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김희진 감독

▲ 수학여행 김희진 감독 ⓒ 김희진


이 기사는 인터뷰 내용에 영화 <수학여행>에 대한 스포일러 글이 있습니다. 참조하십시오.

지인을 통해 2010년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졸업영화제 작품집을 구했을 때만 해도 큰 기대가 없었다. 국도예술관과 함께 독립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면서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여러 단편영화들과 영화과 학생들의 작품을 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상업적인 영화에 너무 눈높이가 맞추어져 있어서 이런 영화들 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큰 기대를 버리면서 단 한부분이라도 만족할 만한 구석이 있다면 상당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좋은 작품을 발견하게 되면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즐거움을 준 작품은 여태껏 2009년 한국영화 아카데미 25기 실습작품집에 담겨 있던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뿐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한 작품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 작품은 다름 아닌 2010년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졸업영화제에 포함되어 있는 김희진 감독의 <수학여행>이다. 이 작품은 도저히 나이 어린 졸업생이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한 미장센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이 걸작이나 아주 수작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단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여학생이 이 정도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김희진 감독이 <수학여행>이란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철저하게 한 컷에 인물, 조명, 동선, 배경 등을 신경 썼는지 알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졸업영화 <수학여행>은 정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작품이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덤덤하지만 밀도 있게 짧은 시간 안에 그려냈다는 점이다. <수학여행>은 중학생 병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병화는 수학여행에 가고 싶어 하지만 집안 형편이 여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을 수밖에 없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서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아르바이트에 여념이 없는 병화.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한때 부의 상징이었던 '나이키' 신발도 구입하고 전단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수학여행에 갈 단꿈에 빠져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전단지 아르바이트 사장은 보증금도 받지 않고 병화에게 일을 시켰다면서 첫 달부터 월급을 주지 못하겠다고 한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학생들의 노동력 착취가 그대로 나타난다. 더욱더 아이러니 한 것은 이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이 집에 평화를'이란 문구가 붙어 있는 점이다. 더욱더 정의롭고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할 문구가 붙어 있는 곳에서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자로 중학생 임금을 떼어 먹고 있다. 아이러니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당연히 병화는 수학여행에 참가할 수 없게 된다.

<수학여행>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이 작품에서 병화란 중학생이 겪는 현실은 마치 80년대 내가 겪었던 경험을 다시 보는 것 같은 아픔을 준다. 나 역시 집안 형편이 당시 넉넉지 못해 단칸방에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80년대 '나이키'는 정말 돈 있는 사람들만 신을 수 있는 부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신발이었다. 그래서 철없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께 나이키 신발을 사달라고 졸랐다. 물론 우리 집 형편에 프로스펙스는 고사하고 스펙스라도 신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80년대 중학생으로 보냈던 분들이라면 지금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이런 형편 때문에 나 역시 학비가 밀리기도 하고 수학여행 역시 쉽게 꿈꿀 수 없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 작품에 더욱더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병화란 학생의 현실성이 돋보이는 것은 깔끔하게 다듬어진 연출과 촬영 그리고 편집 등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더 극적인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인위적 연출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병화란 학생이 겪고 있는 현실을 사실적인 화면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중학생 병화가 어떤 마음인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놀라운 졸업작품을 만들어낸 김희진 감독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서 직접 인터뷰를 해보기로 했다. 이 인터뷰는 서면 인터뷰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수학여행>은 2010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 후보로 올랐다.

수학여행 스틸컷

▲ 수학여행 스틸컷 ⓒ 김희진


- 무비조이에 제상민 기자입니다. 우선 무비조이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중앙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했고, <수학여행>은 저의 졸업 영화입니다."

- <수학여행>이 졸업 작품이란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이 작품을 언제부터 준비했는지 궁금합니다. 기획 기간과 촬영 기간까지 합쳐서 총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까?
"졸업영화제 상영 일정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조금 급박한 상황에서 진행되었습니다. 5월에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고 7월 즈음 제작이 확정되면서 10월에 촬영을 들어갔습니다. 약 9회 차 정도 촬영을 했고 11월 말에 편집과 후반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영화가 필요로 하는 규모에 비해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짧았는데 여러 스태프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촬영이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 영화에 병화 학생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나이키를 사는 장면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92학번입니다. 저희 세대 때는 나이키가 정말 부자 친구들만 신는 신발이었습니다. 한때 부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2010년 졸업생이면 저하고는 상당한 나이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영화에 나이키 신발을 구입하는 장면을 넣으려고 생각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나이키가 그렇게 부의 상징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학 재학 중에도 학교 근처에 운동화 트럭이 자주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로 이미테이션 운동화들을 진열해 놓고 팔았는데 어린 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있는 듯 보였습니다. 실제로 학교 근처에 오던 트럭을 섭외해 찍은 장면이기도 합니다.

