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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계량기 바로 옆에 모여 담배를 피고 있는 학생들
 가스 계량기 바로 옆에 모여 담배를 피고 있는 학생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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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앉아 한가롭게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솔솔 담배 냄새가 올라옵니다. 아래층 사는 아저씨가 담배를 피는 걸까 했지만 그럴리가 없습니다. 직장인인 아저씨가 점심 시간인 오후 1시 전후에 집에서 담배를 피울리 만무하기 때문이죠. 더구나 입주민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정도의 흡연 매너는 갖추고 있는 어른들이거든요.

문득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이 녀석들이 또?'

"애들아, 거기서 담배 피우지 말랬지?"... "후다닥"

학생들이 함부로 버린 담배꽁초에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함부로 버린 담배꽁초에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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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생각은 늘 적중하는 법. 현관문을 열어보니 계단 통로를 따라 자욱하게 담배연기가 올라오고 교복 입은 몇 명의 학생들이 '후다닥' 소리를 내며 달아나고 있습니다.

"애. 니네 거기서 담배 피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불나면 어쩔려구!!"

소리를 질렀지만 우리집 현관문을 벗어나 다른 학생들 속에 섞인 아이들은 오히려 소리치는 저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며 웃고 있겠지요.

개학을 하고 난 후 중·고등학교 후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집은 거의 매일 '흡연학생'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엔 맞은편 빌라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던 중학생들을 이웃 아저씨가 잡아 학교 선생님에게 지도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며칠 지나지도 않아 다른 아이들이 또 담배를 피운 겁니다.

저 역시 두 아들을 키워 본 엄마로 흡연이 몸에 해롭다거나 어른들 앞에서의 흡연이 예의에 어긋난다거나 하는 잔소리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의나 건강 문제를 떠나 버려진 담배꽁초와 침 때문에 계단 청소를 하시는 아줌마들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화재의 위험까지 있기에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지요.

지난 해에도 학생들이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 때문에 현관 지붕에 불이 나서 불 끄느라고 얼마나 놀라고, 고생했는지 모르거든요. 다행히 제가 집에 있어서 바로 물을 퍼다 부어 큰불은 나지 않았지만 만약 아무도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재가 되어버린 경고문... CCTV 설치할 수도 없고

봄이라 날씨가 풀려서인지, 학기 초라 마음이 풀려서인지 요즘 들어 흡연을 위해 우리집을 찾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버려진 담배꽁초와 함부로 뱉은 침들 때문에 노이로제가 생길 정도입니다.

생각다 못해 며칠 전엔 아이들이 주로 담배를 피우고 버리는 계단창에 큰맘 먹고 '공지'를 써붙여 보기도 했습니다.

"빌라 계단에서 담배를 비우다 적발되면 학교에 통보하고 계단 청소를 시키겠습니다."

공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불에 타 재가 되어버린 공지.
 불에 타 재가 되어버린 공지.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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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제가 붙인 공지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아니 자취는 남아 있었네요. 라이터로 그랬는지 담뱃불로 그랬는 창틀에 붙어있는 채로 태워 그 잔해가 지저분하게 주변과 바닥에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공지를 태우면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먹히지도 않을 공지를 써붙인 저를 비웃었을까요? 혹시 화재라도 나면 어떻게 할까 한 번이라도 걱정했을까요.

바로 학교로 달려가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두서 없이 항의를 했지만 선생님들도 흡연을 단속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죄송하다는 말만 할 뿐 똑 부러지는 대책을 내놓지는 못하십니다.

"CCTV를 설치하시면... 누구라도 한번만 찍히면... 찍힌 학생만 혼내면 더 이상은 그런 일이 없을 텐데요..."

선생님의 답답한 마음도 한편 이해가 되지만 이웃학교 학생들의 흡연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개인비용을 들여 CCTV까지 설치해야 하나, 한심한 생각이 들 뿐입니다. 아무튼 단단히 당부를 드렸으니 이후 며칠은 조용하겠지 했는데 그것도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바로 다음날인 오늘도 우리집 계단과 담 뒤에서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다 쫒겨났거든요. 얼마나 급히 달아나는지 빈 화분 하나를 걷어차 깨뜨리기까지 했습니다. 그 옆에 아래층 할머니가 며칠 전 애써서 담은 간장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거 깨뜨렸더라면 어쩔 뻔했나요. 가슴이 다 서늘합니다.

아이들의 담배 피우는 시간은 대충 정해져 있습니다. 등교시간,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 피우고 들어가구요. 점심 시간 이후 친구들과 우르르 모여나와 피우기도 하구요. 하교시간 역시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갑니다.

담배 피우더라도 깨끗하고 안전하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담배를 피우러 학교 밖으로 나온 학생들
 점심시간을 이용해 담배를 피우러 학교 밖으로 나온 학생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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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 청소년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학교 근처에 살다보니 실제로 앳돼 보이는 중학생 흡연자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여학생들의 흡연도 쉽게 목격됩니다.  

저는 사실 학생들의 흡연에 대해 관대한 편입니다. 청소년기에 호기심으로 한 번쯤 흡연을 경험할 수도 있고 혹 이미 담배맛을 아는 정도까지 됐다 하더라도 적어도 예의에 벗어나지만 않고 누군가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기호가 아닌가 생각하거든요.

청소년 흡연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어린 나이의 흡연이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지만 그건 부모나 선생님 혹은 다른 어른들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 흡연 당사자인 본인이 걱정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지도에 나선 선생님들도 흡연으로 인한 아이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청소년의 흡연은 단속대상이고 지도대상이기 때문에 지도 단속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지요.

더불어 교사의 단속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도 늘 하십니다. 하긴 경찰 백명이 도둑 한명을 잡지 못하는 세상인데. 선생님인들 하루 종일 수업도 하지 않고, 행정업무도 뒤로 미룬채수백명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는 없는 것이죠.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구요.

선생님도, 공지도 무서워하지 않는 흡연청소년들. 그래서 이렇게 지면을 통해 호소하기로했습니다. 선생님도 지도할 수 없고, 피해를 보는 이웃집 아줌마로서도 도저히 막을 수가 없기에 학생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인터넷을 이용해 부탁을 하기로 한 것이지요. 인터넷에 올려진 글을 창에 붙여둔 공지처럼 태워 버릴 수는 없을 테니 말이죠.

"부탁인데. 제발 좀 남의 집 계단에서 담배 피지 맙시다. 남의 집 뒤뜰에서도 담배 피지 말구요. 자기가 핀 담배꽁초는 함부로 버리지 말고 스스로 정리합시다. 건조한 봄날 꽁초로 인한 화재가 걱정됩니다. 자식 같은 아이들이 버린 담배꽁초 치워야 하는 청소 아줌마 심정도 좀 해아려 보자구요. 맹자 어머니는 자식 공부 때문에 서당 근처로 이사를 갔다는데 학교 가깝다고 이사온 아랫층 초등학교 꼬마는 담배 피는 형아들 때문에 공부보다 먼저 담배를 배우게 생겼다구요." 


태그:#청소년흡연, #담배, #화재위험, #송림중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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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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