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록 영화지만, <간 큰 가족> 영화에 나오는 김 노인(신구 분)은 오매불망 통일을 노래 부른다. 이에 그의 가족들은 가짜 '통일뉴스'를 만들어 가택 내 방송을 한다. 김 노인이 '간암 말기'라는 것과 유산으로 50억이 있다는 걸 가족들이 알게 된 것.

 

그러나 이 엄청난 유산이 통일이 되기 전에 김 노인이 죽으면, 자칫 통일부로 전액 기부될 상황이라 큰 아들(감우성 분)이 나서서 연극을 꾸미기로 한 것이다. 김 노인은 감쪽 같이 꾸민 가짜 통일 상황에 그저 대책 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한다. 

 

연극을 꾸민 그의 가족들은 김 노인과 함께 정말 통일이 된 것처럼 행복해 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왜 그토록 통일을 기도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조금은 해괴하지만, 저런 효도를 한번쯤 생각지 못했을까 하는 엉뚱한 후회를 했다.

 

내 아버지 고향은 함경북도 무산군

우리의 분단 현실 속에서 이산가족 김 노인과 같이 오매불망 죽어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산 가족 숫자가 한둘이 아니다. 나의 아버지도 김 노인처럼 평생 통일을 노래 부르셨던 분이다. 아버지 고향은 함경북도 무산군 연사면 사지리 155번지.

 

평생 고향집 주소를 통일의 끄나풀처럼 여기셨던 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생존 소식을 알기 위해 숱하게 통일부에 신청서를 내셨으나 끝내 아무런 답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 

 

어릴 적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산가족이었던 우리 집 명절은 정말 초상집처럼 쓸쓸했다. 그에 비해 내 동네 소꿉친구들이 알록달록한 색동옷의 설빔을 차려 입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고향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가는 모습이 내 어린 눈에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아버지, 우리는 왜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세배 안 가요?"

 

아버지의 희미한 미소, 이젠 알 것 같다

 

6·25 전쟁이 무엇이고 분단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기 전까지, 철없던 나는 이런 뼈아픈 질문을 아버지에게 고문처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을까. 내 철딱서니 없는 질문에 그저 희미한 미소를 지으시며, 먼산만 쳐다 보던, 아버지의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답답한 심정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구정이나 추석명절이 돌아오면, 아버지는 쓸쓸하기 짝이 없는 초상집 같은 집안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으셨던지, 우리 남매들을 데리고 임진각을 자주 방문하셨다. 북측이 환히 보이는 고향땅을 바라보시면서, 아버지께서는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고향에 가보고 싶구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볼수는 없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건 내 아버지 레파토리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고향생각 나실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 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건 내 어머니 레파토리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남은인생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어머니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 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강산에>-라구요

 

정말 사람을 못 견디게 힘든 상태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장 가까운 혈육간의 기약 없는 별리일 것 같다.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만 되면, 고향이 가장 가까운 임진각에 나와 그저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몇 시간씩 서 계시던,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이 그저 눈에 선하다. 

 

내일 모레 돌아오는 구정은, 모처럼 아버지 고향을 방문하는 발걸음처럼, 임진각에라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수구초심(首邱初心; 여우가 죽을 때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둔.)이란 말처럼, 대한민국이 분단된지 60년이나 지났는데… 정녕, 통일 ! 그대는 언제 오는가.


태그:#임진각, #통일, #이산가족, #상봉, #역사의 눈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