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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변화한다는 것은 좋은 의미로 가슴에 다가온다. 그러나 사람이나 사물이 변한다는 것은 고유한 자신의 옛 모습을 잃어가는 것을 말함이 아닐까 싶다. 주남저수지는 다시 찾지 말고 가슴이 떨리도록 황홀했던 순간을 기억하고만 있을 걸 그랬다. 주남저수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모습이 너무 많이 변해서 우울한 곳이었다.

 

어느 해 겨울, 남편이 카메라에 담아온 주남저수지의 철새들 사진을 보고 전율했었다. 하늘을 온통 뒤덮은 수백 수천 마리 철새들의 눈부시도록 현란한 군무는 얼마나 황홀한지 나는 넋을 놓고 보고 또 보았다.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몇 해 뒤 그 기억을 좇아 남편과 함께 추운 겨울날 찾아간 주남저수지는 내가 기대했던 그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남편의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마도 예전의 찬란한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가까이서 처음 보는 철새들의 군무는 나를 황홀하게 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이번에 다시 주남저수지 가는데 함께 가자는 초대를 받고 따라나섰다. 남편을 따라갔던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얼마나 변했는지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예전과 달리 주변 시설도 화려하고 찾는 사람도 많았으나 저수지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주인공인 새떼는 적고 시설만 요란해보였다. 그 많던 철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추운 겨울을 어디서 나고 있을까?

 

해마다 찾아오던 보금자리에 이제는 머물 수 없어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철새떼들은 우리 환경이 그만큼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서 한가로이 물위를 떠돌며 먹이를 찾는 철새들의 모습은 그나마 위안을 주었다. 함께 간 일행은 망원경으로 새들을 보며 노랑부리저어새, 재두루미, 흑고니, 고니, 청둥오리 등 이름을 불러주었다. 내 눈에는 다 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그리 많은 새들의 이름을 다 아는지 놀라웠다. 그녀의 철새에 대한 관심과 사랑 때문이리라.

 

생태학습관에는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이 아이들에게 예전의 그 찬란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니 아쉬움이 더 크게 밀려들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기한지 마냥 좋아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생태학습관을 나와서 문화재를 찾아 나섰다. 문화재는 언제라도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먼저 경상남도 문화재인 주남 돌다리를 찾아갔다. 주남 돌다리는 80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창원시가 역사교육장으로 현재의 위치에 복원해놓았다고 한다. 배불뚝이처럼 모양이 특이하게 생긴 다리였는데 입구와 출구를 보호하고 있었다. 물에 비친 모습이 다리 모양을 더 아름답게 해주었다.

 

 

다시 이동해서 천연기념물 제164호인 음나무군을 찾았다. 음나무는 보통 엄나무라고 불리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중국, 만주, 우수리 등지에 분포하는 나무로 연한 잎은 나물로 먹고 가시가 있는 가지는 악귀를 물리치는데 사용하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그중에 엄나무 이야기도 있었다. 자식교육을 위해 항상 엄나무로 만든 회초리를 벽에 걸어놓았다는 선조들의 이야기, 그리고 엄나무에 얽힌 어느 어머니와 아들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옛날에 어머니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때마다 아들의 종아리를 때리곤 했는데 맞으면서 한 번도 울지 않던 아들이 엉엉 소리 내어 슬프게 울자 어머니가 전에는 맞고도 울지 않았는데 이제 아파서 우는 것이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아들의 대답했다. 예전에는 어머니께서 때리면 아팠는데 이제는 때려도 아프지 않은 것을 보니 어머니의 기운이 쇠하신 것이 아파서 운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엄나무가 어떻게 생긴 나무인지 늘 궁금했었다.

 

신방리의 음나무군은 신방초등학교 뒤 길가 언덕에서 4그루가 자라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어린 음나무들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수령(樹齡)은 약 400년이며 높이 30m, 지름 1.8m에 달한다고 한다. 두릅나무과(科)의 낙엽교목(落葉喬木)이며 굵은 가지가 사방(四方)으로 퍼지며 크고 편평한 가시가 달린다고 하니 그 나무로 종아리를 맞았으면 얼마나 아팠을까 짐작이 간다.

 

창원시 신방리에서 음나무군이 잘 보존된 이유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토양을 보전하는 역할도 했을 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의 수호신으로 마귀를 쫓아준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방리의 음나무군은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나무들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문화적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지지대를 받쳐서 잘 보호하고 있었으나 나무에 쇠로 만들어 세운 지지대가 부담스럽고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이야기 속에 나오는 엄나무를 직접 찾아 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귀한 천연기념물과 문화재와의 만남은 보금자리를 떠나버린 철새들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태그:#주남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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