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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새고 회사로 출근해도 행복하단다.
▲ 연습 밤을 새고 회사로 출근해도 행복하단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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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월의 어느 날, 서울대입구역 부근에 있는 좁은 지하 연습실을 찾아갔다. 작은 공간에 스무 명, 삼십 명쯤 되는 사람들이 한겨울에 땀방울을 흘리며 연극 연습을 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 <한 여름 밤의 꿈>을 각색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한 달 전부터 밤새 연습하고 있던 연극 팀의 구성원이 참 독특하다. 전문 연극배우들도 곳곳에 숨어 있지만, 대부분이 직장인이다. 당장 오늘도 눈치 보며 퇴근을 하고 헐레벌떡 연습을 하러 온 사람들. 직업도 다양하다. 간호사, 군인, 중소기업 경리, 사업가, 주부…

#1. 직장만 다니기엔 우리 꿈이 너무 아깝잖아

낮에는 회사 경영을, 밤에는 배우 수련을
▲ 조광훈 극단 멤버 낮에는 회사 경영을, 밤에는 배우 수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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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가면의 <한 여름 밤의 꿈>
 연출 : 김성진(극단 주변인들 대표)
공연일 : 2010년 2월 4일 ~ 7일
장소 : 대학로, 나무와 물
공연문의 : 02-3472-7737
일반인 문화예술체험 커뮤니티 액션가면(www.actionmask.co.kr)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팀이 바로 이 직장인 연극 팀이다. 6년 전에 만들어진 팀은, 어릴 적 꿈이 연극배우였다든가, 관심은 생겼지만 배울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꿈을 펼칠 수 없었던 직장인들을 모아 무료로 특강도 하고, 연습도 하고, 심지어 연극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하고 있다.

돈 벌고 일하느라 마음에 꽁꽁 숨겨놓았던 연극에 대한 열정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퇴근하고 연습하러 달려오는 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단다.

"하고 싶은 일이니까요. 밤새 연습하고 다음날 바로 출근하러 가도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사업을 하기 때문에 술약속도 많고 미팅도 많지만, 연극 연습 때문에 미팅 약속을 거의 점심시간으로 돌리게 되었죠."(조광훈, 액션가면 멤버, 사업가)

몸 좀 피곤하다고 꿈을 포기하는 것은 바보짓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몸소 표현해 주고 있었다. 후원해주는 단체도, 아마추어 연극을 보러오는 관객도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연습한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도 거의 자비를 털어야 한다. 공연관람비도 공짜에서 몇천 원 정도. 그래도 즐겁단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2. 내 꿈이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고 싶지 않아

돈 대신 떡으로 특강비를 받는 액션가면. 이애리 기획팀장
▲ 수익의 10%는 다시 사회로 돈 대신 떡으로 특강비를 받는 액션가면. 이애리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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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 전혀 연기수업을 받아보지 않았으니 액션가면에서 무료로 특강을 해주었어요.  돈을 받지 않았더니 사람들이 수강료 대신으로 쌀을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그 쌀이 가득 모이면 우리 동호회 이름으로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떡을 쪄서 돌리기도 하고 그랬죠."
(이애리, 액션가면 기획팀)

전문 연극배우들이 하는 공연을 뒤로하고 자신들의 공연을 보러와 준 관객들에게 죄송한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 그래서 아마추어인 티가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연습한다. 그리고 공연을 통해 얻은 수익의 10%는 무조건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수익이라 해봤자, 10만원이 넘을까. 하지만 7만원을 벌어도 꼭 7천원을 떼서 동호회 이름으로 사회에 환원한다. 그것은 꿈을 지키고 싶어 하는 직장인들의 소망일지도 모른다. 연습공간도 돈이 없으니 일반 주택가 어두침침한 지하실을 빌릴 수밖에 없다. 시끄럽다고 쫒겨나기도 몇 번을 했단다. 그래서 언제나 동네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며 예의바른 모습만 보이려 노력한다. 수강료 대신 받는 쌀이 넘치면 떡을 쪄서 돌리기도 한다. 그 정도 아양과 아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생명 같은, 이제는 침실이나 다름없는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3.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극단 주변인들 대표
▲ 김성진 연출가 극단 주변인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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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니 모여서 연습하기도 힘들더라구요. 갑자기 야근이다 회식이다 변수가 많죠. 어떨 땐 세 명이 넘게 연습에 빠진 적도 있어요. 그러면 대사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연습 자체가 어렵죠. 처음엔 화가 나서 집에 가버린 적도 있어요. 하지만 연습 공간을 가득 채우는 열정이 나를 다시 돌려 세우더라구요. 가능성도 많이 보여요. 전문 배우보다 더 뛰어나게 역할을 소화해내는 친구도 보이고." (김성원, 연출가)

이 동호회를 위해 전문 연출가가 시간을 내어 이들의 공연을 도와준다. 이번에 공연이 올려질 무대를 선뜻 빌려준 <나무와 물>이라는 공연장도 열정 넘치는 직장인 연극 팀을 높이 산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공연을 준비했는지, 그 진심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야박하게 굴 수 없다.

2월 4일부터 7일 동안 펼쳐지는 페스티벌의 주제는 '경계 없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래서 무대에 올릴 연극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선택했다. 세상이 임의로 그어놓았던 숲의 경계선을 허물고 인간과 요정이 함께 부딪히고 싸우고 수용하고 이해하며 어우러졌던 것처럼, 전문배우와 직장인, 이상과 현실, 다양한 계층에 있는 모든 보통 사람들이 경계를 허무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좋은 공연이 될 것이다.

열정 가득한 직장인 연극 팀을 통해 사람들이 그어놓은 경계, 혹은 차가웠던 담벼락에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경계'란 넘어오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닌, 들어와도 좋다는 환영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본다.

내 안에 감춰져 있던 꿈을 위해서라면
▲ 연습 시간 내 안에 감춰져 있던 꿈을 위해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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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니콜키드박


태그:#직딩, #연극, #박진희박, #꿈,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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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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