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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상과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관장 김성재)이 개설한 '김대중 배우기' 두 번째 강좌가 2월11일 오후 7시 김대중 도서관 지하 1층 컨벤션 홀에서 열렸다.  

 

 

(사단법인) '행동하는 양심' 준비위원회와 <오마이뉴스>가 후원하는 '김대중 배우기' 두 번째 강좌는 60분 강의, 10분 휴식, 40분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민족의 명절 설 대목이고 추운 날씨에 눈까지 내렸지만, 70명이 넘는 수강생이 강의를 경청했다.

 

진행은 최경환 연세대 객원교수가 맡았는데, 최 교수가 71년 대선부터 97년 대선까지 계속 김대중 후보를 찍은 분이 계시느냐고 묻자 60대-70대로 보이는 노인 참석자 4-5명이 손을 들었다. 투표권이 없어 97년 대선 때 찍지 못했다는 젊은 여성 5-6명이 손을 들자 웃음이 터지기도. 

 

두 번째 강의 주제 <김대중 정부는 어떻게 갈등을 관리했나?>는 어느 강좌에서도 없었든 첫 주제이고 시도라서 의미가 있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표출되고 있어 시의적절한 의제이고 중요한 교훈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 도착한 수강생들은 최경환 교수 안내로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 후 세계 정상들을 접견했던 집무실을 둘러보았다. 최 교수는 남북이 평화롭게 살자는 의미가 담긴 금강보석화, 부시 대통령과 참석했던 경의선 철도 기공식, 노벨평화상 수상식 사진에 대해 설명해나갔다. 

 

홍일, 홍업, 홍걸 세 아들의 가족사진도 감상했는데, 몸이 불편한 김홍일 전 의원의 딱한 사정과 김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지팡이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에 잠시 침묵이 흐르기도. 특히 작년 8월 장례식 때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냈던 마지막 편지를 보며 눈물을 보이는 여성도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어떻게 갈등을 관리했나?

 

'김대중 배우기' 두 번째 강사 김학린(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98년 미국으로 유학 갈 때까지도 정권교체에 성공한 대통령으로만 알았는데 미국을 방문해서 영어로 연설하는 모습을 보며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김 전 대통령 집권 5년 동안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는 어떻게 갈등을 관리했나?>를 주제로 강의하려니까 무척 조심스럽다며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과 '김대중 정부의 갈등 관리'에 대해 설명했다.  

 

 

뉴욕 주립대에서 갈등관리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재해나 다름없는 대운하 공사, 땅 부자 내각과 청와대 수석들의 땅 투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국민이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던 '김대중 마지막 일기'(2009년3월18일) 내용을 인용했다. 

 

김대중 마지막 일기를 간추리면, 왕과 소수의 귀족 관료만 지식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하고 농민은 무식했던 봉건시대, 지식과 돈을 가진 부르주아지가 패권을 장악하고 절대다수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피지배층이었던 자본주의 시대, 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했는데, '2008년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한겨레신문 창간 20주년 회견(2008,5,19)에서 정부가 국민이 원하는 것이 뭔가를 알아서 충분히 설명하고 국민이 원하는 게 타당하면 대책을 세우고,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부가 국민신뢰를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명박 정부에 충언했었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2008,7,30)에서도 김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지식수준 향상과 인터넷 발달로 국회의원, 엘리트들에게 맡겼던 것들에 스스로 관여할 수 있게 된 것을 '촛불집회'가 가능했던 이유로 꼽았다.

