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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근흥면에 거주하는 A씨는 지난 2007년 11월 근흥면으로 전입신고를 하고 핑크빛 미래를 설계했다. 하지만, 전입신고한 지 불과 한달 여 만에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사고를 겪으며 핑크빛 미래는 순식간에 검은 재앙의 그림자로 물들어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대손손 어업을 하며 태안에 뼈를 묻고 살아오다 기름피해를 입은 원주민들과는 달리 갓 전입 온 터라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는 것.

하여 막막해진 생계에 어려움을 겪던 태안유류피해민들에게 정부가 지급했던 생계비 신청도 마다했다. 어렵게 잡은 터에 짓고 있던 보금자리 공사가 중지되는 등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피해보상 신청도 하지 않은 채 쥐죽은 듯 조용한 전원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A씨는 근흥면에 전입신고 후 곧바로 면 예비군중대로 달려가 예비군 소대장을 신청하는 등 비록 타향살이지만 제2의 고향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빨리 정착하기 위한 분주한 발걸음을 옮겼다.

예비군 소대장에게 웬 민방위 통지서?

그러나, A씨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A씨와 관련된 주민행정을 책임지는 면사무소의 어이없는 행정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지난해 6월경 면사무소로부터 황당한 통지서 한 통을 받았다. 집 우편함에 '민방위 통지서'가 버젓이 꽂혀있는 게 아닌가. 이름, 주소 분명히 A씨 것이 맞았다.

'예비군 훈련도 안 끝났는데 민방위 통지서라니?'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A씨는 다음날 근흥면에 전화를 걸어 민방위 통지서 발부여부를 확인했다. 면사무소 관계자의 말 "A씨의 것이 맞다"는 것이었다. 황당한 A씨는 다시 따져 물었다. "지금 면대 향방소대장직을 맡고 있고, 예비군훈련도 끝나지 않았는데 민방위 통지서가 발부되는 게 이치에 맞느냐"고 묻자 담당자는 다시 확인해 보겠다며 한동안 침묵했다.

확인이 끝나고 담당자가 하는 말을 들은 A씨는 어이가 없었다. 담당자는 "행정착오인 거 같네요. 안 가도 됩니다" 이것으로 끝이었다. A씨도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지'하며 더 이상 따져 묻지 않고 그것으로 끝내려 했다. 하지만, 공무원이 행정을 처리하면서 민원인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너무도 쉽게 쓰는 '행정착오'라는 말을 A씨는 최근에 또 다시 들어야했다.

신고한 적도 없는 맨손어업 면허세 발부, 신청서는 분실

신고한 적도 없는 맨손어업 허가번호가 찍힌 채 A씨에게 발부된 면허세 납입고지서.
▲ 버젓이 허가번호까지 찍힌 채 발부됐지만... 신고한 적도 없는 맨손어업 허가번호가 찍힌 채 A씨에게 발부된 면허세 납입고지서.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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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 통지서 오류 발급 이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달 19일 면허세 납입고지서 한 장이 날아들었다. 그것도 '4종 수산업법에 의한 맨손어업 근흥면 제2008-7XX호'라는 면허번호가 버젓이 찍힌 채.

'맨손어업 면허세?' A씨는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세금고지서를 들고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본인이 신고도 하지 않은 맨손어업 허가와 관련해 면허번호까지 부여돼 있고, 세금까지 내라고 납세고지서까지 받았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A씨는 너무나도 황당해 지난 3일경 사실확인을 위해 근흥면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신고한 적도 없는 맨손어업 면허와 관련해 해명을 요청하자 면 담당자는 전산상에 등록돼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해 왔다.

하여 A씨는 다시 "본인은 신청을 한 사실이 없는데 전산상에 등록돼 있다면 누군가가 대리 신청했을 것이고 신청서가 있을 것 아니냐"고 따져 물은 뒤 신청서 원본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틀 뒤 면사무소에서 들려온 답변은 도대체 공무원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황당한 대답뿐이었다.

