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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와 함께 온 지독한 황사, 폭설이 쉴틈없이 몰아치는 변덕스런 봄날을 맞은 농군들의 손길은 바쁘기만 합니다. 경칩도 춘분도 지나 이제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릴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창 바빠야 할 우리 동네는 태산 같은 봄일보다 인천아시안게임 선수촌 건설문제 때문에 다들 정신이 없습니다. 인천시가 그간 땅 주인도 모르게 선수촌 부지를 지정하고 강제수용한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주민대책위원회까지 꾸려졌지만 평생 땅만 파온 농군들로서는 사실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게 조상 대대로 100년 넘게 지켜온 땅과 마을을 빼앗기고 농사일도 끊길 상황이지만,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도 없고 마땅히 하소연 할 이도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먹통'인 인천시가 하도 답답해 지난 2월 27일 주민대책위가 나서서 '토지수용보상 설명회'를 열었는데, 설명회에 온 변호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돈 없는 인천시가 제대로 보상을 해 줄 수 없을테니, 시청 앞에서 북치고 꽹과리라도 쳐야 한다"고 말이죠.

 

인천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개발사업들을 보면 살던 터전에서 밀려나는 게 우리 동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인천아시안게임 선수촌이 들어선다는 논밭에서 보이는 계양산에는, 인천시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재벌기업의 골프장 허가가 4월에 난다고 하네요. 현 인천시장이 오는 6월에 지방선거에 또 나온다는데,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동네에 가득한 것은 다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고된 봄철 농사일보다 괜한 근심 걱정만 쌓여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이 될 농사를 위해 나이든 부모님은 궂은 날씨에도 아침 저녁으로 밭에 나가십니다. 지난 3월 둘째 주 내내 아랫밭에 옮겨심은 고추모종이 잘 자라는지 비닐하우스를 보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천상 농군인 부모님에게 힘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철부지 아들보다 몇 백배 나은 라디오가 그것입니다. 아버지가 밭에 나갈 때마다 품에 넣어 가지고 다니시는 라디오를 일할 때마다 들으시는데, 말벗도 되어주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전해주고 농사꾼이 가장 신경쓰는 날씨도 전해줍니다. 흥겨운 노랫가락으로 콧노래도 절로 나오게 하고, 가슴 찡한 사연으로 알게 모르게 눈물 짓게 하기도 합니다.

 

그 효자 라디오마저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뷰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토지수용, #아시안게임, #농부, #인천시,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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