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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떨이여 떨이, 단돈 만원에 이거 다 가져가."

"어떻게 장날마다 비가 오나 그래, 살풀이라도 한번 하든지 해야지."

 

여주 5일장은 참 이상도 하다. 그러고 보니 5일장을 취재하면서 늘 느낀 것이지만, 하루도 맑은 날이 없다. 아마 맑은 날을 두세 달째 보지 못한 것 같다. 계속 비가 오거나 눈이 오고, 그것도 아니면 그 전날 많은 눈이 내려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5일장인데

 

여주 5일장은 참 볼 것이 많다. 비가 온다고 사람들이 조금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몰려드는 곳이다. 5일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봄철이 되니 각종 묘목은 물론, 청보리 싹까지 나왔다. 청보리 싹을 찍고 있는데, 한 분이 이게 무엇이냐고 물으신다.

 

"이거 보리 싹인데요."

"아니, 보리 싹도 먹어요?"

"그럼요, 살짝 데쳐서 밥 비벼먹으면 정말 좋아요."

"처음 듣는 이야기네."

"그 청보리 싹을 먹으면 회춘이 된대요. 아저씨는 절대 주지 마세요."

"왜? 젊어지면 좋지."

"큰일 난다니까요. 저녁마다 집에 안 들어오면 어쩌시려고."

 

그래서 장이 떠나갈 듯 한바탕 웃어댄다. 5일장은 그래서 재미가 있고, 따듯한 정이 넘친다. 늘 만나는 사람들이라 더욱 그러하다. 낯이 익은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한번쯤 들여다보고 아는 체라도 하는 것이 5일장의 인심이다.

 

 

30년 가축장 토박이의 이야기

 

여주장 끄트머리에 있는 가축장. 많을 때는 10여명이 난전을 편다.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서 너 명의 사람들이, 가축이 비라도 맞을세라 천막을 치고 있다. 여주장에서만 30년 째 가축을 팔고 있다는 김영학씨(남, 69세. 여주군 흥천면). 짐승을 자식같이 대하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부부가 늘 장에 같이 나와 장사를 하신단다. 연세를 물으니 68세라고 하시는데, 아주머니는 69세라고 하신다. 당신 나이도 모르느냐는 핀잔과 함께.

 

"여주장도 많이 달라졌죠?"

"그럼요.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축을 팔고는 했는데, 요즈음은 거의 다 사라졌어요."

"오늘은 애들이 얼마 없네요."

"비도 오고 해서 몇 녀석만 데려왔는데, 매장 이렇게 비가오니 큰일이네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혀를 차자, 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들며 달려간다. 아마 매일 보는 얼굴이라 반가운가 보다. 저렇게 반갑게 쫓아다니는 녀석들이 낯선 곳으로 팔려간다는 것이 늘 마음이 아프단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가축을 파는 사람들을 나쁘게 이야기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말하면 안돼요. 가축을 파는 사람들은 평소 이 녀석들을 자식같이 생각해요. 여기서 가축을 잡는 것도 아니고 잘 키워서 파는 것뿐인데, 흡사 자신들만 동물을 사랑하는 것처럼 떠들어대면 되나요."         

"우리 집에 가면 농장을 하고 있어요. 개들도 수십 마리 씩 있고, 닭이며 토끼 등 엄청난 가축을 먹이고 있는데, 그 사료 값만 해도 엄청 들어요. 30년간 이 장사를 하지만, 내 손으로는 아직 한 마리의 짐승도 잡아 본 적이 없어요."

 

마음이 많이 아프셨다고 하신다. 무조건 가축을 판다고해서 다 죄인 취급을 하는데, 그런 사람들보다 정작 몇 배 더 가축을 끔찍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루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장날마다 비가 오네요."

 

 

5일장을 나가 취재를 하면서 자주 얼굴들을 보는 사람들이라, 지나치면서 아는 체도 해본다. 그래서 마음에 맺힌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하는 사이가 되었나 보다. 좀 그칠 것 같은 비가 또 내리기 시작한다. 오늘 장은 아무래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비가 오는 장을 찾아 나서는 것은, 5일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 때문이란다.


태그:#5일장, #여주장, #가축장, #비, #김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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