면사무소 관계자는 "직원 3명을 동원해서 세 번씩이나 찾아봤는데 A씨 것만 없네요.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라고 말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 게다가 지난 8일에는 직접 면사무소를 방문해 사실 확인에 들어가려 했지만 "담당자도 바뀌었고,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A씨가 원하는대로 처리해 주겠다. 원하면 맨손어업 면허도 취소해 주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A씨는 관공서의 무책임한 태도에 흥분해 "면허세 발부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누가 무슨 의도로 신고를 했는지 꼭 확인하고 싶으니 반드시 신고 원본 서류를 찾아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더군다나 A씨가 우려하는 것은 누군가가 나쁜 의도로 대리 신청을 한 것이라면 2, 3차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고, 특히 A씨의 명의로 된 맨손어업 신고일자가 한참 피해민들에게 생계비가 지급될 당시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염려가 된 것이다.

이번에 발부된 A씨의 면허세는 2008년도 분이다? 행정착오의 끝은 어디

A씨가 지난달 면사무소로부터 받은 면허세 납부고지서(오른쪽)와 대책마련도, 이의제기 후 연락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고지한 납부 독촉장
▲ 아무 대책도 없이 발부한 납입 독촉장 A씨가 지난달 면사무소로부터 받은 면허세 납부고지서(오른쪽)와 대책마련도, 이의제기 후 연락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고지한 납부 독촉장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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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보름의 시간이 지났지만 면사무소는 감감무소식이다. 면사무소의 연락만 기다릴 수 없었던 A씨는 A씨의 명의로 신청된 혹시 모를 보상비 청구사례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태안군 유류대책과를 찾았다.

확인결과 다행히 A씨의 명의로 신청된 피해보상비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이곳에서 근흥면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던 도중 더 황당한 사실을 접하게 된다.

A씨에게 이번에 발부된 면허세가 2008년도 고지서라는 것. 원칙적으로는 2008년 2월에 신고가 되었다면 면허필증 발급 후 당해연도에 부과되는 게 맞는데 2년이 넘어서 2008년도분을 부과한 것이다. 이로 인해 A씨는 2009년도, 2010년도분의 면허세를 또 납부해야하는 실정으로 세금 소급 발부에 대해 또다시 분을 삭히지 못했다.

통화를 하던 유류대책과 관계자도 "만약에 신고 당시인 2008년도에 면허세를 부과했었다면 그 때 당시에 지금과 같은 문제를 따져봤을 요량이었지만 면허세를 낸 근거도 부과한 적도 없으니 이는 전적으로 면사무소의 책임이다"라며 "당시에 면사무소가 면허세를 부과했고 민원인이 낸 근거만 있어도 면사무소는 어느 정도의 면책사유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 조차도 발급한 적이 없고 신청서류까지 분실했으니 책임을 면치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A씨는 "면허세 고지서를 받고 황당하긴 했지만 신청인이 확인되고 무슨 의도로 신청을 한 건지 알아보려고만 했는데, 서류분실에 세금 소급 발부에 전화한통 없는 무책임한 태도가 괘씸해 끝까지 추적해 볼 작정"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허술한 관공서의 행정으로 인해 더 이상 피해를 보는 주민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대리신청한 특정인의 서류만 분실한 것과 관련해 당시 한꺼번에 많은 주민들이 몰려들어 신청서를 작성하는 바람에 일어난 행정착오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며, 의혹만 증폭될 뿐이다.

또, 담당자가 바뀌어서 당시 상황을 잘 모른다는 핑계는 보존기한이 정해져 있는 민원인의 서류를 신주단지 모시듯 잘 보관했다면 이와 같이 문제가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잘못을 '행정착오'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무마하려는 면사무소의 태도에 민원인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태안군, #근흥면, #맨손어업, #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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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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