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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한강공원. 잔디광장 곁을 지나가는 자전거
 난지한강공원. 잔디광장 곁을 지나가는 자전거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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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많이 풀리긴 풀린 모양이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는 '경칩'날(3월 6일), 한강 둔치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남쪽엔 복수초를 비롯해, 홍매화와 산수유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한강에 아직 그런 꽃소식은 없다. 그 대신 자전거도로 위로 울긋불긋 다채로운 색깔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줄줄이 지나간다. 날이 풀리길 기다렸다가, 마치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양상이다.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온 가족들이 눈에 많이 띈다. 자전거를 탄 아들과 아버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속도 경쟁을 한다. 아들은 '씩씩' 대고 아버지는 '허허' 웃는다. 그 옆으로 2인승 자전거를 탄 젊은 남녀 한 쌍이 지나간다. 남자는 열심히 페달을 밟는데, 뒤에 앉은 여자는 살짝 다리를 들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가다 남자가 무슨 볼멘소리를 했는지 여자가 까르르 웃는다. 서울의 봄소식은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에서 먼저 읽을 수 있다.

난지한강공원 야영장 근처를 지나가는 2인승 자전거
 난지한강공원 야영장 근처를 지나가는 2인승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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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한강공원 이색자전거 체험장. 쇼핑카트를 끄는 자전거, 바퀴가 사각인 자전거도 보인다.
 난지한강공원 이색자전거 체험장. 쇼핑카트를 끄는 자전거, 바퀴가 사각인 자전거도 보인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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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 풀풀 나던 구부렁길이 '자전거도로'로 변신

난지한강공원의 자전거도로는 폭이 꽤 넓은 편이다. 아마추어와 프로가 뒤섞여 달려도 정체나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다. 그만큼 사고 위험도 낮다. 가던 길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꾸거나 멈춰 서는 일만 없다면,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 공원 중간 중간 쉬어갈 만한 공간이 꽤 된다. 때때로 자전거를 세워두고 강가로 내려가 볼 만하다. 산책로가 강가에 바투 붙어 있다.

난지한강공원이 끝나는 지점인 가양대교 아래에 '자전거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그동안 가양대교를 통해 난지한강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없었다. 이 부근에서 한강으로 내려가려면 예전에는 성산대교나 월드컵공원 내 평화의공원 쪽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이제는 그런 수고를 덜게 됐다. 엘리베이터 공간이 자전거 2, 3대는 거뜬히 들어갈 것 같다.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지는 잘 모르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가양대교 위에서 내려다 본 자전거도로. 왼쪽은 국궁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가양대교 위에서 내려다 본 자전거도로. 왼쪽은 국궁장.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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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양대교를 지나면 너른 풀밭 사이로 난 자전거도로다. 이 길은 예전엔 흙먼지 풀풀 나는 구부렁길이었다. 요철이 심하고 비가 조금만 내려도 금방 흙탕길로 변하곤 해서, 꽤 조심스럽게 지나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 길이 이제는 일부 구간을 남겨두고 말끔한 자전거도로로 변신했다. 자전거 타고 다니기에는 전보다 훨씬 더 편해졌다. 하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건 왜일까?

그래도 이 지역은 아직 대부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땅으로 남아 있다. 한강 둔치의 예전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한강 시민공원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다. 시멘트나 철로 만든 구조물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자전거도로와 강가에 접한 습지공원을 제외하면, 누렇게 시들다 못해 검게 썩어가는 풀잎들로 가득한 땅이다. 황량한 느낌이 든다.

