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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월3일) 계획대로 숙지원 나무들을 이사시켰다. 나무를 옮기는 일은 힘이 아닌 경험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 나무 옮기기 전, 옮겨야할 나무를 고르고, 나무가 옮겨 갈 장소를 잡고, 나무를 들어내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하는데, 그 과정은 조심성과 정성 없이 되는 일이 아니다.
   하우스 옆에 소나무는 금년에 옮긴 것들이다.
▲ 숙지원 전경 하우스 옆에 소나무는 금년에 옮긴 것들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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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와 오행, 동서남북에 어울리는 색의 꽃자리를 따질 필요는 없으나 그래도 옛 사람들의 경험은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조금씩 고려했다. 예를 들면, 옛 사람들은 뱀이 앵두나무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여 우물가에 앵두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 뱀이 출몰하는 습한 지역에는 앵두나무를 심기도 한다.

또 마당 가운데에는 크게 자랄 나무나 감나무 등을 심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이치로 봐서 틀리지 않다고 본다. 큰 나무는 그늘을 만들고 감나무는 아이들을 유혹하여 잘못하면 아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흉사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마당 가운데 큰 나무는 심지 않았다.

  아내는 여기 저기에 작은 꽃밭을 만들었다.
▲ 아내가 가꾸는 꽃밭의 일부 아내는 여기 저기에 작은 꽃밭을 만들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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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후와 토질을 고려해서 숙지원에서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 나무를 주로 골랐다. 숙지원은 추운 곳이다. 광주와 직선으로 10km남짓밖에 안 됐음에도 산중이라 그런지 지난 3월 말까지도 살얼음이 얼었었다. 그렇다보니 광주에서 그런대로 잘 자라는 비파, 꽃치자, 돈나무, 계량 석류는 겨울을 나면서 얼어 죽었다. 백목련은 꽃봉오리가 막 터지려는 순간에 추위를 만나면, 죽고만다. 올해도 목련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꽃을 기대하지 않고 여름 그늘만 봐야할 것 같다.

그럼에도 유실수의 종류는 다양하게 심었다. 봄과 여름에 피는 꽃이 있고 가을 하늘을 반기는 꽃이 있다. 또 키가 큰 나무가 있으면 작은 나무도 있다. 여름 과일을 먹을 수 있는 나무도 있고 가을을 물들이는 과일도 있다. 때문에 그런 꽃과 나무의 성질을 고려하여 사계절을 즐길 수 있도록 심는 일이 중요하다. 숙지원에는 늦은 봄엔 보리수와 앵두를 맛보고 초여름에는 자두, 여름에는 오디, 가을에는 감과 사과, 배, 석류, 대추를 볼 수 있도록 심었다. 그동안 너무 자라 서로 가까워진 나무들은 솎아 옮기는 작업을 했다.

살아나는 봄
▲ 꽃잔디 살아나는 봄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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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는 나의 원칙 중 하나가 가용예산을 최소화한다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비싼 조경수를 구입하지 않은 이유는 키우는 재미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초리 같은 묘목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기다림이면서 즐거운 일 중 하나다. 나무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의 보람은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또 비싼 조경수를 심을 경우 관리도 문제지만, 잘못하면 과시로 보여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하에 죽은 나무를 정리하고 덩치가 커진 나무를 솎아 옮겼다. 모두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이제 대강 마무리가 된 것 같다.

오늘(4일) 아내는 꽃을 심고 나는 야콘을 심을 이랑에 멀칭을 했다. 비닐 멀칭을 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풀 때문이다. "돌아서면 풀"이라는 말처럼 여름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다. 제초제가 나오기 전에는 사람이 풀을 매주었지만 제초기가 나온 후 풀을 잡는 수고는 많이 덜어졌다고 본다. 그러나 알려진 대로 제초제는 땅을 죽인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나온 방식이 비닐 멀칭방법이 아닌가 한다.

    풀을 잡기 위한 고육책일 수 있다.
▲ 비닐 멀칭한 밭의 일부 풀을 잡기 위한 고육책일 수 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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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칭을 한다고 풀을 완전히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풀들도 진화된 것인지, 작물의 뿌리를 감고 비닐을 뚫고 나오는 경우도 많고, 멀칭해 놓은 비닐 안에서도 자라 비닐을 떠올리는 묘기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나 풀이 자라지 않는 땅은 죽은 땅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어쨌거나 조금은 김매는 수고를 덜기 위해 멀칭을 하는 것인데 금년에는 또 어떤 풀과 다투어야할지 걱정이다.

아내는 상자에 담아 싹을 틔운 모종을 옮기고 꽃씨를 뿌렸다. 세상에는 심지 않아도 자라는 야생화도 많지만 사람이 심어 기르는 꽃도 많다. 나무의 자리를 옮기는 것이 힘들 듯 그런 꽃의 종류끼리 모아주거나 모종을 옮기고 씨를 뿌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모종은 옮기는 것도 어렵지만 물을 주는 일도 세심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꽃을 심는 아내를 보면서 정원 가꾸기도 자연의 모습을 사람의 시각에 맞추는 일이라는 점에서 예술이면서 정치적인 행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정원은 사람의 솜씨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꽃과 나무를 어디에 심느냐에 따라 정원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나를 위한 일이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별한 감동보다 여유와 평화를 느끼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또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욕심을 버리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일이다. 땀 흘리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저 서두르면 안 되고, 처음부터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도 금물이다. 장편 소설을 쓰는 작업이요, 마라톤을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할 것이다.

  멋대로 노는 모습을 잡았는데 색상이 좀 특이하게 생겼다.
▲ 웅덩이 속의 개구리 멋대로 노는 모습을 잡았는데 색상이 좀 특이하게 생겼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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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간을 내 숙지원 주변 산에 올라 전망을 감상하며 웅덩이에서 노는 개구리(?)의  모습도 보고 이름 모를 꽃도 감상했다. 얼레지로 짐작하고 사진을 찍어 집에 와서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얼레지가 아닌 것 같다. 사진을 보고 아시는 분은 알려주셨으면 고맙겠다.

   키는 10cm 이내로 작으면서 귀여운 꽃이다.
▲ 무슨 꽃? 키는 10cm 이내로 작으면서 귀여운 꽃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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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숙지원은 완성된 정원이 아니다. 아직도 숙지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그러나 결코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등의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기에 실패는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몸은 지쳐도 이런 저런 일들을 잊을 수 있어 좋았던 하루였다. 인간의 희로애락도 자연의 흐름 속에서 빚어진 아주 작은 사건일 뿐인 듯하다. 그러나 운명이라고 덮어버리기에는 석연찮은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숙지원을 벗어나니 다시 머리가 아프다.

꽃피는 4월이다.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도 각자의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숙지원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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