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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의 사무실이 있는 명동의 한 빌딩을 찾았다. 25층 건물, 층별 200여 평 규모의 공간에는 4개의 널찍한 사무실과 화장실이 있었다. 깨끗하고 널찍하며 냉난방이 잘 되는 이 빌딩엔 두 가지가 없었다. 공용 쓰레기통과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휴게실이었다. 친구가 말했다. "모든 사무실을 아침저녁으로 청소 아주머니들이 청소해. 사무실 쓰레기통도 비워주니까 따로 분리수거 안 해도 돼. 그런데 아주머니들이 휴게실이 없다고 화장실에 숨어서 쉬더라. 상사가 없을 때는 가끔 우리 사무실에서 쉬게 해드리곤 해. 도시락 드실 때만 관리사무실을 쓰나 보더라고."

 

이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류남미 공공노조 미조직비정규실장은 "한국에서 '청소부'를 특징하는 단어는 세 개다. '고령', '여성', 비정규직'이다. 43만 명이 넘는 청소노동자 중 73%가 여성이다. 그 중 77%가 비정규직이고 평균 나이는 57세다. 이들은 최저임금, 혹은 그마저도 못 받고 화장실, 계단 밑, 지하창고, 배관실 등에서 싸늘히 식은 도시락을 먹는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자는 '따뜻한 밥 한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젊은' 여성 노동자들도 안심할 수는 없겠다. 최근 정부는 '퍼플잡'(유연근무제)을 제시했다. 전일제 정규직 일자리, 재택근무 등을 오전 10시~오후 4시까지만 일하는 단시간 비정규직 일자리로 나누는 것이 골자다. 여성계는  여성노동자 중 73%가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이러한 일자리 질의 하락은 결국 여성을 더 빈곤의 나락에 빠뜨릴 것이라고 지적한다. 민주노총은 "언뜻 보기엔 노동자의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은 공공부문의 여성 정규직 일자리를 기간제, 파트타임제 등 해고되기 쉽고 임금은 적은 일자리로 만들겠다는 의도다"고 비판하고 있다.

 

3월 6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102주년 3.8 세계여성의 날 전국여성대회'는 이러한 MB식 여성정책을 비판하는 '성토장'이 되었다. 이날 1천여 명의 참가자들은 퍼플잡(유연근로), 출산강요 등을 반대하며 여성의 노동과 몸에 대한 권리를 지키자고 외쳤다.

무대는 주로 여성 노동자들의 춤과 노래, 퍼포먼스로 꾸며졌다. "개털이야 개털이야 다리다리다라뚜~ MB 땜에 개털이야 다라다리다라뚜~" 인기곡 '외톨이야'를 개사한 '개털이야', 50대 여교사들의 밸리댄스 등은 참가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대회장 주변에는 여러 부대행사가 벌어졌다. '따뜻한 밥 한끼 캠페인'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하기' 등 여성노동자 권리찾기 캠페인 외에도 전국여성농민회의 '토종씨앗' 지키기, '성소수자 화이팅!' 포토라인, 'MB식 여성정책에 하이킥' 등이 있었다.

 

 

성신여대 학생 등 대학생들은 "출산서약, 낙태단속으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원인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어떤 사회적 지원도 없이 여성에게만 부담지워지기 때문이다"고 했다. 오는 6.2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진보정당 여성의원들도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지방선거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했다.

 

참가자들은 유연근무제, 여성해고 반대/ 여성 일자리 확충/ 사회서비스 시장화 반대/보육,교육 공공성 강화/장애여성, 이주여성, 성소수자, 에이즈 감염인 노동권 보장 / 낙태단속강화, 출산강요 반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2010년 여성정치 세력 실현/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행사를 마무리했다.


태그:#여성의날, #여성노동자, #청소,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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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눈으로 본 세상, 그 속엔 새로운 미래가 담깁니다. 월간 <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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