행주산성이 둥지를 튼 덕양산. 그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방화대교 진출입로.
 행주산성이 둥지를 튼 덕양산. 그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방화대교 진출입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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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들판 중간에 철도 교량 공사를 하는 구간이 나오고, 그 구간을 지나면 멀리 방화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오른쪽에 평지 위로 우뚝 솟은 산이 바로 오늘의 목적지, 행주산성이 둥지를 튼 덕양산이다. 방화대교 아래서 올려다보는 행주산성은 절벽 위에 자리한 천혜의 요새다. 그 앞을 흐르는 창릉천이 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절벽 높이 산성이 있었을 곳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왜 이 산성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는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조선군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자연적인 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권율 장군 동상. 그 뒤로 전투에 참여한 관군, 의병, 승병, 여성 등 4개의 부조물이 서 있다.
 권율 장군 동상. 그 뒤로 전투에 참여한 관군, 의병, 승병, 여성 등 4개의 부조물이 서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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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민초들, '행주치마'의 등장

행주산성 입구인 '대첩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권율 장군 동상이 보인다.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최고 사령관이니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당연하다. 마침 태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동상이 더욱 빛이 난다. 정면으로 눈뜨고 올려다보기 힘들다. 하지만 권율을 진정으로 돋보이게 하는 건 태양이 아니다. 동상 뒤로 반원형의 부조물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행주대첩 당시 권율 장군 휘하 2300명의 조선군이 3만 명의 왜군을 맞아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건, 그 부조물 속에 새겨진 이름 없는 영웅들 때문이다.

행주대첩은 '관군' 외에 '승병'과 '의병', 그리고 '여성'까지 동원한 총력전이었다. 부조물 속에서는 각각의 군상 조각과 그 군상의 인물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려주는 설명문이 붙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여성'이다. 부조물은 '여성'을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군은 산성 위에서 화포와 강궁을 쏘고 적을 막았다. 싸움이 오랫동안 계속됨에 따라 포탄과 화살이 다하고 돌마저 떨어지게 되자, 성 안의 부녀자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주어 돌로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부녀자들의 호국에의 의지가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하여 그 후부터 "행주치마"라는 말이 더욱 유명해졌다.

행주대첩도. 왜군의 조총에 돌과 창, 검, 활로 맞서고 있는 조선군. 조선군은 흙으로 성을 쌓고 성 밖에 목책을 둘러 방어했다.
 행주대첩도. 왜군의 조총에 돌과 창, 검, 활로 맞서고 있는 조선군. 조선군은 흙으로 성을 쌓고 성 밖에 목책을 둘러 방어했다.
ⓒ 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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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왜군은 명나라의 참전 후 퇴각을 거듭해 서울에 집결해 있었다. 그에 따라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행주산성이 왜군의 뒤통수를 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작용했다. 왜군으로선 당연히 행주산성에 진을 친 조선군이 목에 걸린 가시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 가시를 제거하기 위해 왜군이 행주산성을 겹겹이 둘러싼 게, 1593년(선조 26) 2월 12일이다.

양쪽 모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이 전투에서, 수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던 조선군은 부녀자까지 동원해야 했다. 이때, 앞서 설명문에서 본 것처럼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석전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국운을 건 전투에 부녀자들의 치마까지 동원해야 했던 것으로 봐서 당시 정황이 얼마나 격렬하고 처절했는지를 알 수 있다.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이다. '대첩(큰 승리)'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행주대첩은 임진왜란 중 전세를 바꾸는 매우 중요한 전투 중에 하나였다. 이 전투에서 부녀자를 비롯한 의병과 승병 등 민초들이 전면에 나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행주산성은 '행주(의)치마'로 상징되는 민초들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어떤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위한 건 이들 민초들이었다.

