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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 선생님 생가에서 선생님을 책을 들고서...
 정채봉 선생님 생가에서 선생님을 책을 들고서...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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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허리띠 풀어서 던져 놓은 것 같은 길

우리 할아버지의 허리띠 풀어서 던져 놓은 것 같은 편하고도 편하게 구불구불한 산모롱이 길을 가다 보면 설핏 스쳐 오는 바람에 갯가 냄새가 묻어 든다. 우리 고향은 바로 여기서 부터다. 남녘 땅 순천에서 여수 쪽으로 8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 해룡면소재지에서 충무사라는 오래된 이정비를 따라 10여 리 정도 내려가다 보면 내 고향 신성리의 갯바람을 만난다. - 정채봉의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중

동화작가로 유명한 정채봉 선생님의 고향은 순천 해룡면 신성리다. 선생님의 유고집 <스무 살 어머니> 글 속에서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신성리 바닷가 고향이야기가 풀어져 나온다. 선생님의 동화 <초승달과 밤배>에서는 주인공 '난나'를 통해 충무초등학교와 신성리 마을을 아름답지만 슬픈 이야기로 그려냈다.

그 곳을 찾아 나섰다. 신성포 가는 길, 할아버지 허리띠를 풀어서 던져 놓은 것 같은 길이라는데…. 시내버스를 타고 해룡면소재지로 향한다. 국도 17호선과 지방도 863호 선이 만나는 월전 사거리에서 내렸다. 면소재지 쪽으로는 파출소와 농협이 보이고, 길 건너로 농산물도매시장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충무사 6㎞'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보인다. 충무사(忠武祠)는 신성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 사당이다.

해룡면소재지에서 신성리까지 이어지는 '정채봉길'. 그길을 걸어가다보면 분홍색 시내버스를 만나고, 노란 통학버스도 만난다.
 해룡면소재지에서 신성리까지 이어지는 '정채봉길'. 그길을 걸어가다보면 분홍색 시내버스를 만나고, 노란 통학버스도 만난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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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따라간다. 도로에는 커다란 트럭들이 다닌다. 도로 여기저기는 도로공사 등으로 어수선하다. 200m 정도 걸으니 삼거리가 나온다. 광양방면으로 길을 잡고서 철길 아래로 지나가면 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전봇대에 '정채봉길'이라는 작은 팻말이 붙었다. 여기서부터 '정채봉길'이 시작됨을 알려준다.

신성리의 봄은 서둘러 왔지만

지방도를 벗어난 길은 순식간에 한적한 길로 바뀌었다. 시골로 들어가는 차량이 거의 없다. 잠깐 동안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마음이 편해진다. 대법마을을 지나고 고갯마루로 올라서더니 구불거리는 포장도로가 모퉁이로 돌아간다. 길옆으로 개불알풀이 환하게 방긋거리고, 서둘러 나온 제비꽃이 바들바들 떨고 있다. 가끔 만나는 커다란 산자고 꽃이 화사하다.

길가에 핀 꽃들. 산자고, 제비꽃,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까지...
 길가에 핀 꽃들. 산자고, 제비꽃,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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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길을 걸어서 신성리로 가는 길. 포장도로지만 한적한 아름다움이 있다.
 정채봉길을 걸어서 신성리로 가는 길. 포장도로지만 한적한 아름다움이 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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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한적하다. 오고가는 차들은 가끔.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도 지나가고, 버스정류장에는 일보러 나가는 할머니는 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길은 마을을 따라 이어진다. 선월마을, 통천마을, 몰랑마을을 지난다. 길가로 매화가 한창이다. 하얗게 흐드러지게 핀 매화, 이른 봄에 피면서도 요란하지 않다. 그래서 사군자의 하나로 사랑을 받았는가 보다. 길은 여전히 구불거리며 걷는다.

길가로 조금 붉은 빛이 도는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아니 활짝 피어서 꽃잎이 날리는 나무도 있다. 매화나무와 비슷한데? 다가가서 보니 벌써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신성리의 봄은 서둘러 온다. 벚꽃 날리는 것도 보고 싶은데, 아직은 조금 이르다.

