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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구청사내 밀폐된 공간에 새끼 호랑이 두 마리를 가둬 전시해 물의를 빚은 서울시 노원구청. 시민들 발길이 잦은 공공청사에 그 해의 띠 동물을 전시하겠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혹시 대전시 유성구청 사례를 선도적으로 벤치마킹한 것은 아닐까?

이런 의구심이 드는 것은 노원구청에 앞서 유성구청은 이미 몇 해 전부터 그 해의 띠 동물들을 매년 공공청사 앞 광장에 전시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 대신 고양이 전시하는 유성구청
유성구청 광장에 설치된 '호랑이 학습동산'의 호랑이 조형물.
 유성구청 광장에 설치된 '호랑이 학습동산'의 호랑이 조형물.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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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오후 대전광역시 유성구청(구청장 진동규). 구청 정문에 들어서자 여러 마리의 호랑이 조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유성구청이 호랑이의 해를 맞아 조성한 일명 '호랑이 학습동산'이다.

유성구청 광장 중앙쪽에 144㎡ 규모로 조성된 '호랑이 학습동산'에는 호랑이 조형물 다섯 점을 비롯해 호랑이의 종류와 특성 등을 소개하는 사진 및 학습자료가 설치되어 있다. 호랑이 학습동산 한쪽에는 사육사(20㎡) 1동도 만들어져 있다.

노원구청처럼 사육사 안에 호랑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꿩 대신 닭일까. 사육사 안에는 호랑이를 대신해 고양이 아홉 마리가 생활하고 있다.

사육사 안의 고양이들은 저마다 이름도 갖고 있다. 유성구청이 관할하는 각 9개 동사무소에서 기증된 고양이들의 이름은 미르, 온천둥이, 야온이, 은비, 호양이, 신성호감, 정민, 인심이, 아띠. 고양이를 기증한 각 동의 특성을 반영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호랑이 학습동산'이라는 명칭에서도 짐작되듯 당초 유성구청의 계획은 2010년 경인년을 맞아 실제 호랑이를 사육해 전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육사 배치 등 여러 가지 제약과 어려움이 따르자 호랑이가 고양이과에 속한 점을 고려해 호랑이 대신 고양이를 사육.전시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지난해 말 유성구청은 호랑이를 대신해 고양이 9마리를 사육사에 넣는 입방식도 가졌다.

유성구청, 소의 해에는 구청 광장에 소 길러

호랑이를 대신해 고양이 아홉마리가 사육되고 있는 사육사의 모습.
 호랑이를 대신해 고양이 아홉마리가 사육되고 있는 사육사의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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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청사에 살아있는 그 해의 띠 동물들을 전시하고 사육하는 풍토. 적어도 유성구청에서는 하나의 관례가 됐다.

유성구청이 띠 동물 전시를 처음 실행한 것은 2007년. 한나라당 당적의 진동규 구청장 취임 뒤 유성구청은 '황금돼지의 해'라고 불린 2007년에 8개 동을 상징하는 돼지 8마리를 구청 광장에 사육했다.

이듬해인 2008년 '쥐의 해'에는 구청 현관 로비 주변에 사육장을 만들어 흰쥐, 햄스터, 다람쥐 등 4종 30여마리를 입식해 키웠다. '소의 해'인 2009년에는 구청 광장에 가로 4m, 세로 4m크기의 축사를 만들어 생후 5~6개월된 송아지 암수 한쌍을 기증받아 사육했다.

공공청사에서 매년 그해의 띠 동물을 사육하자 여러 곳에서 관심을 기울였다. TV와 신문 등 언론에서도 해마다 여러차례 화제로 다뤘다. 호랑이를 대신해 고양이를 전시.사육한다는 소식도 공중파의 유명 방송물에 소개됐다. 홍보 효과만은 톡톡히 누린 셈.

일각에서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2009년 11월 유성구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임재인 의원은 2007년부터 3년간 유성구청에서 길렀던 가축들의 허가사항에 대해 질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임 의원은 유성구청 주변이 가축 사육 금지 지역임에도 구청이 앞장서 돼지를 키우고 소를 키웠다며 만일 일반인이 시내 한복판에서 가축을 키운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따졌다.

호랑이 대신해 사육되는 고양이들의 운명은?

사육사안의 고양이들 모습.
 사육사안의 고양이들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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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전시.사육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자 노원구청은 계획보다 한달 일찍 호랑이 특별기획전을 끝냈다. 노원구청의 호랑이들은 구청을 떠났지만, 호랑이를 대신해 선택된 유성구청의 고양이들은 오늘도 구청 광장에 마련된 사육사 안에서 지낸다.

지난 30일 오후 유성구청에 들러 사육사를 살펴보니 어느 고양이는 잠을 자고 어느 고양이는 사료를 먹고 있었다. 사육사 안을 하릴없이 어슬렁 거리는 고양이도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온 아이 한명이 고양이의 시선을 끌기 위해 사육사의 투명한 벽면을 톡톡 건드리는 모습도 보였다.

허기를 달래려 거리를 헤매는 길고양이들 보다 보온시설과 사료통, 급수기 등이 갖춰진 사육사에서 생활하는 유성구청의 고양이들은 현재 삶에 만족할까. 호랑이라는 후손을 잘 둔 덕분에 호랑이도 아니면서 호강을 누린다고 즐거워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고양이가 아니라 모르겠다. 다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토끼의 해'인 내년에는 살아있는 인간들의 축복을 위해 그 자리에 토끼들이 사육되고 전시될 터. 2012년 '용의 해'에는 용 대신 또 무엇이 등장할까. 니겔 로스펠스의 책, <물원의 탄생> 실린 번역자의 글 가운데 한 구절이 잊혀지지 않는다.

"동물의 굴종적인 시선을 통해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고 하는 태도 때문에 동물원이라는 시스템이 발전되고 유지되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성구청의 '호랑이 학습동산' 사육사에서 호랑이 대신해 사육되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
 유성구청의 '호랑이 학습동산' 사육사에서 호랑이 대신해 사육되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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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성구청, #호랑이,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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