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의 득점 뒤풀이 사진을 내걸고 승리 사실을 자랑하고 있는 맨유 구단 누리집(manutd.com) 첫 화면

박지성의 득점 뒤풀이 사진을 내걸고 승리 사실을 자랑하고 있는 맨유 구단 누리집(manutd.com) 첫 화면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실로 오래간만에 듣는 기립박수 소리였다. 87분, 벤치로 물러나는 박지성의 등 뒤에는 7만 5천여 안방 팬들이 쏟아내는 박수 세례가 쏟아지고 있었다.

60분, 멋진 역전골을 터뜨린 박지성은 득점 뒤풀이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여러 번 두드리며 관중들의 환호에 답했다. 마치 그 동작은  "내 심장은 이렇게 역동적으로 뛴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보였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끌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우리 시각으로 21일 늦은 밤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2009-2010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FC와의 맞수 대결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박지성의 역전 결승골에 힘입어 2-1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리그 선두 자리를 지켰다.

겁 없는 '박지성', 세 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

AC 밀란(이탈리아)과의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6강 토너먼트 두 경기에서 박지성에게 특명을 내려 기분 좋은 2승을 챙긴 바 있는 퍼거슨 감독은 레즈 더비라 불리는 리버풀과의 안방 맞대결에서 박지성에게 또 한 번 가운데 미드필더로서의 중책을 맡겼다.

그 두 경기에서 AC 밀란의 플레이 메이커 안드레아 피를로를 훌륭하게 막아내며 팀 승리에 큰 기여를 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수비 부담과는 거리가 비교적 먼 공격형 미드필더 본연의 자신감 넘치는 몸놀림이 인상적이었고 또 그것이 결정적인 효과를 내고 말았다.

웨인 루니를 원톱으로 세우고 세 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나니-박지성-발렌시아)의 중심을 이룬 박지성은 특유의 왕성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전후좌우로 멀리까지 움직이며 리버풀 수비수들의 압박을 느슨하게 만드는 역할, 골잡이 루니를 빛나게 하는 역할, 가운데 미드필더로서의 수비 가담 역할 등을 꼼꼼하게 해냈다. 현재 맨유로서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경기 시작 5분만에 상대 골잡이 페르난도 토레스를 놓치는 바람에 먼저 한 골을 내준 맨유는 그로부터 6분만에 골잡이 루니가 동점골을 터뜨린 덕분에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다. 발렌시아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찬 루니의 오른발 슛을 레이나가 기막히게 막아냈지만 앞에 떨어진 공을 루니가 다시 가볍게 밀어넣은 것. 이 행운에 가까운 골은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4연패라는 꿈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이렇게 팽팽한 균형이 계속되던 60분, 아름다운 역전 결승골이 박지성의 이마에서 터졌다. 오른쪽 측면에서 공이 전개되면서 플레처의 띄워주기가 올라올 때 골 냄새를 맡은 박지성은 자신을 막던 마스체라노를 뿌리치고 골문 바로 앞으로 빠르게 달려들어가 몸을 내던졌다. 그 순간 리버풀의 오른쪽 수비수 글렌 존슨의 축구화가 무시무시하게 자신의 왼쪽 얼굴로 날아들었지만 겁 없는 박지성의 집념어린 시선은 오로지 공에 집중되어 있었다.

최근 세 경기(vs 밀란, vs 풀럼, vs 리버풀) 연속 공격 포인트(2골 1도움) 기록은 박지성의 몸 상태가 최고조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박지성은 이제 다음 주 일요일 새벽(우리 시각) 리복 스타디움으로 들어가 이청용과의 맞대결을 기다리게 된다.

리버풀, 토레스의 이마가 빛났지만

LOSC 릴(프랑스)을 물리치고 UEFA 유로파리그 8강 토너먼트에 올라가 이번 시즌 구겨진 자존심을 되찾고자 뛰고 있는 리버풀 FC는 비록 까다로운 방문 경기였지만 시작 후 5분만에 제라드-카윗-토레스로 이어지는 좋은 패스 줄기를 통해 멋진 선취골을 터뜨리며 이 맞대결을 바라보는 수많은 팬들의 심장 박동수를 한층 높여주었다.

하지만 리버풀로서는 이 기쁨이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마스체라노의 잡기 반칙이 하워드 웹 주심의 눈에 딱 걸린 것. 벌칙 구역 안쪽으로 공을 몰고 달리는 발렌시아의 순발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미리 차단했어야 했는데 이미 때는 늦은 것이었다.

이 반칙으로 노란 딱지를 받은 마스체라노는 특유의 찰거머리 수비 실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하고 맨유의 키 플레이어 박지성을 비교적 느슨하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고, 결국 60분에 나온 결승골 직전에 포옹을 하다시피하던 막기 동작에서 더 적극적인 수비를 펼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해야 했다.

방문 팀의 베니테스 감독은 박지성의 역전골이 터진 뒤 아퀼라니(73분)-바벨(76분)-베나윤(83분)을 차례로 들여보냈지만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폭을 좁힌 맨유 선수들의 압박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 고개를 숙여야 했다.

89분에는 바꿔 들어온 아퀼라니가 뒤로 흘려준 공을 토레스가 골문 바로 앞에서 오른발로 돌려차기를 시도하다가 잘못 맞는 바람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앞이나 옆에서 따라붙는 맨유 수비수도 없었지만 긴장된 그 순간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었다. 천하의 골잡이 토레스에게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었다.

이 뼈아픈 패배로 리그 상위권 진입이 불투명해진 리버풀 FC는 일주일 뒤 선덜랜드와의 안방 경기를 끝내고 SL 벤피카(포르투갈)와의 유로파리그 8강 첫 경기를 위해 포르투갈 리스본(에스타디오 다 루즈)으로 떠나야 한다.

덧붙이는 글 ※ 2009-2010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결과, 21일 올드 트래포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1 리버풀 FC [득점 : 웨인 루니(11분), 박지성(60분,도움-플레처) / 페르난도 토레스(5분,도움-카윗)]

◎ 맨유 선수들
FW : 웨인 루니
MF : 나니(79분↔긱스), 플레처, 박지성(87분↔폴 스콜스), 캐릭, 발렌시아
DF : 에브라, 리오 퍼디낸드, 비디치, 게리 네빌
GK : 판 데 사르

◎ 리버풀 선수들
FW : 페르난도 토레스, 스티븐 제라드
MF : 막시 로드리게스(76분↔바벨), 마스체라노, 루카스(83분↔베나윤), 카윗(73분↔아퀼라니)
DF : 에밀리아노 인수아, 아게르, 제이미 캐러거, 글렌 존슨
GK : 페페 레이나
박지성 루니 제라드 토레스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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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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