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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명동 거리에 작은 밀싹들이 파릇하게 돋았다. 4대강 사업 예정지인 팔당 유기농지 농민들(농지보존·친환경농업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원회 소속, 이하 팔당공대위)이 나눠준 밀싹 화분이었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진행할 '4대강 사업 반대 전국 사제 선언'을 앞두고 미리 와서 '유기농지 지키기'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8일 정오, 아직 쌀쌀한 날씨에 움츠리던 행인들은 푸른 밀싹을 봄처럼 느낀 모양이다. 500여 개의 화분이 30분 만에 동났다.
 
"팔당 유기농지 흙에 싹을 틔운 것들이예요. 샐러드로도 해 먹을 수도 있어요. 잘 안 받아갈 줄 알았는데 많이들 받아가시니까 좋네요.(웃음)" 

3월, 딸기나 유기농 체험농장 준비 등 한창 밭일이 많을 때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밭을 두고 서울에 와야 했다.
 
"바쁜 철이긴 한데 어쩔 수 없죠. 팔당공대위 일도 하고 농사일도 하고 같이 하는 거지 뭐. 저보단 비대위 대책위원장님이나 사무국장님이 훨씬 바빠요."
 
임인환씨의 말이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한 식당에서 tv가 하필 딸기농장을 비춘다. tv 속 농민들은 열심히 밭을 가꾸고 환하게 웃으며 딸기를 들어 보인다. 임인환씨는 눈을 떼지 못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저렇게 열심히 농사만 짓던 기억들 때문일까. 아니면 두고 온 밭 생각 때문일까.
 
지난 2월 강제 토지측량 때 연행된 서규섭씨와 유영훈씨(팔당공대위 대표)는 내일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간다.
 
"불구속 입건이었는데 내일이 첫 조사예요. 강제측량 이후엔 아무래도 농민들이고, 나이 드신 분 많고 하니까 걱정 많이 하시죠. 마을 분위기가 좀 안 좋아졌죠. '그래도 공권력까지 동원할 정도로 부당한 짓을 한다'는 공감대가 많이 퍼졌어요." 

'4대강의 용산', 팔당 유기농지


10개월 가까이 싸워오면서 팔당 유기농지는 '4대 강의 용산'이 되었다. 환경단체, 시민단체, 종교계와 야당들까지 이곳에 관심을 갖고 연대하겠다고 나섰다. '우군'이 늘어났지만 농민들은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당장의 일상은 변함 없이 꾸려가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당장 내일 농사를 못 짓게 될 수도 있잖아요. 불안할 수밖에 없죠. 사실 농민들 대부분 여기서 쫓겨나면 살 방도가 없어요. 농지를 갑자기 어디 가서 구해요. 농사가 하루 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보상을 받는다 해도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데도 아니고. 앞날이 너무 불안하니까 일 못하고 있는 분도 있어요. 하우스가 몇 개씩 내버려져 있기도 하고. 그래도 '난 내일 쫓겨나도 오늘 씨 뿌리련다' 하고 묵묵히 일하는 분들도 있고. 오래 싸우다보니 힘들어 하시는 분들도 늘고. 3월은 저희에게 많이 힘들 거 같아요."
 
방춘배 팔당생명살림 사무국장의 말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강제 측량, 지질조사 과정에서의 위법행위(지자체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점 등)에 대해 농민들은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당장 무리한 집행은 없을 예정이나, 감정평가와 보상 문제를 들고 나와 농민들을 분열시키리라고 방 국장은 예측한다.
 
"4월 중순까지 보상 협의하자고 하겠죠. 그게 잘 안 되면 6월 지나 행정대집행(강제집행)해서 4대강 사업에 착공할 거예요. 아마 6·2 지방선거 끝나고 하겠죠."
 


'4대강 사업 반대 전국 사제선언'이 시작되고, 천주교연대 사제들은 영산강, 낙동강, 한강, 금강의 상황을 보고했다. 한결같이 참혹하다고 했다. 이들은 현장에서 꾸준히 생명살림 기도회를 벌이고 있다. 그 옆에 유영훈 대표는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가 유기농지에서 찍은 사진을 거꾸로 들고 섰다.
 
"유기농지를 보존하겠다는 약속을 어겼으니까요."    

"내일 쫓겨나도 함께 농사 짓고 싶습니다."

팔당공대위는 지방선거 기간 중에 시, 도 후보들에게 4대 강 사업과 팔당 유기농지 대책 관련 공개질의서를 보내고, 각각의 입장을 공개할 계획이다. 3월 말부터는 시민들과 함께 '4대강 반대 텃밭'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3월 말부터 일반인들에게 텃밭을 분양해 직접 강을 보며 밭을 가꿀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직접 유기농 흙을 만지고 강을 보며 이곳의 소중함을 알리려고요. 또 농민들로서도 '우리 끝까지 힘내서 농사 짓자!'고 서로 북돋워주는 차원이기도 하고요. 시민들이 끝까지 관심 가져주고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자님도 그때 딸기 따러 오세요."
 
폭력으로 강과 사람을 뒤엎는 '녹색 정부' 앞에, 흙과 땀으로 맞서는 '친환경' 농부들. 누가 더 강을 살리고 있는지는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태그:#4대강사업, #팔당, #유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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