제가 청소년기를 보낸 동네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아이들 대부분 브랜드 제품에 대한 선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쉽게 가질 수가 없는 물건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 2명이 급식 하나를 신청해서 나눠먹고 남은 돈으로는 운동화를 사는 식이었는데 그 때문에 점심시간에 선생님들의 단속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명이 밥 하나를 나눠 먹고 있는 걸 단속하는 거죠. 아마 그때의 기억에서 나온 설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 작품에서 가장 부아가 치밀어 올랐던 장면은, '이 집에 평화를'이란 문구가 걸려 있는 전단지 영업소 사장이 병화 학생의 아르바이트비를 착취하는 장면이었는데요. 특히 병화 학생이 사장에게 절반만이라도 돈을 달라고 할 때도 계속해서 '이 집에 평화를'이란 문구가 화면에 비추어졌는데요. 이런 장면을 넣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촬영 장소를 섭외했을 때부터 그곳에 실제 걸려 있던 문구였는데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가게의 사장실, 작업장의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촬영 감독과 함께 미술을 점검하고 화면 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 집에 평화를'이라는 문구가 불러일으킬 아이러니를 짐작하고 그대로 가져간 경우입니다."

수학여행 스틸컷

▲ 수학여행 스틸컷 ⓒ 김희진


- 병화란 학생의 현실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의 한 단면 같아 보입니다. 학교에서조차도 가난한 학생들은 차별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혹시 이 영화 속에 병화 모습이 김희진 감독의 한 단면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는 저와 제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희 앞 세대와 비교한다면 무색하겠지만)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적의 우리는 가지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던 동시에 가질 수 없던 것 역시 너무나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중 하나가 선생님 혹은 사회의 호의였는데, 역시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병화가 바닷가로 가서 산 지 얼마 되지 않는 나이키 신발을 완전히 바닷물에 젖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장면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니면 그냥 별 다른 뜻 없이 연출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병화가 수학여행을 위해 준비했던 몇 가지의 것들이 모두 다 수포로 돌아가길 바랐습니다. 아카펠라 연습도 그렇고, 굳이 잠을 줄이면서 일했던 시간들도 그렇고, 새 운동화도 그렇습니다. 굳이 이런 식으로 성장을 강요하고 싶진 않았지만, 다 잃어 버린 다음에 괜찮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운동화가 다 젖었다며 웃는데, 잠시 동안은 '이게 뭘까...'라는 생각을 병화가 가지길 바랐습니다." 

- 이 작품에서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이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수학여행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 3명과 함께 바닷가에 놀러 간 것까지 좋았는데요. 마지막에 학생들에게 웃으라고 하면서 생태학습현장이란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습니다. 계속 웃으라고 하면서요. 어떻게 보면 속물적인데요. 이 작품에서 등장신이 얼마 되지 않지만 학교 선생님 캐릭터를 어떻게 잡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처음 선생님 캐릭터를 잡을 때, 이 선생님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지녔다기보다는 의무감을 지닌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쁜 사람으로 그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선생님 역시 한 개인으로서는 아이들과 같은 상황을 겪어 보지 못했을 수 있고 그래서 배려해 줄 수 없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는 태도이지만 왜 몰라주느냐고 욕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수학여행 스틸컷

▲ 수학여행 스틸컷 ⓒ 김희진


- 처음 병화 학생이 안대를 하고 나올 때 단순한 눈병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단순히 부족한 잠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이란 것을 알고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하지만 바닷가에 같이 놀러간 여학생이 생태학습현장 플래카드 사진을 찍을 때 벗으라고 하면서 처음으로 작품에서 안대를 벗습니다. 이후 끝 장면에서도 안대를 벗고 나옵니다. 안대를 쓰고 있는 병화 학생과 안대를 벗은 병화 학생. 과연 어떤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요.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병화가 주위의 반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지켜내려 했던 것, 하지만 결국 수학여행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이제는 필요 없게 되어 버린 것이 안대였습니다. 일상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런 것들을 털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병화에게 그 누군가가 선생님이나 여타 어른들이라기보다는, 아마도 비슷한 처지일 것임이 예상되는 예민이었으면 했습니다. 병화는 지나치게 심각해 보이지만, 예민은 그에 반해 지나치게 가벼운 태도로 '그거 벗어'라고 말해줍니다. 그것만으로 병화는 조금 괜찮아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끝 장면에 병화가 안대를 벗고 있는 모습에서, 어떤 특정 시기가 지났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이제는 필요 없어진 것에 관한 표현이구요."          

- 병화 학생이 마지막 장면에 나이키 신발을 털면서 쏟아져 나오는 모래를 보면서 웃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 역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역시 개인적인 기억에 관한 것이지만, 여름에 해수욕을 하고난 뒤 언젠지 모르게 계절이 지나 주머니에서 발견되는 모래가 주는 느낌을 가져온 것입니다. 병화에게는 '모래 한 줌 만큼의 추억이 남았다'라는 의미로 다가가길 바랐습니다."   

-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할건지요? 아니면 다른 계획을 잡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작품 활동을 계속한다면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지 알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사실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것은 이야기해야 해'라는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희진 전주국제영화제 무비조이 MOVIEJOY 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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