아, 바람이 부는 날은 벚꽃이 흡사 눈송이처럼 날렸었다. 우리는 별일이 없는데도 벚꽃을 맞으려고 괜히 달려 다녔었고 동네 개들 또한 어린 우리들을 쫓아다녔었다. 어찌나 벚꽃잎이 많이 떨어지는지 아주머니가 이고 가는 조개 바구니는 꽃바구니처럼 되었고 아저씨가 지고 가는 두엄 바지게도 꽃바지게인 양 하였었다. - 정채봉의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중

길은 부두럽게 구불거리고, 길가에는 매화가 활짝 피었다.
 길은 부두럽게 구불거리고, 길가에는 매화가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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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가 된 충무초등학교. 애들이 떠난 학교에 산수유가 피었다.
 폐교가 된 충무초등학교. 애들이 떠난 학교에 산수유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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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초등학교가 보인다. 정채봉 선생님이 다녔었고, <초승달과 밤배>에서 '난나'가 다녔던 학교다. 학교로 들어서니 교문은 넘어지고, 학교는 폐교가 되었다. 교문 옆을 지키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은 당당함을 잃었다.

학생들은 떠났다. 애들은 노란 통학버스를 타고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로 다닌다. 텅 빈 운동장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있는 건물은 창문이 뜯기고 페인트는 색이 바랜지 오래 되었다. 애들의 재잘거림과 함께했을 노란 산수유 꽃이 쓸쓸한 봄을 맞고 있다.

어린 시절 추억은 무너져 내리고...

길은 구불거리며 내려선다. 정재봉 선생님의 고향인 신성리 마을이다. 마을은 크다. 한때 포구로써 배들이 드나들던 큰 마을이었다. 지금은 매립이 되어 커다란 공장이 가로 막고 있다. 신성리 마을로 들어서면서 '정채봉길'은 끝난다. 그런데 정채봉 선생님의 생가는 찾지 못했다. 두리번거리다가 길가 슈퍼 평상에 앉아계시는 아저씨께 길을 물었다.

"정채봉 선생님 생가 터가 어디예요?"
"거기 뭐 하러가. 볼 것도 없는 디."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말들 받는다. 가져간 책을 보여주면서

"책 속에 나온 곳이라서 가보고 싶어서요."
"저기 마을회관 뒤 대나무 숲 아래에 있는 디, 다 쓰러져서 못쓰게 되어 부렀어."

평상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가 일어서서 길을 가르쳐 준다.

정채봉 생가. 대나무 숲 아래 파란 대문이다.
 정채봉 생가. 대나무 숲 아래 파란 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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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 선생님 생가. 무너져 내린 처마가 마음이 아프다.
 정채봉 선생님 생가. 무너져 내린 처마가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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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돌아가 마을회관 뒷골목으로 들어선다. 대나무 숲을 따라 난 담장으로 파란대문이 있다. 문이 닫혔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어! 잘 못 들어왔나." 함석으로 된 처마는 녹이 슬다가 지쳐서 무너져 내렸다. 마루는 먼지가 가득하고 사람이 앉았던 흔적은 까마득하다. 마당 텃밭에는 옥수수 대가 멀건이 서있을 뿐이다.

집에는 할머니가 군불을 때고 있었다. 부엌 문설주에 기대서 있는데 해송 타는 냄새가 자구 나한테로만 몰려들었다. 그때 기침을 하면서 눈을 비비며 서 있는 내 앞에 막연히 어머니의 모습이 다가오다가는 사라졌다. 해송 타는 연기와 함께. - 정채봉의 <스무 살 어머니> 중에서

선생님의 분신이었던 '난나'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선장의 꿈을 키워왔던 집은 이제 폐가로 남았다. 무너져 내린 처마를 보면서 마음마저 무너져 내린다. 마루에 앉아 책을 읽으며 선생님의 흔적을 찾으려고 했는데…. 잠시 쉴 곳 없이 마당에 서서 한참을 바라본다.

"다른 데는 없는 것도 만드는 디"

아픈 마음만 가지고 되돌아 나오니 슈퍼 평상에는 아저씨가 아직도 앉아 계신다.

"안내 표지판도 없고 아무것도 없네요. 생가가 너무 방치됐네요."
"나가 이장할 때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해도 안 돼."

아저씨는 몇 년 전 생가복원을 추진했던 때에 마을이장(이정천)을 했다고 한다. 생가복원을 해보려고 여러 방면으로 찾아다니면서 노력을 했는데 되지 않았다면서, 시에 서운한 말들을 늘어놓는다.

