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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밤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는 해군 초계함 '천안함'을 해안에서 해병대원이 열영상관측장비(TOD)로 촬영한 모습(오른쪽 검은 물체). 국방부측은 '천안함'의 함미부분은 이미 떨어져 나간 상태이며, 선수와 승조원들의 모습이 촬영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26일 밤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는 해군 초계함 '천안함'을 해안에서 해병대원이 열영상관측장비(TOD)로 촬영한 모습(오른쪽 검은 물체). 국방부측은 '천안함'의 함미부분은 이미 떨어져 나간 상태이며, 선수와 승조원들의 모습이 촬영되었다고 설명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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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5월 30일, 백령도 서북방 40Km 북한 측 군사 수역에서 인천선적 저인망어선 제86 우성호(100톤급, 아래 우성호)가 북한 경비정의 총격을 받고 피랍되는 일이 발생했다.

사고 당시 선장 김부곤씨 등 선원 8명이 타고 있었던 우성호는 북한경비정의 총격 과정에서 2명이 사망하고 생존 선원들과 선박은 북한 당국에 나포됐다.

우성호 선원 송환 문제는 그 해 내내 남북한 당국 간에 첨예한 쟁점사항으로 대두됐으며, 생존 선원 5명과 사망한 선원 3명(1명은 억류과정에서 병사)의 유해는 7개월 만인  1995년 12월 27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우성호 피랍 사건 직후 국방부는 "우성호와 해경 간의 교신내용을 분석한 결과 우성호는 항법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침반에 의존·항해를 해왔다"며 "그러나 이 나침반마저 고장이나 항로를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드러난 사고 전말은 국방부의 발표와는 사뭇 달랐다. 당시 해경이 공개한 경찰 전보용지에는 우성호와 우성호의 항로를 안내했던 해군 함정 간의 교신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교신기록에 따르면 당시 해군 함정은 우성호의 귀항 예정항로상을 항해하던 다른 상선 (한국선적 4000톤급 챌린저호)을 우성호로 오인하고 "현재 코스를 75도로 잡아라"고 알린 후 "그대로 코스를 잡고 항해하면 된다"고 지시, 결국 우성호가 북한 해역으로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당시 우성호의 항로를 잘못 지시한 해군 함정이 바로 천안함이다. 결국 당시 해경이 공개한 우성호와 천안함 사이의 통신기록은 사건을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국방부장관 "정보 거의 100% 오픈" 

천안함 침몰사고 대책마련을 위해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은 약하다"고 답변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고 대책마련을 위해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은 약하다"고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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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일 국방부 기자실을 찾은 김태영 국방장관은 "우리나라처럼 정보가 거의 100% 오픈되고 있는 나라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기사를 쓰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오폭(한미 독수리 훈련에 참가했던 아군 함정에 의해 오폭 당했다는 언론 보도를 지칭)을했다는 얘기는 상상력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김 장관을 수행한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도 이 자리에서 "지금 상황은 일종의 군사작전이다. 군사작전을 스포츠 중계하듯이 낱낱이 다 까발릴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언론의 시각은 이와는 크게 다르다. 천안함 침몰 사고를 지켜보고 있는 국민의 관심을 스포츠 경기를 지켜보는 관객의 태도와 동일시하는 군 당국의 태도 자체가 문제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이 관리의 발언 직후 한 기자는 "군 당국이 현재의 상황을 군사 작전으로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기자도 "군은 관객이 아무도 없는 사각의 링에서 경기를 하고 싶겠지만, 이 사안의 경우엔 이미 온 국민이 객석에 앉아 경기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교신기록 공개가 절실한 이유

지난 26일 밤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하는 순간이 구조에 나선 해경에 의해 촬영되었다. 침몰 중인 '천안함' 선수에 적힌 초계함 고유번호 '772'의 일부가 보이고 있다.
 지난 26일 밤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하는 순간이 구조에 나선 해경에 의해 촬영되었다. 침몰 중인 '천안함' 선수에 적힌 초계함 고유번호 '772'의 일부가 보이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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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고 있는 추측보도와 난무하는 각종 유언비어 논란도 결국은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감추려 급급 하는 군 당국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군이 침몰 사고와 관련해 비밀주의로 일관하려 한다는 정황은 이미 여러 곳에서 포착됐다. 구조과정에서 생존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물론, 현재까지 생존자들과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차단하고 있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오락가락하는 사고 시점에 대해서도 군 당국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어느 정도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사고 발생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사고의 성격과 사후 대처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에서 정확한 사고시점 확인은 필수적이다.

또 천안함은 평소 다니지 않던 항로로 이동하다 침몰했고, 그 직후 인근의 속초함이 76㎜ 함포를 미상의 표적에 대해 5분간이나 사격했기 때문에 과연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줄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교신기록 뿐이다.

때문에 사고 전후 천안함과 2함대사령부, 천안함과 인근 함정 사이에 오간 통신기록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는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데 큰 단초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일부에서는 군사기밀 유출을 걱정하는 군 당국의 고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한 예비역 해군 장교는 "특정 상황에 대처하는 절차 같은 것들이 모두 공개되면 적군에게 전력을 노출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는 군사비밀에 속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무수한 의혹과 온갖 억측을 불식시킬 수 있는 열쇠는 바로 군 당국이 쥐고 있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된 가능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야말로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막는 첫걸음이다. 지금 이 순간 군 당국이 가장 걱정해야하는 것은 부분적인 군사기밀의 누출이 아니라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태그:#초계함 침몰, #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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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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