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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장 쪽으로>와 <아오이가든> 등으로 자신만의 소설세계를 구축했던 편혜영이 첫 번째 장편소설 <재와 빨강>을 선보였다.

 

<재와 빨강>은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던 화자가 C국의 본사로 파견근무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C국은 전염병이 한창 유행하고 있었다. 증상은 감기와 비슷했기에 다들 기침만 해도 불안해하고 있었고 때문에 사람들은 병적으로 위생검열에 신경쓰고 있었다.

 

C국에 도착한 화자는 자신이 배정받은 제4구의 숙소로 향하다가 구역질을 한다. 거리가 온통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화자는 무엇을 꿈꾸는가. 쓰레기가 넘치는 그곳,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 그곳, 소독차가 끊임없이 소독약을 뿌려대고 있는 그곳에서 무엇을 욕망하는가. 회사 동료들은 화자를 부러워했다. 본사에서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던가. 동료들은 화자를 칭찬하기보다 시기했고 괴롭혔다. 화자가 뛰어난 업무능력이 있거나 리더십이 있기에 본사로 파견근무 떠나는 것이 아니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화자가 파견근무로 떠나는 기회를 얻게 된 이유가, 쥐를 '직접' 잡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화자의 욕망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시기들을 뒤로 하고 멀리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C국에 온 화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전염병이 유행하고 있어도 기뻤다. 지리멸렬한 것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일종의 해방감 때문이다.

 

하지만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도둑당하고 본사로부터 출근 대신 기다리라는 말만 듣게 되면서 화자의 마음은 조급해져간다. 더군다나 화자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 감염자가 나타나 격리 조치한다는 말을 들을 때는 더 했다. 화자는 답답한 마음에 본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건다. 전처든, 전처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동창생이든 간에 상관없었다. 누구도 자신을 찾지 않는 그곳에서, 화자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화자는 간신히 이혼한 동창생과 연락을 닿게 된다. 화자는 동창생에게 집에 남겨진 개를 돌봐달라는 말을 하는데, 동창생은 뜻밖의 말을 하게 된다. 집에 있던 개가 칼에 난자당해 죽어있다는 것이다. 무슨 기분 나쁜 농담일까? 더 심한 건, 전처도 잔인하게 살해당해 시신으로 발견했다는 것이다. 악몽 같은 일이지만, 꿈이 아니었다.

 

경찰은 화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본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화자는 불안해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가 찾아와 화자를 부른다. 놀란 화자는 베란다를 열고 쓰레기 더미를 본다. 잡히고 싶지 않았기에, 화자는 뛰어내린다. 그렇게 하여 재와 피로 범벅이 된, <재와 빨강>이 그 정체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던 편혜영의 소설색깔은 뚜렷하다. <사육장 쪽으로>나 <아오이가든>에서 나타났듯, 예쁘거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인간과 사회가 만들어내는 불쾌함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읽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아니다. 묘사의 대상은 그것이되, 소설의 맛은 묵직하며 또한 날카롭다.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 또한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닿아있기에 더 호소력이 짙어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재와 빨강>은 그러한 특징이 오롯이 담긴 장편소설이다. 전염병, 쓰레기, 쥐, 부랑자, 하수 등의 이미지는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불쾌감을 유발하는 건 아니다. 인간이 쥐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 고작해야 쥐를 잡는다는 것이나 전염병 속에서 행하는 비인간적인 행동들 하나하나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삶'이라는 것을 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의 의지, 그리고 소통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건 어떤가. 나아가 인간의 어두운 초상을 마주해야 하는 건 어떤가. <재와 빨강>은 문학적인 성취감이 남다르다. 강렬한 독특함은 한국소설의 또 다른 '맛'이자 '멋'을 구축하는 하나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인간성이 상실된 곳, 절대고독한 곳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보다 인간의 의미는 무엇으로 이야기될 수 있을까? 인간을 증명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편혜영의 <재와 빨강>, 그녀의 장편소설을 기다려온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한 사람들까지도 매료시킬 만한 소설의 강렬함이 돋보인다.


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창비(2010)


태그:#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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