 

국민 참여, 국민과의 더 많은 대화를 요구하는 김 전 대통령의 갈등관리 철학은 현 정부의 참고서 같았다. 특히 "민주주의 핵심은 'by the people'이다. 국민의 충분한 자유로운 참여 없이는 아무리 국민의 이익을 도모한다 하더라도 민주주의는 아니다"고 주장한 옥중서신(266쪽) 내용은 이명박 정부 출범을 예고한 어록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각 분야에 대한 참여가 이루어져야 하고,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각종 이익단체가 자기의 주장과 견해를 정당과 국회에 제시하고 지방에서 중앙까지 모든 행정이 국민의 참여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갈등을 푸는 방법은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인데 그대로 적용된 예가 남북이 공동으로 이익을 낼 수 있었던 '햇볕정책'과 '노사정' 출범을 꼽았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세계인이 인정하는 성공한 케이스라는 것이다.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

 

반세기 넘게 중앙집권제를 해오다 지방자치를 시행하자 사회적, 계층 간에 갈등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현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있는데, 지배받던 불안한 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이 갈등 자체를 부정하는 예가 많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말에 거역하면 벌을 받던 박정희·전두환 시대에는 갈등 자체가 필요 없었다는 것.

    

김 교수는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을 3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갈등을 폭력, 파멸, 불합리성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사회 발전의 역기능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며 비정상적인 상태로 보는 전통적 견해(부정적 시각).

 

둘째,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고 사는 사회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므로 완전히 제거될 수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집단의 성과를 향상시키기도 하니까, 갈등을 잘 관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행태론적 견해(중립적 시각).

 

셋째, 갈등은 사회발전의 필수조건이며 바람직한 요인으로 일정한 한계 내에서 고무 내지는 조장시켜야 한다는 견해. 즉, 갈등을 문제해결의 자극제로 파악하는 상호작용주의적 견해(적극 수용론)가 존재한다는 것. 

 

갈등이 존재하는 상태는 민주적, 분지적, 성장적 및 자기 현실적인 것이 가능한 상태를 뜻하며, 갈등의 부재는 독재주의, 획일화 주의, 정체 및 정신적 고착 상태를 말한다며 건전한 갈등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갈등은 동전의 양면처럼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갈등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파괴적인 것이 되기도 하고, 건설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며 갈등관리의 목표를 갈등의 평화적 해소(과정중시) 공동의 해결안 모색(합의중시) 공동의 가치창출(결과중시) 생산적 관계의 형성 및 유지(관계 중시)를 꼽았다. 갈등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갈등 관리 및 성과

 

 

김학린 교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 늘어난 지역 간 분쟁은 95년부터 늘어난 지방자치와 외환위기 영향이 크다며, 수평적 정권교체와 함께 민주 반민주 대결과 체제론이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공고해진 김대중 정부에서 갈등 관리가 많이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햇볕정책', '노사정' 출범을 사회시스템 보완을 위한 갈등관리 사례로, 방폐장 입지 선정과정을 합리적 갈등관리 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사례로, 국민을 믿고 기다리며 토론하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며 확대한 지방자치를 한국사회 갈등해결문화를 개선하려는 김대중 정부 성과로 꼽았다. 

 

김 교수는 갈등관리 능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대의 민주주의 한계와 결함에서 원인을 찾아 민주주의적 요소를 가미하여 보완하는 '체제론적 접근'. ▲갈등관리 제도 미흡이나 비합리성을 합리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제도론적 접근'(예, 갈등관리기본법). ▲리더십 부재 또는 왜곡에서 원인을 찾아 리더의 교체, 전분가 양성으로 보완하는 '인적자원론적 접근' 등 3가지를 제시했다. 

 

이어 김대중 정부 아래에서 가장 큰 사회갈등은 남남갈등, 전교조, 의약분업 등이었고, 성공한 갈등관리는 남북이 상호 승리하는 햇볕정책을, 실패한 갈등관리로는 의약분업을 지적했다. 의약분업 정책 자체는 좋았지만,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마지막 질의응답에서 김대중 정부는 민주적 갈등관리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사회적 합의주의에 기초한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한계를 보완하고, 합리적 갈등관리의 제도화를 구축했으며 공동이익에 기반을 둔 상호 존중의 갈등 해결 문화 구축을 위해 노력했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최경환 교수는 강의를 마치면서 의사와 약사들이 환자를 외면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이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의약분업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지 알았으면 안했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회고했다. 김 전 대통령이 국민 의견을 얼마나 존중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와 한겨레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대중 배우기, #김학린 교수, #김대중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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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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