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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법륜스님의 법문을 못 올린 지 몇 달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인 일로 많이 바빴습니다. 법문을 다시 올려야지 하면서도 계속 바쁘다는 핑계가 저를 놓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다시 시작하면 꾸준히 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부담감이 올라오는 것은 그쪽 마음의 일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은 이쪽 마음의 일이라 여겨집니다. 단 한 명이라도 이 법문을 듣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해야겠지요. 

저는 남편이 아픈 6년간 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가게를 하면서 몇 년간은 시동생이 떠넘긴 빚을 갚았고, 이제 돈 좀 모으려니 남편이 아팠습니다. 변변한 전세로 옮기려던 계획을 접고 병원비로 썼습니다. 하지만 병이란 놈이 쉽게 물러나지 않으면서 시간이 갈수록 빚을 내지 않고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돈이 부족하다 보니 우선으로 남편 병원비를 하고 나머지를 가지고 거래처 물건 값을 주게 되었습니다. 12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거래처로부터 물건값 독촉을 받지 않았었는데 독촉 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친하지 않은 거래처는 먼저 결제 해주고 친한 거래처는 결제를 늦췄습니다. 제가 결제를 제일 늦춘 곳은 과일 공급을 해주는 '도담'이란 곳입니다.

그 거래처에 많이 밀릴 때는 1천만원을 넘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래처는 단 한번도 제게 독촉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루는 너무 미안해서 왜 독촉을 안 하느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여직원 하는 말이
"저희 사장님이 디딤돌한테는 돈이야기 하지 말래요. 디딤돌이 결재를 못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거라구요. 디딤돌때문에 회사 돈이 빵구날 정도가 되면 사장님이 말하래요. 사장님이 주신대요. 걱정하지 마세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믿는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 내가 인생을 적어도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너 내가 돈 떼먹으면 어쩌려구 그런 소릴 직원한테 하냐?"
"니가 남의 돈 떼먹을 성격은 되냐? 형(남편)이나 너나... 물건 값 걱정마라." 

제 자랑하는 것 같다구요? 당연히 자랑이죠. 제가 제 자랑 빼면 시체죠. 별로 자랑할 거리가 없기 때문에 자랑거리가 눈꼽만큼이라도 생기면 전 바로 자랑 들어갑니다. 네. 죄송합니다. 더 자랑하면 몰매 맞을 것 같은 삘이 지금 컴퓨터를 통해 팍팍 옵니다. 오늘 질문하신 분 이야기를 바로 들어볼까요. 이 분도 거래처에 빚이 있어 잠 못 이루시는 분이시네요.  

질문

사업을 하고 있는데 거래처에 빚이 많아졌습니다. 너무 괴로워 잠도 오지 않습니다. 빚을 안 갚겠다는 것은 아닌데, 조금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가진 것이 빚보다는 많아 집도 부동산에 내놓고 어떻게 해서든 갚아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인정사정없습니다. 십 년 정도 거래를 해온 거래처들도 매몰차게 대하니 마음의 상처가 깊어집니다. 앞으로도 사업을 계속 할 텐데 어떻게 하면 거래처와 의를 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남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는 죄책감이 큽니다. 

법륜스님 법문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
ⓒ 권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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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서 남의 돈을 전혀 갚을 길이 없는 사람도 있는데, 질문하신 분은 빚은 많이 졌지만 자산이 빚보다는 많아서 싹 팔아치우면 갚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네요. 그런데 그렇게 일시에 청산해버리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 사업을 계속 할 수가 없으니 조금 시간을 벌면서 더 유리한 방법을 찾고 싶다는 얘기지요?

우선은 빚쟁이들을 만나서 함께 의논해보는 게 좋겠지요. 내 재산이 이러이러하고 빚은 이러한데 조금만 시간을 주면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빚을 갚을 수 있겠다고 해 보세요. 그렇게 의논을 한 이후에는 상대가 하자는 대로 해보세요. 집을 넘겨주든지, 권리증을 넘겨주든지 몇 가지 방식이 있겠지요.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약속한 건 지키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욕심이 있어서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의 돈은 안 갚으려면 욕도 먹고, 따귀도 맞고, 수모를 각오해라

우리가 돈을 벌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남의 돈을 안 갚는 것도 돈을 버는 일이니 역시 힘이 많이 들겠지요? 시달림을 좀 받아야겠지요. 욕도 좀 얻어먹고 삿대질도 당하고 뺨따귀도 한 대씩 맞고. 그렇게 하면서 나중에 꼭 갚겠다고 사정을 해야지요. 즉 죽어도 빌린 지금 돈을 못 내놓겠다면 수모를 받으라는 거지요. 그런데 왜 수모를 면하려고 하나요? 돈 빌려준 사람 입장에서 보면 정말 성질날 일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그들이 욕을 하면 다 듣고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빌어야지요.  

