봄 햇살을 받고 있다. 붉은 꽃망울이 겨울부터 피고지고 반복하면서 기약 없이 뚝뚝 떨어져 버린 것들이다. 마치 목이 부러지듯 송이 채 떨어진 붉은 꽃망울이 슬프게도 보인다.

 

피고지고 또 피고지고 하면서 떨어진 꽃덩이는 계곡에도 흐드러져 있다. 계곡물에 떨어진 동백꽃이 물놀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다. 난생 처음 해보는 물놀이여서 멀미라도 한 걸까. 아니면 꽃구경을 온 사람들의 발걸음소리에 놀란 걸까.

 

동백꽃덩이는 이끼 낀 돌멩이를 힘겹게 부여잡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 그 모습이 못내 안타까워 떨어진 동백꽃을 몇 개 주워본다. 계곡에 흐드러진 꽃덩이들을 본 구경꾼들은 연신 탄성을 뱉어낸다.

 

나뭇가지는 물론 나뭇가지 아래에도 온통 동백물결이다. 나무에서 활짝 피어 싱그러운 동백꽃이 흐드러지고, 땅에 떨어진 꽃도 지천이다. 꽃이 피어있는 것과 떨어진 풍경을 한꺼번에 봤으니 올해엔 동백을 제대로 본 셈이다. 백련사에 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덧붙이는 글 | 백련사는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태그:#동백꽃, #백련사,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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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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