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베트남 자본과 인력으로 만든 <하얀 아오자이>

순수 베트남 자본과 인력으로 만든 <하얀 아오자이> ⓒ 하얀 아오자이


안에는 월남 여인 두엇
합장한 채 엎드려 일어설 줄 모르고
검은 아오자이 사이로 빠져나온
약하디 약한 그들의 발바닥
여인이여 누굴 위하여 기도하시는가
-사원(寺院)에서 만난 월남 여인, 김태수 시집 :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 중-

흔히 우리민족을 두고 많은 현대사의 질곡을 겪었다고들 한다. 외세에 의해 국권을 침탈당했었고, 민족 간에 살육을 벌인 지울 수 없는 기억을 가졌기에 그렇다. 베트남은 그런 면에서 우리와 묘하게 닮아있다. 또한 그들의 내전에 우리가 뛰어들었던 아픈 인연도 간과할 수 없다.

1992년 국교 정상화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베트남을 찾고 있고 경제적 교류가 있지만, 아직 우리민족에게 베트남은 피상적이다. 오토바이와 더운 날씨, 베트남 신부, 라이따이한 등. 한류라 일컫는 한국문화가 현지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비하면, 그들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 이해는 이처럼 많이 뒤떨어지는 편이다.

한국에는 첫 소개 된, 순수 베트남 영화 <하얀 아오자이>

 가난과 질곡의 역사를 넘어오는 부부

가난과 질곡의 역사를 넘어오는 부부 ⓒ 하얀 아오자이


그간 베트남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이 있어 왔다. <플래툰> <굿모닝 베트남> 등이 여러 관객에게 알려졌고 베트남계 프랑스인 트란 안 홍 감독의 <그린 파파야 향기> <씨클로>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베트남인들에게 그건 결코 자국의 영화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순수 베트남의 자본과 인력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본격적으로 소개된 일은 없다.

그런 점에서 순종 베트남 영화라고 할 <하얀 아오자이>(The white silk dress)의 첫 한국 개봉은 기대되는 설렘이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 중국 금계영화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쿠오카국제영화제 비전상 등 많은 관객과 평단의 격찬을 받은 작품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1954년 베트남의 어느 작은 마을. 자본가인 주인 밑에서 노예와 다름없는 하인 생활을 하는 소녀 '단(트룽 응옥 안 분)'이 있다. 역시 그녀 못지않은 비참한 생활이지만, 애틋한 눈길로 단을 바라보던 꼽추 '구(쿠옥 칸 분)'.

참을 수 없는 생활의 연속. 결국, 농민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둘은 사랑 하나만을 믿고 멀고 먼 남쪽으로 도망을 친다. 구가 단에게 건넬 수 있던 것은 고아인 자신이 버려졌을 때 몸을 싸고 있던 하얀 아오자이 한 벌뿐.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정한수 한 그릇을 떠 놓고 부부의 연을 맺는 두 사람.

힘들고 긴 여정을 지나 어렵사리 새로운 마을에 정착하여 어여쁜 딸 셋을 갖게 되는 부부. 그러나 천형 같은 가난은 그들을 떠나지 않는다. 늘 고프고 주린 배, 여름만 되면 물에 잠기는 집. 딸들의 이름마저 옥수수, 홍수라는 이름을 짓는 모습에는 슬픈 연민이 묻어난다.

그렇지만 어느덧 귀엽고 현명하게 자란 딸들은 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학년이 되면 하얀 아오자이를 교복으로 입어야만 하는 난관에 부딪힌 것.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이들 부부에게 아오자이는 먼 나라 이야기 같다. 부부는 어머니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아오자이를 위한 희생, 흰 색 저고리의 우리 어머니들을 떠올리게 해

 우리의 어머니 모습과 너무 닮아 있는 영화

우리의 어머니 모습과 너무 닮아 있는 영화 ⓒ 하얀 아오자이

흔히 베트남 하면 떠올리게 되는 여성들의 의상 아오자이(Ao Dai)는 영화에서 하나의 상징이다. 무늬와 빛깔, 옷감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대개는 평상복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아오자이는 마치 우리민족의 흰색 저고리와도 같다. 아무리 어려워도 어머니가 딸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해주는 옷 한 벌은 여성들의 고결성을 대변한다.

때문에 영화에서 흰색 아오자이를 하늘거리는 베트남 여성의 모습은 단아함을 넘어선 고귀함이다. 그리고 결국, 어머니 단은 돈이 없어 아이도 아닌 노인에게 젖을 물려주고 만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노인에게 젖을 내주는 단의 모습은 결코 불결해 보이지 않는다. 아오자이의 처절함이 다만 시리게 전해질 뿐이다.

영화는 굳이 연결 짓지 않으려 해도 우리민족의 어머니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원하는 아이들의 미래는 현재를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고, 아이들의 기쁘고 환한 웃음은 고픈 배를 채우는 식량이다.

결국 영화 후반 자연스레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는 쉽지 않다. 특히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할 여성관객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한편 18일 열린 언론시사회 현장에는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50여 명이 함께 자리를 해 자국의 영화에 함께 눈물 흘리고 박수를 보냈다.

정직함과 느림의 미학, '베트남 영화'란 선입견을 버리자

 사랑을 믿고 머나먼 땅으로 떠나는 부부

사랑을 믿고 머나먼 땅으로 떠나는 부부 ⓒ 하얀 아오자이


영화에서는 많은 물량을 들여 찍은 전쟁의 참상도 곳곳에 등장한다. 그렇다고 영화의 소재자체가 전쟁의 피폐함이나 부조리에 맞춰져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시대의 격변 속에서 견디어나가며, 그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가족의 모습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세계 영화는 템포가 빨라지고 있다. 느리고 목가적인 이미지들은 자극적이고 빠른 화면 전환으로 이어지고, 생각의 여유보다는 퍼즐처럼 쏟아지는 복선들을 꿰어 맞추기에 급급해진다. 영화 <하얀 아오자이>는 분명 그런 흐름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

다소 느린 것 같지만 한편 정직하고 솔직한 면이 펼쳐진다. '베트남 영화는 이런 면이 있구나'란 경험을 하기에도 적절한 기회가 될 듯하다. 기본적으로 영화의 완성도 역시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다문화 시대, 한국 것을 고집하기 이전 타인의 문화를 배운다는 관점에서도 추천할 만하다.

2007년에 베트남에 개봉된 이 영화를 한국시장에 거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누가 베트남 영화를 보러 오겠느냐'는 선입견을 깨는 기간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극장 상영이 끝나면 전국각지에서 베트남 이주여성을 위해 무료상영을 할 예정이라고, 수입사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도 이제 베트남 영화를 봐야 한다. 그들이 한국문화를 받아들이듯, 한국인들도 베트남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쌍방향 교류 없이는 한류도 없다."

하얀 아오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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