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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월임에도 밤새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하얗게 쌓인 눈을 보면서 '서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설은 '상서로운 눈, 복 눈'이라고 합니다.

 

봄꽃을 시샘하는 듯, 이제 겨울이라는 주머니에 마지막 남은 겨울을 탈탈 털어 내어놓으려는듯 겨울보다도 많은 눈을 뿌렸습니다. 봄꽃을 시샘하거나 말거나 봄꽃은 그래도 피어날 것이니, 춘삼월에 맞이한 서설로 복이 굴러들어오면 좋겠습니다.

 

 

작은 눈꽃 한 송이 또 한 송이가 연대하여 큰 소나무를 꺾어버렸습니다. 작은 자들의 연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눈 온 날 눈으로 봅니다.

 

밀어붙이기에 맛을 들인 현 정권의 4대강사업에 대해서 '작은 자들의 외침이라고 한 귀로 흘려듣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서 작은 물방울을 받아들여 큰 강을 이루던 맑은 강, 생명의 강이 아이들의 급식예산과 교육재정 등 국민들에게 돌아가야할 것들을 빨아들이면서 죽음의 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려하는 소리들이 높아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 작은 자들이 연대하면 너희들이 결국은 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피어나던 봄꽃이 깜짝 놀랍니다. 그러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더 추운 겨울도 이겼는데 이 정도 쯤이야!'하며 당당하게 눈을 녹여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참으로 많은 생명이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생명이 우리 곁에 살아가도 보려고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주변에 있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장님이나 다름없습니다.

 

4대강을 젖줄기로 하여 수많은 생명이 깃대어 살아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무조건 밀어버리는 이들은 장님입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아프다고 소리를 쳐도 듣지 못하는 이들은 귀머거리입니다. 자기의 약간의 이익을 위해서 아부하는 소리를 하거나, 반대하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은 벙어리입니다.

 

기적, 그것은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서설을 보며 나는 봄을 막으려는 서설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그냥 봄이 사박거리며 오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눈이 내리는데 그 눈이 봄을 당겨온다는 것, 그것도 작은 기적인 셈이지요.

 

 

언제 피었는지 보이지도 않더니만, 서설을 가득이고 고개를 숙인 매화말발도리가 보입니다. 자신의 외모라 할 수 있는 꽃잎은 다 상했어도 여전히 내면이라 할 수 있는 꽃술은 제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서설에 상한 꽃잎, 그것이 못생겨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못생김이 거룩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저 상황에서도 저렇게 꽃술을 건실하게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서설, 그렇습니다. 기왕에 내린 눈이니 '상서로운 눈, 복 눈'으로 맞이하고 바라보는 것이 내 마음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봄꽃을 시샘하는 상서러운 눈, 사박거리며 봄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태그:#봄꽃, #산수유, #서설,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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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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