경허스님의 역행이야기

경허 스님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지요. 조선 시대에는 승려들이 천민 계급에 속했어요. 어느 날 한 양반이 논두렁길을 걷다가 미끄러져서 신고 있던 짚신이 논에 빠졌어요. 그런데 그 신을 건지려면 버선도 벗고 바지도 걷고 물속에 발을 담가야 하잖아요. 이 양반이 조금 귀찮아하던 차에 저기 스님이 한 사람 오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이 중놈아, 내 신발이 저기 빠졌는데 좀 건져다오." 새파랗게 젊은 양반이 지나가던 늙은 경허 스님한테 그렇게 명령한 거예요. 그러자 경허 스님이 아주 공손하게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양반의 신발을 건져 가지고는 논 한가운데다 던져버렸어요.

그 양반이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 그래서 경허 스님의 멱살을 잡고는 길에서 두들겨 팼단 말이지요. 코피가 나고 얼굴이 막 터지고 그랬겠지요. 길 가던 다른 사람이 보니까 젊은 사람이 해도 너무 한 것 같아. 스님을 두들겨 패고 있는 양반을 말렸어요. 그런데 맞고 있던 경허 스님이 말리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 사람 싱겁기는. 왜 남의 일에 참견하고 그러시오. 당신 갈 길이나 가시오." 그러니 말리던 사람이 기가 차서 물었겠지요. "사람을 이렇게 무참히 패는데 그걸 어떻게 그냥 보고 지나가오?" 그러자 경허 스님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남의 신발을 논에다 던졌는데 이 정도 안 두들겨 맞고 어쩌겠소." 

그러니까 남의 신발을 논으로 던져버릴 때는 이미 두들겨 맞을 각오를 했다는 얘기지요. 그러니까 두들겨 맞는 건 억울한 일이 아니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말이에요. 그 자연스러운 일에 길 가던 사람이 관여하는 것은 싱거운 일이라는 말이지요.

남의 돈을 빌리고 안 갚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지사지로 내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게다가 재산이 없어서 돈을 못 갚는 것도 아니고, 돈이 있으면서도 안 갚는다고 생각해보세요. 화가 납니까, 안 납니까? 욕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매일매일 찾아와서 고함을 치는 것도 너무너무 당연한 거지요. 멱살잡이하는 것도 너무너무 당연한 거예요. 그러니까 얼른 재산을 처분해서 빚을 갚든지, 그게 아니면 수모를 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돈도 안갚고, 욕도 안 얻어먹을 수 있는 비법은 없다

지금 질문하신 분은 한 마디로 '돈도 안 갚고 욕도 안 얻어먹을 수 있는 그런 비법이 어디 없습니까?' 하고 묻고 있는 겁니다. 그런 비법은 없습니다. 만약 그런 비법이 있다고 말하는 곳이 있다면 십중팔구 비법을 알려주는 대신 돈을 요구할 겁니다. 그러니 요령 피우지 마시고 얼른 돈을 갚든지 안 갚으려면 욕을 좀 얻어먹든지 하십시오. 그러면 아마 잠은 잘 오실 겁니다. 

제가 드린 말씀 중에 아주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오히려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얘기들이지요.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을 거스르며 비상식적인 것을 바라기 때문에, 인생의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뭣하지만 경허스님 너무 재밌고, 귀엽지 않은가요? 헌데 당시 사람들로부터는 욕 많이 얻어드셨을 것 같네요. 지금이야 세월이 흘러서 그분을 높이 평가하지만 당시에는 "땡중"이라는 소릴 많이 들었을 겁니다. 하도 기이한 행동을 하셔서.^^  

봄을 맞이해서 거래처 장부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덜렁대서 혹시 외상금이 있을지 몰라 거래처와 장부대조를 해서 빼먹은 것이 있으면 송금하려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금액이 몇 백 만원이 됩니다. 생산자는 물건을 보냈는데 제가 놓치고 안 잡은 겁니다.   

생산자들이 처음에는 의아해 합니다. 한두 해 거래한 것도 아닌데 장부대조를 느닷없이 해보자고 하니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장부대조를 하는 이유는 생산자가 물건만 보내고 못 받는 경우가 생겨서 하자는 것이라고 말하니 고마워 합니다. 생산자들이 뼈빠지게 농사지어서 돈을 제대로 못받으면 정말 안 되잖습니까.

실제로 장부대조를 하면 제가 손해입니다. 왜냐면 제가 물건이 한꺼번에 오면 명세표를 못잡는 경우가 발생하거든요. 생산자들은 저처럼 오래된 거래처는 그냥 믿기 때문에 손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장부대조를 하고 생각지도 않게 몇 백을 송금하게 되니 한편으로는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생돈이 나간다는 생각이 솔직히 잠깐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몰라서 못갚을 뻔 한 돈도 다 갚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습니다. 이제 빈 통장에 돈 채울 일만 남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토회, #법륜스님, #빚, #무엇이든 물어라, #즉문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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