정채봉 선생님 생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로 방치되었다.
 정채봉 선생님 생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로 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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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예산까지 확보하고도 땅을 매입을 못해 결국 저렇게 돼 버렸어. 저기가 대나무밭, 집터, 밭, 이렇게 세필지로 돼있는 디, 땅주인이 미국 살아. 근데 집터만 산다고 하니 팔겠어. 저거 매입하는데 얼마나 들겠어. 시골 땅이…. 근디도 안 해. 저기 사서 집을 손 좀 보고, 텃밭을 주차장 만들고 동상 하나 세워 놓으면 얼마나 좋아. 서울에 사모님도 살아계시니 유품 좀 기증 받고 하면…."

시에서는 순천만에 김승옥 선생님과 통합해서 문학관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나서는 생가복원사업은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계속 말을 이어간다.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사람집이 저렇게 돼 부렀는디…. 통영에서도 오고, 부산에서도 학생들이 관광버스로 찾아오는데, 가서 보고 다들 그래. '다른 데는 없는 것도 만드는데….' 여기는 있는 것도 저 모양이여. 여기저기 알려서 제발 되게 해줘."

꿈을 키웠던 신성리 바다는 그리움만 남기고

신성리는 임진왜란 최후의 격전지로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축성했다는 왜성이 남아있고, 이순신 장군 사당인 충무사가 있다. 전 마을이장 이정천씨는 정채봉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3년 전에 마을을 방문해서 시를 남겼다고 한다. 마을에서 돈을 모아 충무사 앞에 세워놓았는데 한번 가서 보라고 하신다.

물 반 고기 반의 바다
뻘 반 조개 반의 갯벌에 의지하여
흰구름과 같은 소박과
갈대 같은 투혼의 후손들이 자랐다.
여기에

공단의 새 물결이 밀려와
우리 사랑 신성리의 바다는
우리들의 눈물 속에 아득히
그리움만 남긴 채 묻혀버렸다.
여기에. - 정채봉 시비 <여기 순결의 터를 기른> 일부

충무사 앞에 들어선 공장. 정채봉 선생님이 꿈을 키웠던 바다는 매립이되었다.
 충무사 앞에 들어선 공장. 정채봉 선생님이 꿈을 키웠던 바다는 매립이되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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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 선생님이 어린 시절 기마전을 하던 바닷가는 이제 사라져 버렸다. 마을 앞으로 펼쳐지던 푸른 바다는 매립이 되어 더 이상 배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정채봉 선생님의 추억은 책속에 남아있고, 이곳 신성리에 남아있다.

그대, 진정 내고향을 느끼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양력 2월 중순부터 3월 초순, 우수와 경칩 절기에 가는 것이 좋다. 매화 망울이 시래깃국 냄새가 있는 안개 속에서 벙글기 시작하는 것을 보려면, 누우런 갈대밭 너머 노을과 함께 지는 동백꽃을 보려면, 보리밭 파란 들과 그리움을 실어 오는듯한 싸한 바람을 대하려면, 조춘(早春)의 햇살처럼 얼른 숨어 버리는 순박한 큰애기의 미소를 보려면……. - 정채봉의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중

덧붙이는 글

정채봉 선생님은
1946년 전남 순천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1973년 동화 <꽃다발>로 등단한 후 깊은 울림이 있는 문체로 어른들의 심금을 울리는 '성인동화'라는 새로운 문학용어를 만들어 냈으며, <물에서 나온 새>, <오세암>, <초승달과 밤배> 등을 출간하였다. 1998년 간암이 발병하여 2001년 1월 짧은 생을 마감했다.

생가복원 계획은
순천시에서는 순천만에 순천 출신 작가인 김승옥과 정채봉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순천문학관'을 건립하고 올 상반기에 개관을 할 예정이다. 정채봉 생가 복원사업은 문학관 건립사업으로 변경이 돼서 복원 계획은 없다고 한다.

찾아가는 길
'정채봉길'이 시작되는 해룡면소재지까지는 시내버스가 수시로 운행하고 있으며, 생가가 있는 신성포까지는 순천에서 출발하는 21번 시내버스가 50~80분 간격으로 하루 11차례 운행한다. 해룡면 소재지에서 '정채봉길'을 따라 충무사까지 쉬엄쉬엄 걷다보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정채봉 선생님 생가는 신성리 마을회관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대나무숲 아래에 있다.

주변 역사 유적지로는
신성포 가는 길에 백제시대 산성인 검단산성(건물지 등)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순천왜성이 있다. 신성포 끝자락에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숙종 16년(1690)에 인근 주민들이 사당을 짓고 충무공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왔던 충무사가 있다. 문이 닫혀있어 내부를 구경하기는 곤란하다.


태그:#정채봉, #신성리, #충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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