행주산성 정상에서 내려다 본 방화대교. 가운데가 덕양정, 오른쪽이 대첩비각.
 행주산성 정상에서 내려다 본 방화대교. 가운데가 덕양정, 오른쪽이 대첩비각.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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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 정상에서 내려다 본 강변북로와 한강 둔치. 그 위로 구불구불 이어진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행주산성 정상에서 내려다 본 강변북로와 한강 둔치. 그 위로 구불구불 이어진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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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바람이 무척 부드럽다. 전략적 요충지답게 사방이 확 트여 있어, 뭔가로 꽉 막힌 속을 달래기 좋다. 사방에 거칠 것이 없으니, 산 정상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호연지기가 느껴진다. 절벽 아래를 지나가는 도로며 다리 등, 세상이 아주 조막만해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산성 위에 버티고 선 조선 사람들 눈에 산성 밑에 진을 친 왜군이 좁쌀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온난화 탓에 봄날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올해 봄은 지난 해보다 더 짧아질지도 모른다. 지난 해 봄이, 오는 듯싶더니 어느새 가버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날이 좀 더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가는, 봄이 오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다가 여름을 맞이할 수도 있다. 꽃샘추위 몇 번, 황사 몇 번 맞이하고 나면, 바로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날이 좀 추운 듯싶다 해도, 이때가 봄이려니 서서히 산과 들로 나들이를 나서 볼 일이다.

이제 막 꽃을 피우려 하는 개나리. 만개할 날이 얼마 안 남은 듯.
 이제 막 꽃을 피우려 하는 개나리. 만개할 날이 얼마 안 남은 듯.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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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갔다 왔나?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한강 난지공원에서 방화대교까지는 자전거도로를 죽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가양대교를 지나 들판 중간에 전철 교량이 들어서고 있는데 그곳에서 잠시 헷갈릴 수 있다. 그 앞에서 공사 구간을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전거도로가 왼쪽으로 나 있어 헷갈릴 수 있다. 무시하고, 공사장 앞에서 오른쪽 흙길로 올라선다. 그러면 곧 이어 다시 왼쪽으로 자전거도로를 만날 수 있다.

방화대교 밑으로 천이 하나 흘러든다. 창릉천이다. 행주산성으로 올라가려면 이 천을 건너야 한다. 여기에서부터는 길이 조금 까다롭다. 방화대교 오른쪽에 천을 건널 수 있는 낮은 수중보가 하나 있다.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대부분 물 밖으로 드러나 있어 건너기 쉽다. 비가 내려서 보가 잠겨 있을 때는 창릉천을 따라 계속 올라가야 한다. 약 1km를 거슬러 올라가면 다리가 나온다.

천을 건너서 오른쪽으로 흙길을 가다 보면, 자유로로 이어지는 제방로(2차선 도로)가 나온다. 제방로를 타고 자유로 쪽으로 향하다 보면, 자유로 앞에서 자연스럽게 우회전하는 길을 만난다. 그 길 끝에서, 왼쪽으로 굴다리가 나타난다. 굴다리를 지나면 다시 도로가 나오는데, 그 도로를 건너 오른쪽으로 보이는 '원조 국수'집 옆의 샛길로 들어선다. 계속 올라가면 짧은 오르막길이 나오고, 그 오르막길 끝이 바로 행주산성이다.

행주산성 가는 길. 왼쪽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1) 방화대교 오른쪽 수중보 2) 제방로 3) 자유로 밑 굴다리 4) 행주산성 들머리
 행주산성 가는 길. 왼쪽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1) 방화대교 오른쪽 수중보 2) 제방로 3) 자유로 밑 굴다리 4) 행주산성 들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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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원조 국수
'원조 국수'집 앞에 자전거들이 여러 대 주차해 있다. 원조 국수집은 자전거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다. 자전거를 타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제공 받는 곳이기도 하다. 메뉴는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2가지, 각각 3천원이다. 3천원이라는 싼 가격에 다른 국숫집의 1.5배 이상 되는 양으로, 자전거인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곱빼기도 달라고 하면 주는데, 양이 엄청나다. 위장이 큰 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시키지 않는 게 좋다. 곱빼기라고 돈을 더 받지는 않는다. 똑같이 3천원. 싸고 양만 많았으면 그냥 평범한 국숫집 중에 하나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집은 맛에서도 딴 소리 안 나오게 만든다. 주말에는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최근 근처에 별관을 낸 까닭인지, 기다리는 시간이 꽤 줄어들었다. 선불제다.


태그:#행주산성, #난지한강공원, #자전거여행, #원조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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