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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는 남 얘기로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얘기는 내 얘기가 됐다. 밤낮없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시간 날 때마다 가서 어루만졌다. 어디 아픈 곳이 없는가? 살펴보고 행여 먼지라도 묻으면 닦아주는 일을 반복했다. 다름 아닌 바이크 얘기다.

필자의 20년 된 바이크, 처음 만날 때와는 많이 다르게 깨끗해졌다
 필자의 20년 된 바이크, 처음 만날 때와는 많이 다르게 깨끗해졌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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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처음 바이크를 만났을 때 그녀는 다소 어눌하고 촌티(?)나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내가 볼 때는 그랬다. 칙칙한 공구통을 매달고 요상하게 생긴 발걸이까지 달았는데 빛바랜 색깔하며 몸에 낀 녹까지를 합하면 영락없는 시골처녀였다.

이후 내 일상은 녹을 닦아내는 게 전부였다. 집에 들어가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그 일이 전부였다. 그러면서 몸에 붙어있던 촌스런 액세서리를 하나 둘 떼어내기 시작했는데 정성어린 사랑 덕분인지 '흙속의 진주' 같은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예뻤다. 갈수록 매력적이고 가꿀수록 예뻐졌다. 사랑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것까지가 사랑이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남의 바이크하고 비교하게 되는 시간이 늘어났다. 작은 엔진 소음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잡음소리나 색깔에도 인상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자연스런 노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뒷바퀴 휠을 교체했다
 자연스런 노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뒷바퀴 휠을 교체했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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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때부터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사사건건 바이크를 간섭하고 참견하려 했던 것 같다. 불평도 부려보고 짜증도 부렸는데 이상한 것은 그럴수록 집착은 강해졌다. 그래서일까? 오늘 뒷바퀴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속병을 앓은 것인지 스토커 같은 나에게 실증이 난 것인지...

할 수 없이 오토바이를 잘 보기로 소문난 벌교 홍교 부근에 있는 'ㅈ'오토바이 수리점에 갔다. 바이크의 상태를 말하고 그동안의 일에 대해 사장님에게 물어봤다. "혹시 바이크 입장에서 나는 스토커가 아닐까요?" 스토커라는 소리에 사장님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웃었다.

뭔가 있을 것 같아 이것저것 물었더니 자신도 주제는 다르지만 필자와 같이 비슷한 고민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벌교와 홍교에 대한 나의 행위가 스토커가 아닌가 하고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벌교 태생이며 홍교 부근에 오토바이가게를 차린 지 20년이 넘어섰고 그동안 지역사랑을 위한 각종 사회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그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고민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평소 주위에서 말하는 조용하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그에 걸맞지 않은 '스토커' 고백이었다.

바이크를 고쳐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 주는 임병옥 사장
 바이크를 고쳐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 주는 임병옥 사장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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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 오토바이 수리점은 보물 제 304호라는 벌교 홍교 근처에 있다. 임병옥 사장은 이곳에서 20년 넘게 오토바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임 사장은 홍교뿐만이 아닌 벌교에 대한 다양한 모임과 행사에 참여해 의견을 나누고 실천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그런데 임 사장은 "그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을 넘어선 또 다른 행위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고 자책했다. 물론 필자 생각에 그는 '스토커'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지만 필자가 바이크의 자연스런 노화에도 크게 반응하고 뜯었다 붙였다 하면서 간섭하려드는 모습을 보고 조언을 하려면서 행여 맘 상할까봐 자신을 스토커의 범주에 넣었던 것이다.

이어 그는 바이크 전문가답게 그리고 사회활동의 선배답게 "바이크나 지역사회나 사랑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자칫 스토커가 되면 곤란하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바이크와 고정된 의식을 갖고 있는 지역민에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간섭하려 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스토커 일지도 모른다"는 신중한 조언을 내놓았다.

임 사장은 바이크는 물론 지역사랑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을 필자에게 얘기해 줬다
 임 사장은 바이크는 물론 지역사랑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을 필자에게 얘기해 줬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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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는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벌교성당에서 사목회장직만 맡아 종교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참된 종교 활동이 가장 아름다운 지역 사회 사랑"임을 강조하는 그에게서 그동안 사회활동의 어려움을 진하게 느꼈다. 그리고 그가 의미하는 지역사랑이 무엇인지도 어렴풋하게 알게 됐다.

바이크에 대한 얘기에서 지역얘기로 또 종교얘기로 까지 발전했고 '사랑과 스토커의 차이는 백짓장 한 장 차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 백짓장의 두께에 관해서는 각자 나름대로의 해석일수밖에 없었다. 분명한 것은 사랑하게 되면 자칫 스토커가 되기 싶다는 것만은 확실한 듯보였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바이크올레꾼, #사랑, #스토커, #임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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